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쓰기

작은 불꽃 하나가 톡 하고 터지던 날들

by 들꽃 deullggott




결국 난 소설가나 책방 주인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나를 뒤로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아마 더 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말했다면 부모님도 허락해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내 길이 무엇인지 흐릿해졌고 그 길이 맞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재능은 없어 보이고 무얼 해야 할 지도 막연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청소년기부터는 인생의 회의감과 무력감이 찾아와서 내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미 내 기질엔 인생의 허무함과 우울함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서 긍정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 많았다.

이 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되고 싶은 나’와 ‘부모님이 원하는 나’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알고 미리 체념한 것도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내 인생은 자연스럽게도 내 의지가 아닌 부모님이 기대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반려자를 고르는 일도 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기 때문에 결정했다.

간간이 행복했지만 자주 허망했다.

그렇다고 커다란 불행을 만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생기가 부족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흘러가던 2010년도에 직장에 다시 다닐 결심을 했다.

결혼과 육아로 멈추게 되었던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가정에 머물기보다는 외부로 나아갈 것을 종용하던 시절이었다.

제법 무겁고 힘든 미래가 펼쳐지고 있었고 때마침 나에게로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때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내 인생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자'.

그리 마음을 먹었지만 결혼 후 10여 년이 지나서 다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뚜렷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고 늘 박한 점수를 매겼다.

그나마 초등학생들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 피아노 학원, 독서 논술 학원, 그리고 지역아동센터 등에 이력서를 냈다.

다행히도 지역아동센터에 채용이 되었고 떨리면서도 설레는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 다니게 된 센터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는데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더 좋았다.

도시의 화려함보다는 자연을 더 좋아하다 보니 점점 더 시골로 들어가는 분위기가 나에게 안정감을 전해준 것이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드넓은 하늘과 논들은 막막한 현실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흔들리는 차에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책을 읽는 것은 멀미가 나는데 그나마 핸드폰으로 쓰는 것은 괜찮아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페이스북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할 수 없는 나라에 살았던 후배가 이 사실을 알고 글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고, 나는 한 달 분량의 일기를 모아서 매달 보내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나는 그 글들을 보내주는 김에 한글 파일로 모으기 시작했다.

2010년도 가을부터 2017년도 봄까지 모은 그 글들은 A4 기준으로 3,000장이 넘는다.

그 이후에는 밴드에서 일상을 나누었기 때문에 드문드문 기록이 남았다.



이 글들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 동안 일상을 관찰할 뿐 아니라 나를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신기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나이 사십을 훨씬 넘겨서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갱년기였는지 몸이 급격하게 나빠지려고 그랬는지 밤마다 잠을 설쳤고, 이왕 일어난 김에 글을 썼다.

결국 몸이 많이 나빠져서 5년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둘 즈음엔 몸도 마음도 많이 허물어져 있었고 나를 둘러싼 환경 모두가 희망이 없어 보였다.

건강상의 이유, 남편과의 관계,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등 무엇 하나 계속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오로지 글쓰기였다.

글을 쓰는 시간만이 내가 아직 살아 있는 느낌이었고, 계속 살아도 된다는 의무감을 부여해 주었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글을 쓸 때만은 나의 존재가 아직은 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되겠다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더욱 글을 쓰며 나를 파내기 시작했다.

나의 좋은 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어두운 면들을 바깥으로 드러내었다.

어떤 이는 그런 점까지 수용해 주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런 모습에 당황스러워했다.

밝은 면이 많은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 눅눅하고 습한 글들이 쏟아져 나오니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도 버거워서 힘든데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닥까지 긁어대며 글로 다 보여주니 그 기세에 눌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썼다.

다른 글은 쓰지 못하고 나에 관해서만 썼다.

내 일상, 내 생각,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싫어하는 것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나를 사랑하는 이들,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내가 꿈꾸는 것들, 내가 가고 싶은 길.

논리와 이성이 아닌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볍게 나를 맡기며 글로 풀어놓으면 때론 일기가 되고 때론 시가 되었다.

