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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 Apr 23. 2016

#1 영혼을 세우는 관계의 공동체

저자 래리 크랩  /   김명희 옮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어디에 계신가? 그분이 선하신 것은 알지만 그 선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가끔 그분을 미워하는 것 같다. 미워하는 것이 합리적인 듯 보인다. 미워해야 마음이 안정되고 그나마 생기가 도는 듯하다. 하나님은 내게 모습을 보이기는 하실까? 치유에 대한 갈망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갈망할 정도로 내가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 한 가지라도 바로잡거나, 이치에 맞는 일을 하실까? 하나님은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실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해서는 영광을 얻으실 수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나를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 하나님의 친구라고 말한다. 그런데 친구를 이런 식으로 대하신다면, 그분의 원수가 되는 것도 그다지 나쁠 것 같지 않다. 몸이 아프다. 돈은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부모님과의 관계는 좋지 못하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인데, 가끔은 이미 지옥에 있다는 느낌이다. 하나님은 정확히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은 없다.     


이 책의 저자 래리 크랩은 자신이 배우고 무수히 많은 성령님과의 관계를 통해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주장은 영적 우정, 영적 지도가 교회에서 매우 드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반적인 의미의 교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좋은 친구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의자를 돌리고 대화를 나누는 영적 공동체가 더 많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벽을 허물만큼 안전한 곳, 우리의 깨어짐을 인정하고 드러낼 만큼 안전한 곳을 만드는 것이다. 그때에야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이 발휘되기 시작하며,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회복시키는 도구로 공동체를 사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해 주먹질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영혼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 내 삶은 거덜 났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군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고 우린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마음을 쏟아 내며 울었지만 나는 곧 떠나야 했다. 그에게서 떠나 올 때 그가 내게 소리쳤다. “당신을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신 역시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는군요. 그의 곁을 떠나며 되돌아보니, 그는 다시 홀로 서서 하나님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외쳐 대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친구와 더 오래 같이 있어야 했을까? 잘 모르겠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위해 옆에 있어 주어야 할까?      


우리들은 모임에서 수많은 고민들을 털어놓았었고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의 격려를 들었다. 충분히 오랫동안 상담을 받아왔고, 약을 복용했으며, 종교적인 처방을 받았다. 격려를 받고. 권고를 듣고, 기분 전환을 하고, 지침을 들었다. 그러나 영적 삶에는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해결책에만 초점을 두는 문화, 영적인 성장보다는 정서적인 치유나 상황 개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의 공동체는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없고 도움을 줄 여력도 없는 무능한 단체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친구에게 이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기도해 주겠다는 말은 치과에 데려다주겠다는 제안보다 쓸모없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제가 원하는 것은 바로 주님입니다. 저는 주님 안에 피합니다. 저는 구조받기 위해 산으로 달려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보다 더 높고, 저의 모든 고통보다 더 높은 반석으로 저를 인도하소서. 저를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이끄소서.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영적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다는 깊은 갈망, 하나님을 예배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영적인 대화에 참여하고 싶다는 깊은 갈망이 담겨있다. 나의 삶을 개선시키는 법을 찾기 위해 여념이 없는 이들이 아니라, 내가 여행하는 곳이 어디든 함께 있어 주는 형제자매들을 갈망한다.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교회를 세울 때다. 교회는 하나님께로 피하는 사람들을 위하고 결코 다른 도움을 찾아 도망하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타인과 함께하는 영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홍해가 갈라지는 모습이나 문둥병자가 고쳐지는 일, 태양이 멈추어 서 있는 것이나 관에서 일어나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에서 만났던 세 명의 청년들 때문이다. 그들은 나에게 특별한 말로 하나님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에게 강요나 권유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가 어렸음에도 그들의 얼굴과 행동에서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 보였고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했다. 내가 만약에 하나님을 부인할 생각을 했다면 그들에게 찾아가 속고 있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그들은 변함없이 열심히다. 가끔 그들의 기도소리가 들리고 찬양소리가 들리고 베이스 소리가 들릴 때 대견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영적 공동체는 진실함으로 정결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사람의 약점과 실패보다는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더 혐오하기에 공동체 구성원들은 약점과 실패를 인정한다. 그리하여 악취가 진동할 정도로 타락한 그들의 영혼 이면에 깨끗한 샘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 모두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 실패했다. 거절당하면 속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깊은 분노가 분출한다. 그 무자비함에 눈물을 흘리며 어느 누구도 우리를 다시 그런 식으로 대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결심한다.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하면서 우리 영혼은 위축당했다. 비판을 받으면 우리는 무가치하다고 느끼고, 그 때문에 참여하지 않고 뒤로 물어서거나 방어적인 오만함으로 덤벼든다. 우리는 새끼들을 보살피는 암사자처럼 맹렬하게 우리 상처를 보호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처와 자신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상처를 보호할 때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에게 두 개의 방이 있다고 말한다. 아랫방에는 자아에 대한 욕구와 자원의 욕구. 인생 경험들 나의 삶. 정의하려는 욕구와 성취 욕구들이 있다고 한다. 윗방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나야 열리는데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파악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을 분석하기보다는 그저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연약함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도 없고 자아를 찾으려는 강한 충동도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미 찾으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장 잘 팔리는 책은 자기 계발 도서다. 당신은 그것을 할 수 있다! 당신은 그것을 할 수 있다! 자립한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메시지든, 목사가 전하는 메시지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이 윗방보다는 아랫방에서 살아간다.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듣기 원하고 때때로 오랫동안 그곳에서 아주 행복하게 살아간다. 우리들은 대부분 친화적 관계를 즐긴다. 훌륭한 대의를 위해 돈을 모으고 환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협력한다. 상황이 어려워질 때면 위로를 얻는 몇 가지 믿을 만한 자원들에 의지한다. 맥주와 축구 경기 혹은 야한 영화나 좋은 예배 들이 그런 것들이다. 우리들에게는 바람직한 시각을 제시하는 상담가가 있고 우리를 도와줄 몇몇 도덕적인 친구들도 있다. 이러한 공동체는 매우 잘 돌아가는 듯이 보인다. 우리는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떠나고 싶은 강력한 욕구도 없다.      

영적 공동체는 사람들 사이에서 복음의 진리가 일깨운 성령의 욕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 세워진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함께 모일 때 어떻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지 골똘히 생각하라. 성령께서 당신에게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일깨우고 계시다면 그리고 영적 친구들로 가득하고 영적 지도자들이 간간이 섞인 영적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면, 나와 함께 하나님의 마음을 듣기 위해, 그분이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을 보기 위해 기도하자고 초대하고 싶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해 함께 여행하는 영적 친구들과 영적 지도자들의 공동체여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기도는 그 출발점이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거울이 된다. 즉,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보통 그분을 알리는 사람은 그분을 아는 사람들이다. 서로에게 그분을 보여 주는 그리스도인의 몸인 교회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흔히 교회는 교육, 건축, 선교, 예배들 다양한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다. 하지만 교회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 위해 존재한다. 그들을 작은 그리스도로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가 그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예배당, 성직자, 선교, 설교, 그리고 성경조차도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하나님은 다른 목적을 위해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다. 우주 전체도 다른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을 것 같지 않다.      

이제 서로 마주 보도록 의자를 돌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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