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장치 외에 각색은 거의 없습니다 :)
나와 남편은 결혼을 약 8개월 정도 앞두고 동거를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처음에 많이 서운해하셨지만 곧 나의 결정을 받아들이셨다. 서른 살 다 큰 딸내미가 곧 죽어도 동거를 하겠다는데 말릴 수 있는 부모님이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나는 지금까지 부모님의 말을 크게 거스른 적도 없는 얌전한 딸이었다. 이번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밀고 나갈 명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시부모님께는 허락을 받을 일도 딱히 없었다. 워낙 남편이 시부모님의 터치를 싫어하기도 하고, 시부모님께서도 터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동거 첫날, 우리는 소파와 침대를 고르러 백화점에 갔다. 우리의 동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남편 친구네 집들이에서 앉아 보았던 까사미아 소파가 좋아 보였기 때문에 곧장 까사미아 매장으로 향했다.
"와, 너무 편하고 좋다. 나 여기서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소파에 반쯤 누운 채로 말했다. 전부터 친구 집들이에 가서 앉아본 소파가 그렇게 좋았다며 노래를 불렀던 남자다.
"오, 오빠가 좋다고 한 이유가 있었네. 진짜 편해! 얼마야?"
나는 가격표를 확인하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으엑? 이렇게 비싸다고? 이게 왜 이렇게 비싼 거야..? 혹시 안에 금 들었나..?"
"내가 말했잖아, 가구 진짜 비싸다고. 가전 가격은 아무것도 아니야."
소파를 살 일이 없어서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내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걸까. 소파가 이렇게 비싸면 침대는 얼마나 비싼 걸까. 나는 비싼 가격에 놀라 남편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비슷한 소파를 찾아보고자 애썼지만, 처음 봤던 소파만큼 편하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 디자인이 유행인지 대부분의 매장에 비슷한 소파가 있었으나 무언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럼 할인 혜택 같은 것은 없을까..? 이것저것 같이 많이 사면 깎아주잖아. 신혼 가전처럼."
내가 눈에 아른거리는 소파를 떠올리며 말했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야! 갖고 싶은 건 어떻게든 다 가지는 내게 불가능이란 없다고.
"흠, 맞아. 다 함께 묶어서 사면 확실히 싸지. 근데 우리는 여기서 소파만 사려는 거 아니었어?"
"그러게..... 그럼 인근 매장을 뒤져서 제일 싼 혜택을 찾아보자."
우리는 인근 매장에 직접 찾아가 모두 견적을 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다른 가구까지 싹 다 사야 쌀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리는 일단 보류한 채로 침대를 알아보러 갔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템퍼 매장이었다. 메모리폼 침대에 한 번 누워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평생 스프링 침대에서 잤는데 이제 좀 변화를 줄 때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 내 몸만큼 쑤욱 들어가. 신기하다. 안락한 느낌이야."
"오호라~ 이런 느낌 처음이야. 얼말까?"
템퍼 매트리스는 소파보다 훨씬 쌌다. 소파보다 싼 매트리스라니, 원래 가격이 이런 걸까? 우리는 템퍼 매장을 나오며 과연 이 가격이 합리적인 것인지 토의를 했다. 침대 가격이 원래 이 정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소파가 너무 비싼 나머지 침대가 싸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템퍼 매트리스의 인터넷 후기를 검색한 결과 여름에 땀이 차서 덥다는 평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바로 템퍼를 후보군에서 아웃시켰다. 이럴 거면 미리 알아보고 오는 건데, 역시 우리답게 행동이 먼저였다.
"우리 좀 알아보고 올걸 그랬나 봐.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백화점 온 것 같은데.. 이게 맞나?"
"음, 우리 결혼 결정에 비해서는 꽤 신중한 편이 아닐까..?"
"아하!"
우리는 바보같이 낄낄거리며 다음 침대 매장으로 이동했다. 바로 그 유명한 시몬스!
시몬스 매장에 들어가자 하얀 가운을 입은 점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침대는 과학 비슷 한 것이라고 마케팅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점원은 용문신을 하고 톰브라운을 걸칠 것 같은 비주얼의 남자였다. 신뢰를 주는 흰 가운과 달리 그의 눈은 무기력, 귀찮음의 극치였다. 우리는 불청객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를 따라 침대 구경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비교적 저가의 제품을 소개하더니 마침내 궁극의 제품을 소개해주었다. 바로 김태희, 비 부부가 사갔다는 침대였다. 매장 가장 안쪽에서 당당히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워보았다.
"오!"
우리는 눕자마자 감탄을 했다. 다른 매트리스와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이었다. 정말 구름 위에 떠 있는다는 느낌이 이런 걸 말하는 것일까?
"이 모델은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0천만 원 정도 해요."
"예??????"
우리는 입을 떡 벌리고 톰브라운 양반을 쳐다보았다. 점원은 평생 깨어 있는 시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며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 낭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 번 사면 거의 40년은 쓸 텐데 이왕 사는 것 튼튼하고 좋은 것을 사는 게 경제적으로 낫지 않냐고 했다. 모든 가구 점원들의 똑같은 레퍼토리다. 오래 쓸 거 아니냐, 기왕 사는 거 좋은 것 사라. 나는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 물건 중에 싸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막말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40년 뒤를 내다보고 이렇게 비싼 물건을 사라고?
우리는 그보다 살짝 낮은 모델 또한 고려해 보다가 결국 견적서를 받고 매장을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몇 천만 원을 침대에 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큰 낭비 같았기 때문이다. 워런버핏도 아침 식사로 3500원을 넘지 않게 먹으며 근검절약 한다는데 소득 수준에 맞지도 않는 으리으리한 침대를 사는 게 맞을까.
"하, 아무리 생각해도 열받는다. 가구가 이렇게 비싼 게 맞나?"
남편이 매장을 나오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내 말이. 김태희 부부 정도 되면 사도 괜찮을 듯."
"침대를 사긴 해야 되는데... 그다음 유명한 브랜드가 뭐지?"
"에이스! 00 이도 이거 샀대."
00 이는 나의 친한 친구로, 결혼할 때 에이스 침대를 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지인의 의견을 중시하는 우리는 곧장 에이스 침대 매장으로 향했다. 바로 옆 매장이었다. 이 매장에서 우리는 엄청난 점원을 만나게 된다.
(다음 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