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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쌤 Jul 10. 2024

결혼 전 동거의 시작

*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장치 외에 각색은 거의 없습니다 :)


우리는 결혼식장을 잡고 양가 허락을 받은 시점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빨리 합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부모님께서 결혼 전에 절대 동거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으셨기 때문이었다. 나야 물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입장이었다. 어차피 결혼 약속도 했고 미리 같이 산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나 싶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동거가 무슨 흠이 되고 손가락질할 거리가 되는 걸까. 


하지만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30년이라는 세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 세대의 생각이 부모님 세대에게 용인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 부모님은 순결 캔디를 먹으며 성교육을 받았고, 우리는 콘돔 사용법을 배운 세대이다. 현재 초등학교 실과 교과서에는 사정, 몽정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성에 개방적인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출판사에 따라서는 쿠퍼액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한다!)


부모님께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그때쯤 부모님과 더 이상은 같이 못 살겠다는 생각을 할 지경에 이르렀었다. 적당히 떨어져 살 때는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같이 사니까 부딪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나친 통금 압박은 물론이고, 한 때 우리 엄마는 내 속옷 개는 방법까지 간섭했을 정도니 알만하지 않는가. 부모님 눈에 비친 나는 장성한 어른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초등학생 정도에 머무르는 것만 같았다. 이해는 한다만, 이제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나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예비남편의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과 얼른 함께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탈출의 의미도 있었다. 내 주변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대부분의 여자 친구들은 결혼과 동시에 드디어 부모님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내 친구들은 모두 순둥순둥하고 딱히 부모님의 말을 거스르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타고나길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 다 해야 하는 내 성정에 부모님과의 동거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처음에 부모님은 나의 결정에 기가 막혀하고 설득해보려고 하셨으나 결국 나를 놓아주셨다. 결혼 안 한다고, 혼자 산다고 노래 부르던 딸이 기적처럼 결혼을 한다는데, 다시 안 한다고 할까 봐 겁나셨나 보다. 내가 짐 덩어리 느낌의 딸내미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부모님 세대 관점으로는 결혼 안 한 자식들은 골칫거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모님은 내 결정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한동안 꽁해 있다가 나중에서야 내게 진심을 털어놓으셨다. 그때는 정말 화가 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제는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이미 다 큰 자식이 무얼 하든 내버려 두고 응원해주어야 하는데 자신이 그러지 못했다고 하셨다. 우리 아빠야 원래도 그런 마인드였고 내가 동거를 한다고 했을 때도 개의치 않으셨지만 엄마만은 아니었다. 그랬던 엄마가 자신의 신념을 가라앉히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어찌 됐든 우리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편은 이미 집을 구해 놓고 가전, 가구도 모두 해놓았기 때문에 나는 몸만 들어가면 되었다. 침대, 소파, 식탁 정도만 바꾸었는데 디자인과 사이즈가 둘이 살기에 알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가구들을 구입하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다음에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단은 당분간 동거 생활에 대한 팁, 경험담을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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