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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Oct 24. 2022

장작을 쌓으며

산골 일기 오십한 번째

  장작을 주문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예보와 함께 장작 값이 오른다는 소문에 부랴부랴 장작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 사이 장작 값은 3톤 트럭 분량에 5만 원이나 올랐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라고 운임비를 제해준 것이 다행이었다. 마당에 산더미처럼 부어놓은 장작을 쌓는다. 장작을 쌓으며 옛 생각이 떠오른다. 

겨울을 앞두고 광에 연탄만 쟁여놔도 부자가 된 것 같다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돌이켜 보면 그 예전에는 행복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았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었다. 그 이상의 행복이 없었다. 추운 겨울 몸을 지질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 연탄마저 준비하지 못하고 새끼줄에 묶인 낱장 연탄을 나르며 하루하루의 열기를 지피곤 했었다. 그맘때면 항상 빠지지 않은 비극적인 뉴스가 연탄가스로 인한 사고소식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 방바닥이 제대로 보수되지 않은 집은 갈라진 바닥 틈으로 새어 나온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내게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친구 집에서 잠들었던 어느 겨울 아침이다. 새벽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엉금엉금 기어 가까스로 문을 열고 대청마루에 쓰러졌던 기억이다. 겨울의 찬바람에 온 몸이 사늘하게 식었지만 어질어질한 머리가 개이는 신선한 느낌은 지금도 새삼스럽다. 그때 내가 조금 일찍 문을 열어재끼는 바람에 그 방의 모든 친구들이 비록 머리는 아팠어도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모두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씩 들이켜고는 오후 내내 뒷산 양지바른 수풀에 누워 몸을 추슬렀었다.            


뒤뜰 가득 장작을 쌓고 나니 부자가 된 듯 마음이 넉넉해진다. 올 겨울 무슨 일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이 지나듯 무탈하게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대박 같은 행운을 기대하지 않은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하루하루 무심히 지나가는 날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은 만족들이 삶의 큰 위안을 준다. 장작 하나만 해도 그렇다. 흔한 소나무 장작은 사실 난로를 때는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열기에 뿜어 나온 송진은 끈적끈적 달라붙어 연통을 막히게 하여 여간 성가시다. 그래서 난로의 땔감으로는 참나무가 좋다. 참나무는 다 타고나면 그야말로 한 줌의 재만을 남긴다. 그런데 이곳 지리산 자락에는 참숯을 굽는 가마터가 많아서 인지 참나무 장작을 구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뒤뜰을 가득 채운 참나무 향기만으로 나는 행복해진다. 화 그르르 타오르는 참나무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도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불멍, 물 멍, 논 멍 등 멍하니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무심함이 위안이 되고 평안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멍하다는 말이 질책이 되는 시대도 있었는데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어 한다. 그만큼 치열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다 보니 그 생각조차도 잠시 내려놓고 싶은 것일 테다. 사실 삶이 촘촘해질수록 우리에겐 더욱 멍한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 모두는 거의 예외 없이 실적주의의 무게에 짓눌리며 살아왔다. 무언가를 실행하고 결과를 남보다 더 많이 얻는 효율적 사고방식에 지배당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남보다 더 많은 결과를 내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며 그 성공을 갈구하거나 강요당해왔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정복만이 성공이겠는가? 디오게네스의 작은 햇살 한 줌이 또 다른 성공일 수는 없는 것일까?      


“선생님 저는 버킷리스트가 딱 두 개에요.”

“보통 버킷리스트가 수십 개는 되는데 대개 소박한데? 그 버킷리스트가 뭔지 궁금하네?”

“제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요. 그냥 매일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우연히 어린 친구와 소원에 대한 뜬금없는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하다가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버킷리스트라는 그 친구의 말에 마음 깊은 수긍이 되었다. 우리는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하고, 보아야 하고, 누려야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살아 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무위도식이 미덕은 아니지만 마음에 따스한 평화가 깃드는 멍한 시간들이 때로 필요한 것이다.  ’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 ‘라는 지인의 인생 표어도 새삼 생각난다. 스스로의 존재 위치, 가치, 높이를 정하고 나면 보는 눈들과 보이는 눈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불어 불필요한 장신구들이 잔뜩 달린 것처럼 삶이 거추장스러워지는 것이다. 아마도 그 지인은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의하고 싶었을 테다.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아무런 시선이 없는 돌 틈의 작은 풀꽃이고 싶다.      


나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멍한 사치를 누린다.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순간의 행복을 누린다. 가슴으로 번져오는 따스한 열기는 행복의 또 다른 덤이다. 그 불빛 아래 앉으면 뭐 그리 용서 못할 일도, 뭐 그리 꽁하게 맺힌 마음도 부질없다. 한순간 재가 되는 불꽃처럼 지나가고 말 일들이 된다. 그렇다고 ’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져 간 모닥불 같은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허무함이 가슴에 스미지는 않는다. 타는 불꽃 속에 미움과 다툼과 번민과 근심과 염려를 말없이 던져 넣을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따스하고 정갈한 마음을 담는 것이다.      


그 불꽃 속에 던져 넣은 밤이나 고구마의 달큰한 향기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손마디가 그은 줄도 모르고 소박한 음식을 나누다 보면 사람 사는 일이 뭐 대순가 싶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구마의 노란 속살처럼 누군가의 달콤함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으니 됐다.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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