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발품, 꿈틀꿈틀
가능성이 없더라도 그냥 무언가라도 자꾸 시도해 보도록 부추기는 것이 꿈이다.
문이 열릴지 열리지 않을지 고민하면서도 무작정 들이밀어 보는 게 꿈을 가진 자의 무의식 세계다.
그것을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내 발길은 현실을 떠나서 꿈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도서관이 먼저 끌린 것은 아니었다.
내겐 언제나 책방이 먼저 다가왔고 헌책방도 매력 있어 보였다.
2013년도 즈음부터는 '독립서점' 혹은 '독립 책방'이라는 것이 조금씩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서점이라 하면 대학 교재나 중고생 참고서부터 생각날 정도로 조금은 딱딱한 이미지였는데, 독립 책방은 그보다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집과 직장, 그리고 교회에서의 만남밖에 없던 내가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책방이나 도서관의 꿈을 기억하게 된 것도 돌이켜 보면 축복이었다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주말이나 휴가를 사용해서 독립 책방을 조용히 방문하며 기웃거릴 때가 많았다.
내가 살던 고양시의 유일한 독립서점이었던 '미스터버티고 서점'이 탐방 기록의 첫 시작이었다.
처음엔 책을 구입하고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공간을 누렸다.
들어가자마자 독립 책방에 관한 관심을 보이면 부담스러울까 봐 조용히 앉아 공간을 음미했다.
미스터버티고는 소설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이었는데 사장님이 직접 책을 출간하시기도 했다.
나는 시간을 만들어 더 자주 갔는데, 북 콘서트나 독자를 위한 행사에 참여하며 독립 책방이라는 곳이 책을 구매하는 행위 말고도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알고 있던 책방의 이미지가 그저 하나의 사업이고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이었다면, 가까이에서 본 독립서점의 모습은 종합예술의 느낌이 강했다.
책을 매개로 하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제공자와 수요자가 서로 논의하고 확장하며 책의 세상을 점점 넓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든 채 문학과 예술과 쉼과 나눔과 지식의 향연 등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서울 쪽으로 발을 넓혔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서점의 형태라기보다는 창작물을 만들고 공급하는 글 공장 느낌이 들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을 통해 굉장히 다양한 창작물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괜히 코끝이 시큰해진다.
올해 들른 대전의 독립 책방에서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출간물들을 여럿 만나게 되니 10여 년간 꾸준히 걸어오셨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근처에는 다른 독립 책방들이 모여 있었는데 거의 작은 공간이었고, 책 말고도 다른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특색 있는 커피 전문점 같은 느낌이었는데, 사장님이 직접 집필하시고 책에 관한 여러 프로그램을 꽤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 베테랑급이었다.
이 밖에도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판매하는 독립 책방에 가보았고, 책과 하룻밤 자기도 하는 북 스테이로 유명한 책방에 간 적도 있다.
전주에 놀러 갈 기회가 있어서 일부러 찾아가 본 책방은 책방과 작업실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소설 작가로도 활동하시고 다른 작가들과의 모임을 그곳에서 운영하시기도 했다.
그 시절의 독립 책방은 지금처럼 무언가 체계가 잡힌 것도 아니고 홍보가 빠른 편도 아니었으니 이 세계는 아직은 미지의 세계이자 불안한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책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책방 운영자들은 책과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한 발 한 발 떼어보는 걸음들로 충만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책방은 강화도의 '국자와 주걱'이었다.
집에서 버스로 이동하려면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시골길을 걸어서 가야만 했는데, 내가 심각한 길치임에도 열심히 찾아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겨우 도착했는데 마침 휴일이어서 책방이 닫혀 있는 상황이었다.
사장님은 책방이 보고 싶어 일산에서부터 세 시간이나 걸려서 왔다는 내 전화를 받으시곤 외출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와 주셨다.
시골집을 개조해서 만든 책방은 아늑하고도 공방처럼 아기자기했다.
