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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26. 2022

있는 그대로의 힘 – 또가원에서

산골 일기 스물다섯 번째

곡성에 있는 농가형 찻집 ‘또가원’에 다녀왔다. 찻집이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은 작은 농촌 마을 가운데 위치한 찻집이었다. 도착하고 나서도 여기가 또가원이 맞나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대문 앞에 이르러서야 여기로구나 싶었다. 뜨락에 들어서서 한참 정원을 감상하고 나서야 주인을 만났다. 흰머리가 곱게 물든 여주인이었다. 찻집은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창고형 건물을 개조한 곳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온갖 책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곳곳에는 주인의 바느질 솜씨가 빛나는 자수, 킬트 작품들이 들어차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엇 하나 도드라지지 않은 소박한 풍경이었다. 아마도 사람이 집을 주장해야지 집이 사람을 

주장하면 안 된다는 주인의 철학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 공간에서 작은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액자에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라는 역설적인 반어법이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보이는 물리적 피사체가 진정한 모습이 아니고, 눈을 감아야 비로소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는 내면의 피사체가 진정한 피사체이고 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가만히 눈이 감겼다. 눈을 감으니 정말 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소리가 꽃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듯했다. 문득 작은 시구 하나가 떠올랐다.  


- 꽃잎은 져서 뿌리를 만난다 -     


꽃잎은 져서 뿌리를 만난다. 

뿌리를 만난 꽃잎은

햇빛과 바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꽃잎을 만난 뿌리는

어두운 날의 고요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꽃잎 지던 날

비로소 뿌리는 꽃잎이 되고

꽃잎은 뿌리가 되었다.

아무도 몰랐던

꽃잎의 짧은 하루,

뿌리의 기나긴 하루가 서로 부둥켜안았다.     


나는 문득 떠오른 ‘꽃잎은 져서 뿌리를 만난다’라는 이미지가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라는 의미와 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존재 속에서 서로 같음을 발견하고 이해해 나가는 것이 존재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꽃은 아름다움을 누리기만 하고 뿌리는 어둡고 습한 땅 속에서 희생하는 구도로 끝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는 그 화해의 모습, 연합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싶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시골에 찻집을 열 생각을 하셨어요? “

뜬금없는 장소가 의아하던 참에 물었다.

”아이고 무신 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요. 너무너무너무~ 외로워서 연 것이 이 찻집이에요. 

시골에 들어오니까 너무 외로워서 제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을 구걸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자. 그런 마음으로 카페를 열었는데 전국에 좋은 사람, 멋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네요. “  


처음부터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 또가원의 성공 비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나온 오미자차가 상큼했고 더불어 내온 호밀빵은 담백했다. 찻집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개발한 빵이라고 했다.     


 ”우리 집 빵은 처음 먹을 때는 드럽게 맛이 없어요. 하하.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면 생각나는 마법 빵이에요. “      

빵이 조금 거칠고 맛이 밋밋해서 빵맛이 좀... 하려던 차에 여주인이 빵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세상의 모든 빵은 첨가물을 더 넣어 맛을 추구하는데, 또가원에서는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뺄 수 있을까 

고민해서 밀과 소금과 물만 들어가서 아무리 먹어도 속 편한 빵이 되었다고 했다. 

설명하는 여주인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 묻어났다. 그 행복한 미소 속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내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제 생활의 모토가 열심히 살지 말자 에요. 딸에게도 애야 너무 열심히 살려고 하지 마!라고 충고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막 야단칠 말이지만요. “     


열심히 안 산다는 본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또가원의 구석구석에는 다듬어진 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안 산다는 개념과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그 집 담벼락에 붙어있는 벽화를 보며 알아볼 수 있었다. 또가원의 담벼락에는 물고기 목각을 수백 마리 붙여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연출해 놓았다. 오랜 담벼락과 또는 풀꽃들 사이에서 그 물고기 무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그 벽화를 보면 열심히 안 산다는 것을 바꾸어 말하면 순리대로, 물결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헤엄쳐 나가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억지로 순리를 거슬러 역리를 만들고 억지로 물줄기를 되돌리려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 다시 말해 열심히 안 산다는 것은 순리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가원을 떠나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쑥대밭으로 자라는 그 집 텃밭도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인위적인 질서와 정형화된 규칙성이 가진 딱딱함이 아닌 부드러운 불균형이 좋았다.      


어느 건축가가 지방인구의 공동화 현상을 막으려면 최대한 서울을 닮지 않은 건물과 풍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서울과 똑같은 풍경, 유사품을 보려고 지방에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절대 보거나 누릴 수 없는 풍경과 가치가 있을 때에 그곳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될 것이다. 열심히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자기가 가진 고유의 소박한 특성을 살려 나가는 것이 지방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별 것도 아닌디 이렇게 찾아옹께 미안해서... “

그 별것도 아닌 것에 담긴 소박함이 오늘 현대인들에게 힐링이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서울스럽게 꾸미지 

않고 소박한 시골의 정을 그대로 남겨둔 차별성이 그 찻집을 오히려 빛나게 하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부터 나를 감싸고 있는 나답지 않은 포장지를 걷어내 버려야겠다. 


바야흐로 멋지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투박함이 매력이 되는 세상이다. 

그대 차별성을 만들어 낼 열정이 있다면 열탕 같은 서울의 레드오션에 삶기지 말고 시골의 블루오션으로 내려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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