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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Sep 06. 2022

태풍이 지나고

산골 일기 서른한 번째

  한반도에 역대급 피해를 안긴 태풍 사라호나 매미에 버금가는 태풍이 올라온다는 시식에 전 국민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동안 한반도에 온 태풍 가운데 중심 기압이 가장 낮은 태풍이라는 힌남노.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엄청난 풍속과 많은 비가 동반된다는 태풍 소식에 모두들 걱정 어린 얼굴이다.      


그 태풍을 기다리는 몇 날 며칠. 태풍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면 태풍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마치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을 앞둔 초조한 심정이 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뜨락을 둘러보며 바람에 날릴만한 것이 있는지 집안에 들이거나 단단히 동여매며 태풍에 대비했다. 태풍이 

코앞이라 믿어지지 않는 날씨였지만 태풍이 반드시 올 것임을 알기에 매일매일 예측되는 태풍의 통과시간을 가늠하며 예의 주시했다.      


그러면서 문득 다가올 태풍에는 이렇게 많은 대비를 하면서 반드시 닥쳐올 죽음에는 전혀 손을 놓고 죽음이 있다는 것마저 잊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웰빙(Well-being)에는 천착하면서 정작 삶의 마지막을 고민하는 웰다잉(Well-dying)은 잊은 듯 살았다. 태풍의 목전에서 새삼 웰빙과 웰다잉을 생각한다. 웰빙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좋은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굳이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존재론적 삶을 생각하는 것이 웰빙이다. 소위 ‘구구팔팔이삼사(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고 죽는 것)’ 가 웰빙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위나 명예나 권력의 크기나 성공의 척도가 아닌 존재론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었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라는 가치척도로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에 그가 얼마나 원칙에 분명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합리적인 사람이었는지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와 가치관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웰빙은 필연적

으로 웰다잉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존재론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산 사람은 죽음조차도 담담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사랑과 이해의 삶을 산 사람이 둥지를 떠나는 일에 무슨 미련이 그리 많을 텐가!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태풍을 기다리며 어느 장례식장에서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손녀딸이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하나님 이 땅에 선물로 주셨던 할머니를 다시 선물로 보냅니다. “ 그 손녀딸은 할머니가 지상에 내려 

보내진 선물이었던 것처럼 하늘에서도 선물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같은 찬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선물 같은 사람으로 사는 것! 

이 보다 더 멋진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에는 잠을 잊은 채 태풍의 소리를 들었다. 태풍은 밤새 들창을 흔들며 울부짖었다. 잠시 잦아들다가도 다시 재우쳐 불며 으르렁거렸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대숲이 휠 듯 불어대던 바람이 겨우 멈추었다. 급한 마음에 창문 너머 뜨락을 살펴보니 일부 꽃대가 높은 맨드라미며 봉선화 그리고 웃자란 허브 몇 

포기만 허리가 꺾였을 뿐 모두 무사했다. 땅에 내려앉은 그 꽃들도 내일이면 다시 일어설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그동안 수없이 봐왔으니 까. 뜨락의 앞마당을 건사하고 나니 나의 배부른 걱정은 친구들을 향한 미안함이 되었다. 산더미 파도가 밀려들었을 바닷가 친구들, 밤새 비닐하우스를 지켜야 했던 친구들, 추석을 앞두고 낙과 피해에 울상일 산골 친구들의 걱정은 태산 같을 텐데 하는 마음에 절로 

기도가 나왔다. 궁금한 마음에 두루 안부를 전하고 나니 조금 안도가 되었다. 역대급 태풍이 쓸고 지나간 뒷자리 치고는 예전같이 큰 피해가 없었다. 


”통영이 쑥대밭이 되어 배가 섬 꼭대기에 얹혔던 태풍 매미 때와 느낌이 똑같다. 정말 불안하다. “ 


힌남노의 진로 정중앙에 통영이 있다는 뉴스속보에 떨던 통영 친구도 무사히 태풍이 지나갔다는 안도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다소간 어려움은 있었지만 무탈하다는 지인들의 소식에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아침 늦은 뉴스에 포항에서 안타까운 실종 보도가 나와서 마음이 짠해졌다.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점검하러 나간 것이 마지막 순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족의 슬픔이 진하게 전해져 온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살아있다고 해서 계속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날들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가족을 보며 슬프게 이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녁이면 다시 만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에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배웅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과 이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지 않았겠는가. 태풍은 지나갔지만 필연적인 이별에 대한 상념들을 품어본다. 스티븐 코비의 불후의 명작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중 제2 습관이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였음을 기억한다. 끝을 기억하는 것, 끝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 수 있다면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의 걸음이 사뭇 달라질 것이다. 


어떤 성공은 그 끝에 인간관계의 파괴를 낳기도 하고 어떤 실패는 그 끝에 깊은 신뢰를 남기기도 한다. 끝에 우리가 어떤 존재로 인식될 것인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생각하며 사는 것. 말 한마디, 걸음 하나가 내 인생을 만드는 소중한 이유임에 분명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뜨거워진 바다는 앞으로도 계속 힌남노와 같은 슈퍼태풍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간의 자연이 아닌 자연 속의 인간임을 깊이 인식하며 오늘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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