<눈물은 왜 짠가>의 저자인 함민복 시인이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나눠주는 책방이 돼라'는 의미로 국자와 주걱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본 툇마루는 내가 꿈꾸는 세상을 다시 기억하게 해 주었다.
뻥 뚫린 대청마루보다는 훨씬 작지만, 나의 세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해 주는 아늑한 곳을 꿈꾸는 나에겐 이 툇마루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나중에 도서관을 열 때 '툇마루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은 이때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2, 3년 동안 나는 수많은 책방을 찾아내고 시간을 만들어 많은 곳을 다녀보았다.
그때의 그 설렘과 열정을 잊을 수 없다.
꿈을 이루는 일에는 큰 그림도 중요하지만, 작고 세밀한 부분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큰 그림을 어떤 식으로 골격을 이룰 것인지 경험하고 또 직접 벽돌을 나르는 것 같은 땀 흘림도 필요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때의 발품이 없었더라면 독립 책방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과 그 안에서 실제로 그 꿈을 이루어가는 이들의 애환을 다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꿈을 이룰 수는 없어도 그 꿈을 가슴에 품고 ‘언젠가는 내게도’ 이 꿈이 이루어질 날을 소망하는 마음도 금세 식어버렸을 것이다.
이 세월 동안 내가 잘한 일은 꿈으로 가는 연료를 부지런히 모은 일이다.
어디로 갈지 아직은 몰라도 언제든 달려 나갈 수 있는 힘을 비축해 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이렇게 몇 년 동안 독립 책방을 돌아다니면서 오히려 내 상황에서는 책방을 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경제적으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었고, 책을 들여오고 파는 행위들은 내가 감당하거나 실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여러 책방을 다니며 보게 된 것은 철저한 현실이었다.
꿈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책방 운영자들은 초췌하고 피로해 보였다.
그럼에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책방을 소개해 주시는 분들은 위에 적었던 저 책방들이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위의 책방들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닐까.
책방을 열 수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책을 가까이하면서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도서관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10평의 공간과 1,000권의 책, 6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으면 <작은도서관>을 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도서관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력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도서관을 하고 살 만큼 우리 가정이 넉넉한 때가 아니었기에 도서관은 정말 '그림의 떡'이었고, 그 그림조차 소유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가슴에만 꿈을 간직한 채 2015년도에 새 직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지역아동센터였다.
건강 문제로 두 달을 쉬었지만 계속 쉴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사람인 등을 훑어보던 중 아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요즘 일하고 있어요?"
"아뇨, 지금은 쉬는 중이에요."
"아주 쉴 거예요, 아니면 잠깐 쉬는 거예요?"
"하하. 잠깐 쉬는 거죠. 안 그래도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나랑 친한 분이 지역아동센터를 하고 있었는데, 큰일을 당해서 정리 단계에 있거든요. 처음에 시작한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다시 시작하자고 겨우 마음을 돌렸는데 한마음으로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하네요. 한 번 지원해 보겠어요
"아... 네. 혹시 어떤 일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렇게 알게 된 사정은 이렇다.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오래 일하셨던 운영자님은 예정보다 조금 일찍 명예퇴직했다고 한다.
그 열정이 끊기지 않아 고양시에서는 처음으로 무료 수학 공부방을 열었다고 한다.
후원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여서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하는 중인데, 고용 시설장과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큰일을 겪으신 것이다.
사람에 너무 놀라고 상처를 많이 받았던 운영자님은 센터를 폐쇄하려다가 겨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운영자님의 지인이자 나를 아끼시던 분이 나를 소개해 주신 것이다.
당시, 나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힘든 상황이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4명밖에 남지 않아서 내게도 좋은 기회였다.
다른 센터로 옮기거나 그만두었던 아이들이 돌아와서 인원이 금세 채워졌지만 한 달 정도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게 시작된 이곳은 내게 범상치 않은 기적을 안겨 주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