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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lee Dec 31. 2020

2020


올해는

여유로운 한 해였다. 휴학을 했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내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 같다. 초반에는 갑자기 생긴 여유에 덜컥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 감정 때문에 원하지 않는 걸 선택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평소에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조금씩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토 대학교

토론토에서 조금 천천히 걸어도 된다는 것과 그래야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로 소소하게 느껴졌던 많은 것들이 실은 소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던 나는 '코로나'라는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그런 것들에 감사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평생 깨닫지 못했을 사실을 이렇게 알려주어 한편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덕분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루틴

1년 동안 나의 하루 루틴이 조금씩 늘어났다.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니 자연스레 나에게 맞는 것들을 찾게 되었고 1년 정도 흐르니 그게 몸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꾸준함이 불안한 시기에 큰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3번째 칸

늘 봄이 오면 국제광고제를 준비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늘 함께했던 혜원 언니와 작년에 스카이프로 만나게 된 시은 언니. 셋이서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가며 준비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 만족스러운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코로나로 올해 칸이 취소되었다. 속상했지만 이게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우리는 여름까지 회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초상권 문제를 주제로 아이디어를 냈고 올해는 뉴욕페스티벌에서 수상 소식도 듣게 되었다.


영어 수업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3월에 시작했으니 이제 10개월이 되었다. 수업을 하며 누군가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것, 선을 잘 지키는 것,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게 참 기뻤고 무엇보다 맑고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었다.


유브 갓 메일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는 게 어려워졌고 화상통화로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내 이야기를 전하고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싶은 마음에 가을에는 매주 짧은 글을 써서 메일로 보냈다. 답장을 읽으며 많이 울고 웃었고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런 글도 정말 많았다. 떨어져 지내면서도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준 친구들. 근본이 되는 건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음에 마음이 든든했다.


불어 공부

우연히 여름에 프랑스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그러다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아직까지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불어는 영어로 유추할 수 있는 단어가 꽤 많아서 신기하다. 재미를 잃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고 싶다.



Power of three

쉬는 시기에는 자연스레 돌아보는 시간도 가지게 된다. 나는 멀티가 잘 안 되는 사람이어서 보통 몰입할 수 있는 건 3가지를 넘기지 못하고 나머지는 마감 직전에 우다다다 끝냈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 했는지는 스스로 가장 잘 아는데 너무 많은 일을 맡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스트레스 받은 적이 많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요하게 생각했던 3가지 이외의 일들은 굳이 안 해도 되었거나 아니면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고 중요한 3가지에 몰입하며 2021년을 보내고 싶다.


건강

올해는 크게 아픈 일이 없었다. 잠도 부족하지 않았고 집에서 건강하게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틈틈이 했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다양한 운동을 시도해보고 정착하는 거였는데, 코로나로 쉽지 않았다. 내년에는 더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찾으면 좋겠다.




올해의 노래

집에서 공부하면서,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두는 일이 많아지면서 가사가 없거나 잔잔한 노래들을 많이 듣게 되었다. 쇼팽과 슈만의 피아노곡, Anson seabra, Beatles, Bruno major, Anthony Lazora, Racoon racoon, Sarah King, Calra Bruni의 모든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올해의 콘텐츠

영화는 <작은 아씨들> 작년부터 기다리던 영화였고 동생과 개봉하는 날 아침에 영화를 보러 갔고 올해 가장 여러 번 본 영화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빨간 머리 앤> 앤의 모든 부분이 참 예쁘다. 솔직하고 당돌한 사람, 꿈을 말하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 주변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퍼뜨리는 사람이다. 프로그램은 <유퀴즈> 코로나 때문에 형식이 조금 바뀌었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게 챙겨봤다. 다큐는 <앱스트랙트>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좋아서 본 걸 보고 또 봤다.


올해의 책 TOP 10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힘들고 지쳐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다시 읽을 것 같다.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데이비드 브룩스 <두 번째 산> ㅣ  성취하는 삶과 이타적인 삶에 관하여.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끈기를 가진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성숙하지 않은 태도로 평가하며 보낸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떤 것에 맞닥뜨리는 순간 즉각 자기 마음을 결정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한 번 어떤 판단을 내려 분류해서 정리해 버리고 나면 더는 복잡한 요소를 고려하면서 다시 살피려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광야는 우리에게 소극적 수용 능력, 불확실성 속에 머무는 능력, 성급히 미숙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능력을 가르친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ㅣ  비행 사고로 사막 한가운데 떨어지는데, 별을 바라보며 동료 프레보와 오렌지 반쪽을 나누어 먹는 장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외부에 있는 공동의 목적에 의해서 형제들과 이어질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숨을 쉴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동료란 도달해야 할 같은 정상을 향하여 한 줄에 묶여 있을 때만 동료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체 왜 이리도 안락한 시절에, 그것도 사막에서 마지막 양식을 나누며 그토록 충만한 기쁨을 느끼겠는가.


알베르 카뮈 <페스트> ㅣ 올해 가장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책이다.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그 남자들과 여자들은 사람마다 각기 그 성질은 다르지만,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한결 같이 불가능한 것인 어떤 결합을 열망하면서 지냈다. 그들 대부분은 곁에 있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 뜨거운 체온이나 애정을 달라고, 혹은 습관을 돌려 달라고 전력을 다해서 외치고 있었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ㅣ 자신의 선택에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지던 타라, 배울 점이 많았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은 행동이다. 나약하지만 그 나약함 안에 힘이 들어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살겠다는 확신. 그날 밤 내가 쓴 단어들 중 가장 강한 단어는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의혹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라고 쓴 부분 말이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ㅣ 분명 어둡고 슬픈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자꾸 어떤 틈으로 사랑이 새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ㅣ 메모장을 보다가 니체의 말을 많이 적어두었다는 걸 알게 되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좋은 사물들은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목표에 접근한다. 그것들은 고양이처럼 등을 둥글게 하고 가까이 있는 행복 앞에서 속으로 기분 좋게 그르렁 거린다. 모든 좋은 사물들은 웃고 있다. 어떤 자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는 그 걸음걸이가 보여준다. 자, 내가 걸어가는 것을 보라! 하지만 자신의 목표에 접근하는 자는 춤을 춘다.  


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ㅣ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의 관계가 담긴 이 책은 근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적 방법이나 방향은 서로 달랐지만 그의 작품과 내가 추구하는 시적인 감성은 밀접하게 닿아있다고 느꼈다. 로버트는 항상 말했다. “네가 보기 전까지 완성된 게 아니야.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  심오한 내용인데 쉽게 풀려있어서 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불운은 대체로 참된 길에 등을 돌리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깨를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로 걸고 끌어서 참된 선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요시모토 바나나 <암리타>  책을 덮었는데 꿈에서  기분이 들었다. 여운이 남는 문장이 많은 소설이었다.

잘 기억해둬야지, 하고 생각했어. 그 느낌 그대로를 고스란히. 말이 아니고 순서도 아니고, 너무 보거나 들으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꼭 가슴에 간직하고 함부로 끄집어내지 않도록, 신선도를 유지하도록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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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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