오늘은 뾰족한 글을 쓰며 나를 후벼 파고 또 다른 오늘은 시를 쓰며 상처 난 나를 보듬었다.

어떤 날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어느 날은 내 생에선 오지 않을 것 같은 80살의 나를 상상하며 편지를 썼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나는 상당히 끈적하고도 습한 우울성 기질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있었을 이 기질은 병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이다.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볼 때 의도적인 긍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 훨씬 눅눅하고 어두운 부분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처음엔 나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나중에는 감사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인생을 바라볼 때 그림자와 같은 흐릿함이나 뒷면을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시선이 있으며, 신이 나에게 준 고귀한 선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은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으며 누군가의 삶의 무게를 온전하게 다 받아낼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다는 큰 용량의 그릇인 것 같아도 계속해서 쏟아내는 내 슬픔을 끝까지 버티며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애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은 일정한 양의 햇빛을 보아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달까.

하늘 아래 볕을 쬐고 공기를 마시는 일상이 사람을 살리듯, 우울과 절망만으로 점철된 글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결국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사실을 느끼고 나니 오히려 사람을 향한 글, 무언가를 이해받고 싶어서 쓰던 글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나를 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어떤 글을 써도 나만의 색깔로 쓰면 된다는 자유로움을 획득한 느낌이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쓰는 오만이 아니라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러운 글을 추구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이 페이스북의 기록이 너무 방대해서 나조차도 다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 기록들이 있어 참 감사하다.

기록하지 않았으면 나조차도 잊어버렸을 내용들, '내 인생을 찾아가는 여정'이 빼곡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을 기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상은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 길은 커다란 하나의 사건이 어느 한순간 나를 데려간 것이 아니다.

매일을 살다가, 그 매일이 때론 힘들고 버거워서 울기도 하다가, 그런 자잘한 날들이 모여 나를 들여다보고 결국 만나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였는가.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나는 어떤 미래를 기대했는가.

그 미래를 위해 지금 어떤 현재를 살고 있는가.

지금이라도 현재를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는가.

바꾸고 싶다면 나는 무엇부터 할 것인가.


물론 이런 생각들이 한 번에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런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살아본 적이 없다.

내게 주어진 길을 순응하기만 하고 살았을 뿐, 내가 직접 내 길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일기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글 여행은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길이 되었다.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날들이 쌓여 갔다.

참 늦게 찾아온 시간이었지만 그러기에 더 소중한 시간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내 꿈이 조금 더 구체적인 그림으로 확장된 것은 SNS 활동의 영향도 컸다.

페이스북과 밴드에서 오래도록 글을 쓰면서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내 일상이 다른 사람들과 공명이 되면서 삶을 보다 더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조금씩 나의 내면이 건강해지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와 너를 엮어주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해서 그 사람의 사연을 들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싶어 한다는 것도, 내게 있는 무언가를 나누는 행위를 기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글이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너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내 생각이 너에게 가닿고, 내 감정이 너에게 스며들어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다.

이런 생각은 글쓰기만이 아니라 책도 같은 색깔로 다가오게 되었다.

거창하고 좋은 시설이 아닐지라도 동네 한 귀퉁이에 마음껏 책을 읽으러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나누고 싶은 곳이라면 더 좋겠지.

마음 편하게 쉬고 싶은 안식처라면 잠시라도 쉬다가 다시 자신의 삶으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런 나의 바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릴 적의 꿈이었던 책방 주인이나 도서관을 생각하게 했고, 가슴 저 속에서부터 작은 불꽃 하나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일이었고 내가 속한 환경에서도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마음은 갈급하지만 현실은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찾은 내 꿈이 과연 이루어질 수는 있을까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미 조금씩 꿈에게로 걸어가는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힘들었던 나를 일으켜 다시 살게 해 준 일들을 다시 기억하고 기록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10개의 꼭지 중에서 가장 가슴에 담는 글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글이 길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좇는 시간도, 이룬 시간도 이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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