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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Oct 03. 2022

햇살과 바람

산골 일기 사십오 번째

이곳 마을 언덕 위에는 두 가지 자연의 선물이 넘친다. 하나는 종일 내리쬐는 햇살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숲을 쓸고 지나는 바람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높은 산들이 멀리 물러난 탁 트인 언덕 위라 그런지 하루 내내 햇살이 지천이다. 아침 햇살은 동남향의 창문을 열고 주방 깊숙이까지 그 빛살을 밀고 들어온다. 그러다 저녁이 되어 햇살이 서산에 뉘엿할 때까지 해 걸음이 복도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든다. 그래서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햇살을 머금은 토담가 같은 따스한 기운이 집안에 가득 넘친다.

     

“햇빛이 얼마나 지겨운지 아나? 소파고 뭣이고 죄다 빛이 바래서 못 쓰게 생깄다. 햇살 좋단 소리 하지 마라.”     

먼저 터를 잡은 마을의 어르신들은 햇살 많은 것이 고역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래도 햇살이 좋다. 늦은 시각까지 집안에 머물러 주는 햇살이 참 좋다. 집터를 고를 때 오랜 지인이 건네준 조언 중 가슴에 남은 한마디 말도 햇살 이야기였다. ‘한두 시간 해가 더 드는 것이 돈으로 따지면 일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라는 말. 나는 시골 살이를 하면서 그 말을 깊이 실감한다. 산자락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집들이 겨울철 오후 서너 시면 벌써 그늘에 잠겨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햇살이 많다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시골 살이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벌레와의 전쟁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다. 양지바른 곳일수록 그 개체수가 확연히 적다. 이곳에서 첫여름과 가을을 겪으면서 밝게 외등을 켜 둬도 나방이나 벌레들이 범벅으로 달려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누군가 귀촌을 결심하고 터를 구한다면 반드시 그 터가 습한지 음한지를 가장 먼저 따져 보기를 권한다. 시간이 된다면 그 땅의 춘하추동,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을 모두 느껴보기를 권한다. 가장 좋은 땅은 어느 때 가더라도 따스한 양기가 가득 느껴지는 그런 땅이다. 나보다 먼저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지인 하나는 그 터를 얻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깊은 산 중에 홀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며 땅의 기운을 느껴보려 했었다. “기운이 좋은 땅은 밤에 홀로 있어도 무서움이 없어.” 그렇게 수 날을 보낸 뒤 그가 한 말이 생각난다. 덕분에 나도 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면 마음 놓고 피서 떠날 명소가 하나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언덕 위에 햇살만큼 많은 것이 바람이다. 바람 길이라도 지나는지 거의 며칠 간격으로 대숲에 파도소리를 일으키는 큰 바람이 나고 평소에도 가벼운 산들바람이 머물러있다. 여름 한 철에는 댓잎을 흔드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낮의 더위를 말끔히 씻어 준다. 산골에서는 더운 날에도 그늘만 들면 웬만한 더위쯤은 견딜 만하다. 하지만 겨울 한 철에는 집 어귀에 달아놓은 풍경소리가 밤새 짤랑댈 만큼 거센 바람이 밤잠을 설치게도 한다. 집 앞으로 둘러쳐진 대숲은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대숲이 흔들리며 눕는 정도를 보면 바람의 크기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여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무렵이면 나도 모르게 대숲의 흔들림을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정도에 따라 하루의 기온이나 밤새 기온이 어떨지를 가늠한다. 겨울에는 당연히 벽난로에 집어넣을 장작의 개수가 바람 크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언젠가 바람에 대한 시를 떠올리며 ‘바람의 얼굴을 보려거든 보리밭에 와 보시라’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터전에서는 대숲을 볼 때마다 ‘바람의 사나움을 보려거든 대숲에 와 보시라’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대숲에 이는 바람은 보리밭을 지쳐 가는 바람과 사뭇 다르다. 보리밭의 바람흔적이 여성의 향기 같다면 대숲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에서는 굵은 남성의 체취가 느껴진다.     


오늘은 웬일인지 그 바람이 정지해 있다. 댓잎 하나 끄떡이지 않는 대숲은 고요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그려낸다. 고요 또는 적막이라는 말을 그림으로 그려낸다면 미동조차 없는 대숲의 모습이리라. 대숲에도 설핏 가을이 들어가고 있나 보다. 깊은 사색이라도 하는 듯 고요한 것을 보니. 도시에서는 늘 비슷한 풍경 속에서 계절조차 잊고 살았었다. 신경을 잔뜩 쓰지 않으면 삶을 상징하는 표상들을 발견하기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바람 한 점, 햇살 한 점도 삶의 이정표를 지나는 표징이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의 인상들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 찰나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가슴 저리도록 소중한지. 순간의 의미와 역동성을 잡아내는 사진 한 장처럼 자연은 매 순간 삶의 새로운 프래임을 제공한다. 그 프레임 속에 햇살과 바람은 언제나 고맙고 조용한 주연이다.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할 이 언덕을 ‘햇살바람이 이는 언덕’이라 부른다. 햇살이 바람처럼 나부끼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어본 말이다. 언젠가는 이 언덕에 ‘햇살바람의 언덕’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안에 햇살 같은 사람, 맑은 바람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회자될 것이란 마음을 품는다. 이 언덕 위에서 사람들은 햇살처럼 웃고 바람처럼 청명할 것이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햇살 같고 바람 같을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햇살과 바람을 닮은 새 같았으면 좋겠다. 

훌쩍 가지를 떠나는 청명한 자유로움과 따사로움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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