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네일 아트가 받고 싶어졌다. 그동안 귀찮아서,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했던 네일을 다시 받고 싶어 진 까닭은 문득 내 손을 내려다보았을 때 생긴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내 손은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 손톱은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는 불쌍한 노동자였다. 일상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딱딱해진 굳은살과 면역력 부족으로 올라온 손톱 거스러미들. 마치 노동자들이 사장의 횡포를 고발하는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손톱에게 성대가 있었더라면 "이 무심한 주인아, 핸드크림이라도 발라줘라, 손톱이라도 제대로 깎아라."라고 했을 것만 같다. 아무튼 손톱의 종합적인 영양 상태로 보아, 나는 내 손가락들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들이 없으면 당장 밥도 못 먹을 텐데 왜 이렇게 소홀히 대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손톱의 저임금 노동 현장을 용인할 수는 없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 중의 하나, 끝내주게 급한 성격과 끝내주게 빠른 추진력. 나는 당장 가까운 네일숍에 전화해 예약을 했다. 네일숍 사장님이 부드럽게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이 각질과 굳은살 녀석들은 이제 기술자의 손에서 맹렬히 축출될 일만 기다려야 한다. 사장님이 드릴을 꺼내 전원을 연결한다. 위이잉 돌아가는 드릴이 내 손가락으로 다가온다. 오해하지 마시라, 절대 아픈 드릴이 아니니까. 작은 드릴이 돌아가며 내 손톱의 굳은살을 깎아내기 시작한다. 하얀 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작은 드릴로 손톱 옆의 굳은살을 긁어낼 때면 묘한 쾌감이 생긴다.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굳은살을 바라볼 때면 드디어 끝이구나, 싶어 기분이 좋다. 언제 이렇게 켜켜이 굳은살이 쌓였나 싶다. 그동안 스트레스 따위 충분히 해치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 손톱 옆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마구 먹고, 미친 듯이 화내고, 숨 벅차게 뛰어다녀도 스트레스가 풀릴까 말까였는데 손톱 굳은살 박멸 작업 하나에 비로소 숨이 트이는 느낌이다.
으레 나를 보살펴 주는 일이라면, 좀 더 거창하고 깊이 있는 양질의 무언가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들이 날 살리기도 한다.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고 특별한 것을 배워야지만 삶이 윤택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단한 무언가를 해야지만 내 인생이 특별해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강박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는데도 죄책감이 생긴다면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꼭 남들이 보기에 우와, 하는 대단한 휴식만이 진정한 휴식은 아니다. 그냥 아주 자그마한 쉼이 필요한 순간조차 의미 있는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환상은 버려도 좋다. 술을 부어라 마셔라 거나하게 마시고 돈 몇천은 써야 스트레스 좀 풀었다,라는 이상한 착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쉼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큰 품이 들지 않아야 다음에 또 쉬어갈 수 있다. 쉼을 끝 간 데까지 미뤄 나를 학대하지 말자. 우리는 끝을 모르고 달려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 순간만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오히려 끝이 정해진 삶이기 때문에 매 순간 영원할 것처럼 살아야 한다.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 알 수 없으므로 영원히 살 것처럼 나를 보살피고 달래야 한다. 중간에 고꾸라져 더 이상 못살겠다고 외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삶의 레이스를 그만둘 수 없다. 스스로 죽을 용기가 없다면 (그러길 바라지도 않지만) 이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기어서라도 살아야 한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엉금엉금 기면서, 우울해하면서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고 싶은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삶의 지속을 위해 미리미리 잘 쉬어주고 나를 보살펴주어야 한다. 쉬지 않으면 중간에 나타나는 작은 돌부리에도 삶을 포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빨리 방전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 때 충전해줘야 한다.
쉼, 충전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오늘 받은 네일 아트처럼 다소 돈지랄(비속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이만한 단어가 없다.) 같은 일도 괜찮지 않을까. 네일 아트 덕분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손가락을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비춰보며 만족감에 젖어든다. 색깔이 참 예쁘구나, 내 손톱 꽤 모양이 예쁘네. 내 손가락이 더 희고 길게 느껴지네. 하릴없어 보이는 혼잣말들이 은근히 힘이 된다. 네일 아트를 받는 순간에도 이미 나는 잘 쉬었다. 오직 내 손만을 위한 2시간 남짓의 그 시간 - 어릴 적 나를 목욕시켜 주던 엄마의 손길과 같은 그 시간들이 그날의 나를 살렸고, 손톱이 자라는 한 달의 시간을 지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그리고 작은 부분까지도 나는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그 감각. 꼭 네일 아트일 필요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방법이 마음에 든다.
누군가 네일 아트 왜 받으세요? 묻는다면 오늘과 같이 알쏭달쏭한 대답을 해줄 작정이다.
"오래 살려고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