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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27. 2022

에코라벨(Eco & Life Balan)

산골 일기 스물여섯 번째

시골에 정착하면서 나름대로 작은 유토피아를 꿈꾸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생존을 위해 

이전투구하던 도시에서의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유토피아적 환상이 깨진 것은 

시골로 이사한 지 불과 두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시골의 소박함, 자연이 주는 여유의 환상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사라지는 데는 두 달이면 족했다.      


귀농의 어려움과 위험성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곳곳에서 쉽게 탐지할 수 있다. 농촌에서 잔뼈가 굵은 

수십 연차 농부도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허다한데 이제 막 귀농을 시작한 사람이 수확을 통해 돈을 벌게

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철저한 사전 준비 없는 귀농의 성공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실제 농촌에 들어와 살아보니 막연한 환상을 가진 귀농희망자가 있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나마 단지 주거를 시골로 정한 귀촌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생활경제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대부분의 귀촌이 삶의 터전에서 재화가 창출되지 않는 철저한 소비공간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즉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경제적 여유를 위해 생활터전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 일확천금을 쌓아 두었거나, 넘사벽의 연금을 수령하고 있지 않는 한 말이다. 시골 살이를 시작하면서 나는 단순히 거주지를 시골이나 자연으로 옮기는 것이 진정한 귀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진정한 귀촌은 명확하게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삶의 터전에서 자연스럽게 재화가 창출될 수 있는 구도가 진정한 귀촌이며 귀농이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복고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가족 중심의 마을공동체는 경제적 열위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온 마을 가족들이 함께 이룬 가내수공업은 증기기관의 발명과 전기의 발견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생산성의 공산품 앞에 도저히 경쟁이 되지 못했다. 가족이 다 모여서 한 달에 겨우 신발 50~100 켤레를 만들고 있을 때 공장에서는 하루에 500~1,000 켤레의 신발이 쏟아져 나오니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필연적으로 몰락한 가내 수공업은 결국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는 비극이 되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업혁명이 불러온 획기적인 생산성의 신장은 그렇게 공동의 가치 덕목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들을 해산하고 삭막한 개인주의적 디스토피아가 심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산업혁명시대가 가속될수록 인간성의 실종을 바탕으로 한 황량함은

앞으로 더욱 심화되어 갈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가속화, 편리성 뒤에 감춰진 인간성의 실종이나 퇴보를 심각하게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금에 유행하는 수많은 

창작물과 영상들의 상당수가 문명의 결과를 새드엔딩이나 디스토피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대로 문명이 질주하면 안 된다는 우려의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시골에 정착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경제적 독립공간을 창출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문명의 힘을 순리로 활용하여 다시 예전의 

인간적 가치 덕목이 넘치던 마을공동체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늦은 밤 홀로 깨어 이런저런 구상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해서 생각한 것이 에코라벨(Eco, Economy & Life Balance)이라는 개념이다. 생태 환경적, 그리고 경제적인 삶의 조화를 이루는 삶. 나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워라벨(Work & Life Balance)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후가 되어서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곳. 에코라벨의 세상을 

이룰 수는 없는가? 풍요로운 자연 속에 살아가면서 그 삶의 현장을 통해 동시에 경제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화. 귀촌 2년 차가 되면서 내 마음에는 소위 에코라벨 빌리지(Village of Eco, Economy & Life Balance)를 조성해 보는 것이 필생의 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토머스 모어도 아니면서 말이다.     

엄두가 안 나서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어왔다. 하지만 이상을 꿈꾸면서도 그런 이상향은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자기 체념도 강했다. 영국의 작가 토머스 모어가 처음 말한 유토피아(Utopia)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런 이율배반적 요소가 숨겨져 있다. 유토피아란 말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이상적인 완전 사회, 즉 이상향이라는 의미와 함께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상반된 의미가 담겨 있다. 토머스 모어는 그리스어 가운데 어느 곳에도 없는 이라는 뜻의 ‘on’, 장소를 뜻하는 ‘topos’와 좋은 이라는 뜻의 ‘eu’, 장소를 뜻하는 ‘topos’라는 서로 상반된 조합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라는 신조어를 합성해 냈다. 

영어로 표현하면 어디에도 없는 땅이라는 의미의 ‘Not a place’ ‘No where’가 바로 유토피아인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인간은 이상향을 꿈꾸지만 지상 어디에도 그런 이상향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절망이 동시에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피터팬이 날아간 동화 속의 세계도 네버랜드(Naverland)였다. 굳이 번역 하자면 ‘어디에도 없는 땅’이다. 인간은 이상향을 꿈꾸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그런 곳은 없어’ 리는 절망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동시에 꿈틀거린다.

 

어쨌든 나는 이상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에코라벨을 이룰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열망에 사로잡혀 몇 날 며칠을 고심 끝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선한 양심을 가진 이웃, 동료들을 찾아 꿈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치’에 목말라 있다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중 어느 청년과의 대화를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 아르바이트를 위해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인생이란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의 덫에 걸려 발버둥 

치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에 불과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향은 매일 놀고, 먹는 그런 삶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아무런 불편이 없는 그런 세상도 아니었다.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돈의 가치가 아닌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자리를 원했고, 시니어는 시니어대로 ‘아직 뒷방 늙은이 아냐’라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소일거리를 

원했다. 인간의 삶을 굳이 3 등분하여 배우는데 1/3, 돈 버는데 1/3을 썼다면, 마지막 1/3은 이 땅에 존재해야 했던 ‘가치의 족적’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내가 세운 계획보다 가치라는 말에 더 큰 동조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이상향은 스트레스가 전무한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활동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귀촌을 통해 가치 있는 일거리와 그 일거리를 

통한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공동체 마을. 나는 이 필생의 꿈을 비전으로 품으며 오늘도 푸른 자연을 

바라보듯 푸른 사람들을 바라본다. 인간이란 좋은 이상을 품고, 꾸준히 삶의 아름다운 그림을 함께 그려 나갈 수 있는 아름다운 품성의 존재라는 믿음을 확인해 보고 싶다.      


그런 믿음이 통했을까?

”여기 제 땅은 어떻소? “ 오래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아~ 진정 꿈이 영글어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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