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가 있는 작은도서관의 시작

툇마루도 좋았지만

by 들꽃 deullggott



우리 센터는 2층 건물의 옥상에 있었는데 조금 신기한 구조였다.

천장이 뚫려 있는 3층이랄까, 사각형의 옥상에 제법 여러 개의 상가가 포진해 있었다.

옥상의 사각형 중에서 세 개의 면에 드문드문 상가가 있었는데 그중 한 면이 다 운영자님의 소유였다.

센터를 중심으로 왼쪽은 교회가 있었고 오른쪽은 작은 상가가 몇 개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고용 시설장으로 2년 반 정도를 일했고 운영자님이 시설장이 될 수 있는 기간쯤에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도 3년간 실무를 쌓아야 시설장이 될 수 있는데, 운영자님이 마침 그 3년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으면 운영자님이 시설장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고, 직원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매우 헷갈리는 상황이 펼쳐질 것은 당연했다.

이 직장에서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내게 펼쳐진 길이니 그저 걸어가 보리라 마음먹던 때였다.

게다가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아 일 년쯤 쉬는 것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쉽고도 희한한 방법으로 도서관을 시작하리라곤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



내가 일하는 지역아동센터는 5개 영역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그중 하나가 '정서지원'이고 거기엔 개인 혹은 집단상담이 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집단상담을 위해 방문한 선생님이 내가 어릴 때 알던 언니여서 둘 다 놀랐다.

그 언니와는 시설장과 선생님으로 만나는 동시에 일이 끝나면 동생과 언니 사이가 되어 어릴 때보다 더 친해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퇴사와 더불어 도서관의 꿈을 털어놓았고 언니는 상담실을 열고 싶은 꿈을 내비쳤다.

마침 센터 옆 공간에 운영자님 소유의 두 곳이 비어 있어서 타진해 보니 맨 끝의 공간이 딱 10평이었다.

둘이 같이 해보자는 의견을 모았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보증금에 월세에 관리비까지 다 감당하려면 만만치 않았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나로서는 직장도 다니지 않으면서 도서관을 여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일이 풀리는 때가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몰라 우선은 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던 언니가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하고 난 20만 원만 보태기로 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음을 알고도 언니는 혼자 시작하기엔 두려우니 한 공간에서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계약일이 다가오자 언니는 현실적인 부담을 느끼고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다 될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가 엎어진 계약 때문에 운영자님은 마음이 상하셨다.

그런데 그 상황이 내게는 기회로 이어지게 되었다.

“선생님, 어차피 20만 원은 내려고 했던 거잖아.”

“어... 그렇죠...?”

“그럼 내가 20만 원만 받을 테니까 한 번 해봐요.”

“네???”

“꿈을 꿨으면 한 번쯤 도전해 봐야지.

계속한다고 하면 내가 3년까진 그것만 받을 테니까 부딪쳐봐요.”

“아무리 그래도 20만 원이면 관리비도 다 안 되는데요?”

“알아요. 보증금이랑 월세, 관리비까지 다해서 20만 원만 받을 테니까 한 번 해보라고요..”

“너무 손해 보시는 건데 제가 어떻게 하겠다고 해요.”

“어차피 선생님들한테 빌려주려고 했던 거예요. 내 맘 바뀌기 전에 얼른 계약서 씁시다.”



전혀 예상 밖의 전개였다.

그렇게 얼결에 계약을 하고 도서관을 시작했지만 바로 문을 열 수는 없었다.

가족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남편뿐만 아니라 근처에서 사시던 친정 부모님도 나의 결정에 의아해하셨다.

현실적으로 보면 너무 뜬금없고 기가 막힌 결정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꿈을 좇을지 현실을 따를지 고민하던 시점에 지인 한 분이 해준 말이 분기점이 되었다.

"딸들은 엄마를 따라간다고 해요.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사느냐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엄마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면 딸들도 엄마처럼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는 거죠.

그러니 들꽃님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꼭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요."

당시 내 딸들은 대학생과 고등학생이었다.

수동적으로만 살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일어서고 성취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어차피 건강 때문에 일 년은 쉬고 가려던 차였으니 쉬는 김에 도서관을 열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우여곡절 끝에 열게 된 도서관은 지인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는 동생과 친구는 도서관 이름을 지어주고 글씨체를 골라주며 디자인에 힘을 쏟아 주었다.

"도서관이어도 여백이 좀 느껴지는 이름이었으면 좋겠어.

사실 툇마루라는 이름도 나한텐 딱 맞는데, 어감이 모두에게 통하는 게 아니라서 좀 아쉽긴 해."

"언니가 생각해 둔 이름 중에서 또 다른 건 뭐야?"

"내 이름이 들꽃이니까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오! 괜찮아, 들꽃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있고. 들꽃 작은도서관. 좋은데?"

"그런데 난 그냥 평범한 그 이름보다는 '작은도서관 들꽃'이 더 좋은 것 같아, 그 사이에 쉼표가 있는."

"작은도서관, 들꽃. 이렇게? 쉼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야?"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기간은 일 년이야.

더 오래 하고 싶지만, 솔직히 현실만을 본다면 그보다 더 길어지진 않을 거야.

일 년 동안 열게 되는 도서관이 책만 보는 곳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면서 또 쉬어 갈 수 있는 쉼터의 역할도 하고 싶어.

도서관의 역할도 하지만 사랑방도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도서관과 도서관 이름인 들꽃 사이에 꼭 쉼표를 넣고 싶어."



아는 동생은 디자인을 뽑아 주고 건축과에 갓 들어간 딸은 공간 배치를 도와주었다.

반대하던 남편은 결국 내 뜻을 수용해서 내부 공사를 도맡아 하였고 부모님은 마음으로 응원해 주셨다.

쉼표가 있는 도서관은 그렇게 하나씩 준비를 하고 드디어 12월에 문을 열었다.

계약한 지 40일 만에 열린 문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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