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렛츠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부모님의 책 사랑으로 인해 방학마다 전집을 읽던 나는 자연스럽게 '소설가’의 꿈을 꾸었다.
어떻게 해야 소설가가 될 수 있는지 방법은 몰랐다.
어느 학교를 가고 어떤 학과를 나와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내 세포의 하나인 것처럼 당연했다.
책 속에 묻혀 사는 책방 주인이거나 글을 가르치는 섬마을 선생님도 괜찮다고 여길 만큼 내겐 책이 세상의 전부였다.
내 세상의 현재든 미래든 책과 글을 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의 꿈은 그렇게 자리를 잡아갔고 매일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 지냈다.
5학년 때 만난 홈즈와 루팡 덕분에 '제7기병대'나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작품에도 열광했다.
6학년 땐 책상 서랍에 책을 펼쳐 넣어 두었다가 수업이 끝나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책을 꺼내 읽었다.
심지어 밥 먹는 것도 잊고 책만 읽는 경우가 잦아져서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공부를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책만 너무 읽어서 걱정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그 충격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내 방에 들어왔을 때, 기막힌 타이밍으로 난 소설을 쓰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내 이름은 로렛츠다.'로 시작하던 첫 소설.
로렛츠는 아빠와 살고 있던 청소년기의 여자아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아빠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로렛츠는 위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장을 하였고,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크고 작게 일어나는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었다.
아마 그때 남장 여자 주인공인 만화가 많이 등장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또 여자스러움을 기대하던 사회를 비껴가고 싶어 하던 내 기질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창작은 늘 모방에서부터 꿈을 틔운다.
아무튼 <여 탐정 로렛츠>의 도입 부분을 몰입해서 쓰느라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엄마가 문을 확 열고 들어오셨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그 공책을 바로 압수당했다.
엄마의 랩이 순식간에 와다다다 터져 나왔다.
네가 지금 정신이 있냐 없냐, 오늘 엄마가 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왔는데 뭐라 한 줄 아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고 있으면 어떡하냐, 그러라고 전집을 사줬는 줄 아느냐, 공부 잘하던 내 딸이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 이 공책은 압수다, 정신 차리고 공부해라.
쏟아져 나온 엄마의 분노를 고스란히 먹고 공부에 전념했다면 뭔가가 좀 달라졌을까.
나는 쪼그라든 눈빛으로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었다.
‘엄마한테 들키지 말고 몰래 소설을 써야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방학 때마다 전집을 사주셨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좋아했고 또 그만큼의 능력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조선업에 종사하셨고 나름 안정된 자리여서 관사에서 살기도 했다고 한다는데, 자식들에겐 공부하는 환경을 물려주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하고 집에서 놀고 있으니 동네 어르신이 지금의 야학 같은 곳을 소개해 주셨다.
얼결에 찾아갔다가 공부의 맛을 알게 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땐 도지사상까지 받으셨다.
엄마는 국민학교 땐 지금으로 말하면 영재 수학 시험에서 1등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는데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단하게 되었다.
집안이 어려워지니 할머니는 셋째와 넷째였던 외삼촌과 엄마를 휴학시킨 것이다.
심지어 1등만 하던 아이를 데리고 아침저녁으로 좌판을 펴고 장사를 하셨다.
내성적이었던 엄마는 학교 친구들이 학교에 오가는 길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때의 수치스러움과 절망 때문에 학교를 쉬는 3년 동안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이렇게 공부에 대한 한이 맺힌 두 분이었으니 공부에 대한 열정이 정말 남다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산꼭대기에 살 때부터 아버지 방은 따로 있었다.
그 마을이 정부 정책에 의해 다 철거되고 다른 집 반지하로 들어가 살 때에도 아버지 방은 따로 있었다.
방이 두 개인 집이면 안방과 아버지방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방을 서재라고 불렀다.
안방에선 모든 식구가 생활하고 잤으며 서재는 무조건 아버지가 공부하는 방이었다.
방이 세 개, 네 개로 늘어나도 늘 그중 하나는 서재였다.
직업 특성상으로도 아버지는 언제나 책을 읽고 모으고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학생이었는데, 대학원을 몇 군데나 다니셨고 결국 쉰다섯 살쯤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 집은 축제를 벌였다.
논문 쓸 때의 아버지는 초췌했지만 학위를 받은 후의 아버지는 활짝 웃었다.
아버지는 교수 일을 병행하며 학문을 사랑했는데 책에 묻혀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이셨다.
이 모든 내조를 엄마는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셨다.
엄마 또한 공부에 대한 한과 집착이 깊게 남아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겨우겨우 중학교를 졸업한 후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설움을 겪으셨다.
그보다 훨씬 나중에서야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셨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땐 우셨다.
엄마의 지난한 세월과 내가 겹치며 그렇게나 행복하고 감격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 내가 결혼을 한 이후에 들은 것들이다.
우리가 어렸을 땐 부모님의 상처와 아픔을 몰랐다.
부모님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랐듯이.
우리는 참 행복하고 좋은 가족이었지만, 서로를 몰라서 다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이기도 했다.
소설가를 꿈꾸던 나, 책방 주인을 그려 보던 나를 부모님에게 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책이 내게 얼마나 즐거운 세상이고 책 속에 묻혀 있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또한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다.
부모님은 우리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당신 인생의 목표이자 소원인 것처럼 사셨다.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설레게 했던 꿈들은 가슴에 깊이 묻은 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살게 되었다.
우리는 그래도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