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자신이 똥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미술 시간에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무엇일까? 바로, "나는 똥손이야." 이 말. 그림을 못 그리는 자신을 낮춰서 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왜 그림 그리는 것에 자신 없어 하고 두려워 할까?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이 되면 아이들은 발달 단계 특성상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어릴 때는 마냥 그리는 행위가 즐거워서 눈치 보지 않았지만 학교에 와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 쟤 잘 그린다, 나는 저거 보다는 못하네. 자연스럽게 자신의 수준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분명 쟤도 나도 똑같은 시간 동안 그렸는데 나만 못 그렸을 때 아이들의 "미술 자존감"은 뚝뚝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남보다 못 그린 그림을 사람들 앞에서 전시해야 할 때 아이들은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럴 때 아이들에게 가장 편한 사고 방식은, 쟤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애고 나는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나는 미술에 재능이 없는 아이인가봐.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서서히 미술을 포기하게 된다. 미술은 타고난 아이들만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은채.
청소년기에 한 번 굳어진 신념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만해도 학창시절에 항상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을 보며 자괴감을 많이 느꼈었다.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나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이군,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안타까웠다. 그림을 썩 잘 그리지 못하던 내가 나름 출판을 할 정도까지 성장했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은 지금부터 노력해서 못할게 뭐가 있을까. 패배의식에 젖어 나는 똥손이라며 시도도 안 해보는게 과연 맞을까. 그림을 그리고 난 뒤 내 삶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 알고 있기에 나는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오기를 바랐다.
올해 시작한 나만의 미술 수업 모토는,
"그림은 재능이 아니다. 노력한만큼 드러나는 것이 그림이다." 였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마무리 하도록 격려했다. 망해도 괜찮은 재료를 선택했다. 오일파스텔이 그 시작이었다. 조금 망쳐도 위에 덧바르면 티가 안나는 재료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잘못 그리면 어떡하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언제든 덧발라서 '실행취소' 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다. 그리고 손으로 문질러서 다채로운 효과를 낼 수 있기에 미술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성공적. 아이들은 언제나 오일파스텔 시간을 기다렸다. 처음엔 불안해 하고 자신없어 하던 아이들이 서서히 미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매번 색연필, 싸인펜 밖에는 쓸줄 몰랐던 아이들이 다른 수업 시간에도 오일파스텔을 꺼내서 활용했다.
할 수 있다는 것,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알 껍데기를 깨었구나! 나는 데미안을 떠올리며 뿌듯했던 것 같다.
1학기 내내 오일파스텔로 다양한 작품을 그린 뒤,
2학기에는 수채화 수업을 시작했다. 한 번 잘못 터치하면 망하기 쉽상인 어려운 재료다. 물 조절부터 색상 선택까지 까다로운 점이 한가득인 녀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중학교, 고등학교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든 수행평가든 꼭 써야 하는 재료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오일파스텔로 미술에 대한 두려움도 좀 가라앉혔겠다, 까다롭지만 언젠가 사용해야 할 필수 재료라면 지금이 시작하기에 가장 빠른 때가 아닐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수채화 재료를 한껏 펼쳐놓고 맹연습을 했다. 수많은 유튜브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가르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꾸준히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며 격려하며 가르쳤다.
너 그림 잘 그린다 라고 칭찬하지 않고 너 저번보다 많이 늘었네, 거봐 할 수 있잖아 라고 칭찬했다. 그 결과 아이들의 그림은 지금 내가 올린 사진만큼 성장했다. 불과 한 달 만에 달라진 아이들의 실력. 놀랍게도 우리 반에 미술학원을 다니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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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미술을 참 싫어하고 자신 없어 했는데 5학년이 되고 나서 달라졌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리는 아이가 되었다고,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미술 수업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대충 오려 붙이는 편한 미술 수업이 아니라 그리는 재미를 느끼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 그림으로 삶이 변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 미술을 사랑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