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2020년이다. 며칠 전부터 올해를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예린이가 2019년을 함께 정리하자며 질문을 준비해줬다. 2019년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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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2019년은 어땠어? 2018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힘든 시기도 많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한 시기도 많았어. 내 인생에서 아마 가장 많이 웃고 울었던 1년이었던 것 같아. 일적으로는 평소 나의 관심 분야와 거리가 있는 것들을 많이 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이 배웠어. 또 힘든 시기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극복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올해 너의 마음을 움직였던 문장이 있어?
'자유롭게 홀로 하나 되는 삶'. 친구가 해준 말인데 들은 이후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 내가 요즘 하는 생각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인 것 같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혼자가 되고 싶고,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잖아. 그 사이에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한 사람의 균형이 깨지면 그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이 흔들린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두 자유롭게 혼자가 되었다가 다시 만나, 하나가 될 수 있는 삶. 너무 멋진 말인 것 같아.
네가 2019년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뭐야?
SIWA지. 1년 반 동안 함께 일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동기들이 점점 더 좋아졌어. 배울 점도 많았고 나와 다른 점에서 오는 좋은 자극도 있었거든. 또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어. 예쁜 추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나누는 것보다 행복한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동기들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만난 가족들은 나에게 가족, 사랑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선물해줬어. 시와 덕에 2019년은 좋은 사람들과 어디에서도 하기 어려운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정말 그래 보였어. 다 좋았겠지만 뉴욕에서의 시간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순간은 언제야?
밤에 거실에 둘러앉아 티를 마시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그때 나누었던 대화는 먼 훗날에도 곱씹을 것 같아.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잖아. 그 날은 정말 잠이 안 오더라고. 새벽 두 시까지 수다 떨다가 결국 그다음 날 늦잠 잤어
시와 동기들이랑 다른 일도 같이 하지 않았어?
맞아. 상반기에는 글로벌 탐방단에 지원했었고 하반기에는 인터뷰를 따러 다녔어. 그거 말고도 작지만 함께 한 것들이 너무 많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리끼리 서로를 인터뷰한 거야.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친구들을 더 깊게 알 수 있었어. 적절한 시기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그 인터뷰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어?
트렐로를 활용해 12개의 공통질문과 8개의 개별 질문을 리스트업 했어. 공통질문은 주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었고 개별질문은 그 사람만의 관심사나 특징에 관한 거였어. 네가 지금 나한테 질문하는 것처럼 진행했다고 생각하면 돼.
궁금해.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 하나만 소개해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냐'는 질문이었어. 이전까지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살았었는데 2019년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솔직한 표현'이었고.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말해야 아픔을 주지 않으면서 나의 아픔을 전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럼 올해 아쉬웠던 건 뭐야?
1달 넘게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마감 기한을 놓쳐서 못 냈어. 주최 측에서 해마다 늘려주던 마감기한을 올해는 늘려주지 않았거든. 그렇게 노력했는데.. 늘린 마감기한에 맞춰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너무 화가 났어. 그리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제작을 미루던 게 정말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의 결과를 내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말이야. 다신 이런 실수는 없을 거야.
많이 속상했겠다. 힘든 시기도 있었을 텐데 그런 너에게 힘이 되었던 건 뭐야?
'주변 사람과 보낸 시간'이 가장 크고 그다음은 '여행'이었던 것 같아. 힘든 상황에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어. 그래도 안 되겠다 싶을 때는 틈틈이 여행을 갔었지. 지금은 낙산사 템플스테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 파도 소리와 내 발소리 밖에 안 들리는 바다 옆 산책로를 걷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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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새로 관심이 생긴 분야 있어?
심리학과 뇌과학이야. 상반기에 들었던 '집단 상담'이라는 수업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 매주 수업시간에 익명으로 집단 상담이 이루어졌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모두 비슷한 듯 다른 모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더라고. 그리고 잘 살아가기 위해 때론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게 꼭 필요한 거라는 내 생각에 확신이 들었어.
나도 그런 수업 들어보고 싶네. 또 기억에 남는 다른 수업 있어?
'세계 미술관 순례'라는 수업이 정말 좋았어.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미술관에 있는 작품 중 일부를 골라 교수님이 소개해주시는 수업이야. 미술사가 너무 방대해서 공부할 엄두가 안 났었는데 수업을 듣고 나니 큰 그림은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올해에도 팀플을 많이 했을 텐데 어떤 팀플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궁금해.
팀플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기억에 남는 팀플은 많은데 가장 색달랐던 건 해커톤 팀플이야. 과에서 팀플 하던 것과는 다르게 '협업의 힘'을 가장 크게 느꼈던 팀플이었거든. 나는 기획자 겸 디자이너로 참여했었는데 나머지 팀원들이 개발자였어.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도, 풀어가는 방식도 너무 달라서 신기하고 또 재미있었어.
전시 보러 많이 다니잖아. 올해 가장 좋았던 전시는 뭐야?
4560 디자인 하우스 전시야. 1950-70년대 작품을 모으는 콜렉터가 운영하는 개인 전시인데 책에서 볼 법한 제품들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해볼 수도 있어. 두 번 방문했었는데 두 번 다 너무 좋았어. 꼭 가봐.
이소연이 선택한 올해의 강연은?
작년보다 올해에는 강연을 별로 못 들었어. 고르자면 상반기에는 인터브랜드 BKB 강연, 하반기에는 스페이스 오디티 크리에이티브 컨퍼런스인 것 같아. BKB 강연은 인사이트풀했던 강연이었고 스페이스 오디티 크리에이티브 컨퍼런스는 나이키, 플러스엑스, 뉴닉, 스리체어스 같이 평소 눈여겨보던 브랜드들의 브랜딩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올해 읽었던 책 중 좋았던 책은 뭐야? 추천해줘.
상반기에 읽었던 책 중에서는 <일하는 마음>, <넨도 문제해결연구소>. 하반기에는 <잡스 에디터>를 재미있게 읽었어. 그리고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뉴욕에 들고 갔던 책인데 그 상황에 참 잘 어울렸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줬던 책이야. 넨도 책 빼고는 누구나 한 번쯤 읽으면 좋을 내용인 것 같아.
네가 올해 가장 오래 머무른 공간은 어디야?
수업이나 팀플을 위해 간 곳은 '르네상스 404호'와 '명신 215호'고 혼자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낸 곳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야. 친구들이랑은 한남동에 있는 'Collage'라는 카페를 자주 갔었어.
올해 기억에 남는 영화는 뭐가 있어?
상반기에는 오열하며 봤던 <토이스토리 4>랑 <디터 람스>. 하반기에는 독립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이타미 준의 바다>랑 <벌새>.
올해의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상반기에는 Version of me (Sasha sloan)랑 Speechless (Dan+Shay), 하반기에는 Company you keep (Mareen morris), Still newyork (MAX & Joey Bada$$), 산책 (백예린) 노래 많이 들었어.
이소연의 2020년은?
휴학을 하지 않을까? 아직 휴학 시기를 어떻게 채울지는 모르겠어. 1월에 토론토대학교에 가는데 일단 그곳에서의 생활을 마음껏 즐길 예정이야.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2020년에도 2019년처럼 좋은 사람 많이 만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