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다이어트

관태기

by 생존창업


첫번째 직장생활은 지방의 작은 신문사였다.
사회부 기자로 발령받고 경찰서 등 일선 현장을 담당했다.
경찰서는 삶의 축소판이다. 종종 서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는데 밤마다 크고작은 사건들이 쌓여 있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병은 그렇게 세상을 배워나갔다.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형사과 창살 너머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한번은 깡패들에게 멱살을 잡힌적도 있다.
겉으로는 강한척 대들었지만 속으로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신문사 군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군대에 다시 들어온 느낌이다. 선배들의 온갖 심부름부터 편집국장님방 재떨이 비우기까지 도맡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보고를 잘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졌고, 스트레이트 단신 기사는 몇번이나 쓰레기통에 직행했다. 호랑이 같은 선배들이 많았다. 덕분에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수 있게 됐다.

술 문화도 곤혹스러웠다.
체질상 술이 약했지만 술자리와 회식이 많다 보니 과음할 때가 많다. 폭탄주가 진짜 폭탄이 됐다.
가장 먼저 필름이 끊겼다. 눈을 떠보면 화장실에서 쓰려져 잘때가 많았다.

이런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지금은 소주한병은 마신다. 술자리에서 얻은 고급정보가 특종이 될때도 더러 있었다.
일을 썩 잘하진 못했지만 성실하다는 칭찬은 종종 들었다.

이후 전문지, 온라인 매체에서 기자경력을 쌓아갔다.
나름 영향력이 생기면서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덩달아 사람에 대한 피로감도 높아졌다.

늘 그렇듯 좋은 사람이 90% 이상이다.
반면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은 어느 조직에서든 한두명은 존재한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을 흐리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나와 맞지 않은 소수의 사람을 변화시키느라 에너지를 쏟았다. 이 과정에서 오해를 사거나 상처를 받을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반대다.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90%에 집중한다. 좋은 사람에게만 집중하는데도 시간은 부족하다.

내사업을 시작하면서 상당수 인맥이 정리됐다.
지난 4년간 닭갈비+떡볶이 매장에 올인하면서 일체 외부활동을 중단했다.

관태기.
이즈음 수천개의 휴대폰 목록에서 하나둘 이름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저장은 되어 있지만 연락을 안한지 오래된 사람들이 꽤 많다.
그렇게 인맥 다이어트는 시작했다.

불혹을 넘으니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롭게 출발한 조직에는 20대 젊은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착한친구들이다.
하지만 근무태도나 삶의 자세에서 아쉬운 점들이 하나둘 파악된다.

지적하자니 꼰대같고 내버려 두자니 방임하는 것 같아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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