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음에 대한 짧은 글

수필 <1> 25.5.20

by zur

"아 현타 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이라도 마실걸."

체육대회가 끝나고 같이 집에 가던 선배의 말이었다. 확실히 그날은 이룬 것 없이 허무하였으며, 특히 방금까지 같이 이야기하던 선배에게 걸려 온 전화로 인해 엇갈리게 된 귀가방향이 '현타'에 대한 생각의 형태를 뚜렷하게 만들었다. 곧 그런 생각의 형태는 녹아서 '덧없음'이라는 경험에 대한 생각의 형태로 굳었다.


덧없음이란 건 언제 느낄까? 체육대회가 끝난 뒤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간다거나, <snowfall> 같은 앰비언트 장르의 음악을 듣는다거나 할 때의 경우이다. 내가 느끼기엔 이 덧없는 감정은 어감에서 오는 퇴폐적인 느낌과는 달리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2학년의 여자아이 같아서, 어떤 감정이 올 때 뒤에 숨어 같이 따라오기도 하고, 재잘대기를 좋아해 아무런 사소한 것이라도 나에게 전해주고 싶어 한다. 어떤 연고이든, 오기만 하면 나의 토론장, 쉼터, 욕실을 무척이나 헤집어놓고 가버린다.

이런 덧없는 감정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3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아니 어쩌면 향수(노스탤지어)와 같이 오는 덧없음만 반겨하고 즐거이 하는 것일까.

3년 전에 감명 깊게 본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라는 애니메이션에서 그 긍정은 시작되었는데, 그 애니메이션의 여운이 너무 심한 탓에 그 애니의 ost만 들으면 몸부림칠 만큼 큰 감정의 파도가 일기 시작하는 것이다.

급기야 나는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그 애니메이션의 여운에 대한 향수인지' 아니면 '그 사이버펑크적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하는 느낌을 함유하는 향수인지.(아네모이아라고 부르더라.)' 의문이 들고 나서야 나는 나의 좋아하는 기억들을 차츰 꺼내보았는데, 위치를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봤던 태산 같은 검정 물류창고를 봤던 기억과, 시골 한복판에 있는 GS25의 푸른 조명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급기야 나는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에 대한 동경적 향수라고 마음을 굳혔다. 그 향수와 덧없음은 같이 왔는데, 향수를 좋아하니 덧없음도 같이 좋아하기 시작하였다.


허무한 인생에서 우리가 기쁨을 느끼는 구간이 있다면 그것은 비교적 짧은 프레임단위의 행복한 순간들일것이다. 다행이게도 우리는 그 부분에 책갈피를 올려놓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명구절을 다시 보곤 한다. 의미를 찾으려 하는 우리에게 시간은 기꺼이 끝을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을 내어준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자아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그것은 1인칭에서의 영원이 아니겠냐고, 다들 당장 서점에 달려가 책갈피를 100개 1000개 10000개 사서 와보라. 그리고 마음에 꽂아보라.


그것으로 인생의 권태를 채우자.


유한한 영원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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