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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Sep 28. 2022

아점마

산골 일기 사십삼 번째

’아점마‘


시골에 들어와 생긴 내 별명이다. 이웃들이 나를 ’아점마‘라고 부르며 놀릴 때가 있다. 경상도 사투리 중에 누군가를 낮추어 부를 때 ’ 점마‘라 부르는 말이 있다. 누군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점마 저거... “하며 지칭하기도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때로 그 말을 원용하여 ”점마 저 아점마...“ 하며 나를 놀린다. 그런데 아점마가 무슨 뜻이냐고요? 아점마라는 말은 아저씨와 아줌마의 합성어이다. 시골에 들어와서 아줌마들이랑 어울려 수다 떠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점마‘가 되었다.      


어쩌다 이웃 가족들과 브런치라도 나눌라 치면 다들 수면바지 차림이다. 그럴 때면 나의 성 정체성에 혼돈이 온다. 도대체 나를 남자라 여기기는 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런 자유스러움이 좋다.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나누는 차 한 잔이 좋다. 굳이 어떤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움이 좋다. 누구를 설득할 일도,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이유도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과 자연에 대한 교감을 나누는 일은 서로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그 소소한 대화 가운데 문득 깨달아지는 삶의 작은 지혜들은 예기치 않은 선물이 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굳이 애써 행복을 추구하지 않지만 흐르는 시간에 얹혀가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행복감. 나는 그 느긋함과 포근함, 마음 편안함이 참 좋다.  

    

- 햇살이 함께 하는 브런치 -     


높은 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빈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방금 내린 커피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빛살의 광휘에 아지랑이 지고     


시간은 봄날의 완행열차처럼

느슨하게 식탁에 엎드려지고    

 

포실포실한 빵 한 조각

푸르고 붉은빛이 어우러진 샐러드 한 접시는

다만 그대의 이야기를 거들뿐


무슨 거창한 일도

모든 자잘한 일들도

소박한 여울로 흩어지고     


따뜻한 난로가에 앉은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조용한 평화가 햇살로 번져간다.


삶이 아무렇듯 흘러가서 나는 참 좋다.         


행복은 나눌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고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방식이 그렇다. 우리는 절대 홀로 행복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전원생활이나 시골 생활도 혼자만의 고립으로는 절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어느 순간은 행복할 수 있어도 지속적인 행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행복은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과의 진솔한 소통 속에서 비로소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거의 모든 나의 모임에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었다. 그것이 자기 성장이든, 입지의 토대이든, 모든 모임에는 이득이라는 분모가 분명했다. 내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모이는 모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모임에는 아무런 의도도 목적도 없다. 그저 함께 나누는 일상이 좋을 뿐이다. 굳이 의미 있을 필요도 없고 좋은 인상을 위해 자신을 꾸밀 이유도 없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눠 먹고 보기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바라본다. 모여서 나누는 한담은 일정한 주제도 없이 그날의 흐름대로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갈 뿐이다. 한없이 진지하기도 하고 한없이 덧없기도 하다. 나는 그 변화무쌍한 가벼움이 좋다. 치열한 목표의식이 없어서 더욱 좋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무위(無爲)가 아닐까! 노자는 도(道)에 대해 말하기를 무위즉도(無爲卽道)라 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도(道)’라는 얘기이지만 풀어서 보면 ‘의도(意圖)’를 품지 않은 모든 행위가 도(道)’라는 것이다. 즉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어야지 하는 의도가 분명하다면 농사짓는 행위는 도(道)가 될 수 없지만, 아무런 의도 없이 묵묵히 생명을 키우고 가꾸면 그 농사는 도(道)가 된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 환자 하나가 나에게 얼마만큼 이득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의술을 펼치면 무도(無道) 요, 오직 환자를 살리는 본연의 숭고한 목적으로 땀 흘리면 그것이 바로 도(道)라는 것이다. 노자의 설명에 따르자면 도시에서의 내 행위는 대부분 무도(無道)였다. 그곳에서의 모든 행위에는 나의 의도를 담은 분명한 목적과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 시골에서는 아무 의도가 없다. 그저 만나는 것이 좋아 이웃을 만나고 나누는 것이 좋아 나눌 뿐이다. 아~ 나는 드디어 무위(無爲)에 도달한 건가!      


아무것도 아니어서 자유스러운 행복함. 비록 초라하고 허름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진솔함. 이거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나는 ‘아점마’라는 별명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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