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by LALA쌤

나는 청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먼지가 있으면 있나 보다, 머리카락이 빠졌나 보다 했던 것 같다. 뭔가 어질러져 있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예전에 산만한 사람들은 어지러움 속에서도 본인만의 규칙이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언뜻 보기에 지저분해 보여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지 마냥 무질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논리이고 우리 가족들은 매번 비호감을 마구 표현했다. 방 치워라, 돼지우리냐, 그래 놓고 지 몸만 예쁘게 꾸미고 나간다, 등등. 하지만 청소 헤이터는 그런 말들 따위엔 굴하지 않았다. 만약 그때가 2023년이었다면, 나는 분명 엄마한테 혀를 내밀며 “어쩔-티브이”라고 얄밉게 말대꾸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저분하고 산만한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바야흐로 3년 전 자취방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곳은 처음으로 내가 직접 고른 쾌적하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빨간 계단이 있는 멋들어진 복층 구조, 깨끗한 가구들, 하얀 벽지까지! 올드한 인테리어의 우리 집과는 차원이 다른 트렌디함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나라는 오점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온갖 감성템 가구들을 주문해 인스타에 나올 것 같은 집을 연출하고자 노력했다. 매일 같이 쓸고 닦으며 청결도 99.9의 주거 환경 유지를 위해 저녁 시간을 몽땅 바쳤다. 약 2년 간 나의 자취방은 호텔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쭉 정리정돈을 잘하는 청소라이커가 되었냐고? 안타깝게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나는 작년에 가족들의 회유에 마지못해 다시 본가로 들어왔다.


다시 마주한 내 방은… 사회 교과서에서 본 6.25 전쟁 직후의 폐허가 된 마을을 연상케 했다. 가족들이 쓰지 않는, 또는 귀찮아서 던져둔 온갖 짐이 내 방구석구석 차 있었다. 박스 더미는 물론이고 온갖 낡은 가전에 옷가지에 행거 더미에 고물상인줄 알았다. 이 짐을 다 가지고 가라고 하기엔 우리 집은 이미 각 방이 포화상태였다. 옛날 집 구조의 치명적인 단점 - 거실은 운동장만하고 방에는 수납공간이 별로 없는 - 에서 비롯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취방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내 짐들은 어디다 푼단 말인가. 나는 단번에 정리를 포기했다. 대충 구색만 갖추고 살자 라는 마인드를 장착했달까. 그렇게 시간이 쭉쭉 흘렀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지붕 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신세경 자매가 사는 방이나 다를게 뭐 있냐는 말이다. 입주 도우미가 원가족들의 창고에서 이불 하나 펴놓고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하는 모습이 바로 내 현재 상태였다. 이게 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 어중이떠중이가 된 내 탓이란 말인가. 나는 점점 더 내 방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청소를 해봤자 발 디딜 틈이 없어서 별 의미가 없는 데다가,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이름 모를 박스들, 가족들의 옷가지에 내 옷 하나 걸 곳 없는 이 방은 내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동안 너무 귀찮아서 미뤄뒀던 짐 정리를 이제는 시작해야만 했다. 이렇게 어지럽고 정체성 없는 공간에 머무르다가는 나도 저 짐들처럼 존재 모를 잡동사니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종일 가족들의 짐 박스들을 날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더러는 분리수거장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쓰지 않는 묵은 가구들을 낑낑대며 갖다 버리고 빈자리를 깔끔히 닦아냈다. 책꽂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짐을 비우고 내가 사랑하는 책들로 빼곡히 채워 넣었다. 미처 정리가 안 됐던 박스들을 풀어 버릴 것은 버리고 쓸 것은 용도에 맞게 분류해 서랍에 넣어두었다. 꽤 넓은 방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답답해 보였던 내 방이 넓은 광장이 되었다. 하루 온종일 고생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드디어 내 방에 왔구나,라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자취방에서 내가 매일 집안일에 시달렸음에도 행복했던 이유는, 내 공간을 주체적으로 운용해 나간다는 카타르시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머무르는 공간을 가꿔나가는 일은 나를 예뻐해 주는 일과 닮았다. 해묵은 감정들이 쌓이지 않도록 먼지를 쓸어주고, 내 취향의 물건들을 채워 나라는 존재를 잊지 않게 해주는 일. 청소 습관은 나를 비롯한 주변 환경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말해준다. 잘 정돈되고 쾌적한 공간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을 돌린다면 더 일찍 짐 정리를 했겠지만 아무렴, 지금도 빨리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만히 침대에 앉아 달라진 내 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꼭 내 마음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이 방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 참 사랑받으며 살았구나? 방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벽면 가득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날 보며 웃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들이 책장에서 당당하게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에게 받은 편지가 반짝거리며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이 안온할 것임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앞으로 나는 지금처럼 내 방을 내 마음으로 여기며 열심히 쓸고 닦고 예뻐해 줄 것이다. 언젠가 더러워져도 괜찮다. 다시 오늘 썼던 일기를 읽으며 방청소의 즐거움을 되새길 것이다. 봄이 오기 전 묵은 작년과 겨울의 때를 벗겨냈으니 다행이다. 새 봄에는 새로운 추억들을 맞이해야지. 청소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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