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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고수에게 기분좋게 당한날
어쩔수 없이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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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창업
Mar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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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향일암 하산길. 고소한 파전냄새에 체포됐다.
산을 오르는데 적잖이 땀을 쏟은데다 맛있는 음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기에 이모님들이 구수한 입담으로 호객행위를 하는데 이길 재간이 없다. 술한잔 하기전에 사람사는 분위기에 이미 취해 버린 것이다.
이집 식당은 입지가 기가 막히다.
하산길 바로 초입에 자리했는데 큼지막한 철판위에 부침개가 쉴틈없이 업어치기를 당하고 있다.
눈코입이 철판에 홀리면서 어느덧 테이블에 앉게된다. 쪽빛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 명당이다.
굴찜을 주문했다.
산더미 같은 굴이 수줍은 얼굴을 내민다.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내니 우유가 흘러내린다. 굴속에는 우유가 숨어있다. 짭쪼름 하면서도 달다. 막걸리 한잔이 간절했지만 오늘은 운전때문에 패스한게 못내 아쉽다.
굴찜은 것옷을 벗겨내니 속살은 얼마 안된다.
이때 사장님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홍합탕을 서비스로 내준다. 국물이 끝내주게 시원하다.
싱싱한 홍합탕.
사실 원가는 얼마 안되는 메뉴인데 손님 입장에서는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다. 추가 주문을 고민하던 중이였는데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어쩔수 없이 해물파전을 주문한다.
식당 바로옆 텃밭이 있는데 대파, 쪽파가 날 것으로 자라고 있다. 파전이 들어오면 손으로 쑤욱 캐와 대충 밀가루에 부쳐 먹어도 된다. 날것의 현장감으로 승부하는 가게다.
파전 한점에 남해바다를 안주삼으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원효대사가 지은 향일암에는 등용문이 있다. 사업이나 취업, 승진, 합격의 기운을 담고 있다고 하니 올해는 좋은일들이 펼쳐질 것 같다.
기분좋게 카드를 내민다. 가성비가 최고다. 가는길에 사장님은 팔고있는 식혜를 서비스로 내준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사람좋은 미소를 들이대니 나도 따라 웃는다.
자정도 넘은 야심한 이 시간에 이글을 쓰는 동인이기도 하다.
여수는 남해바다에서 잡힌 해산물의 집합소.
가는길에 쥐포한꾸러미를 주문했다.
"아따 손님, 우리집에서 살것은 없는게라. 없어도 좋은게 갓김치라도 맛보고 가소"
옆가게 사장님의 정감어린 이야기에 또다시 넘어간다.
오징어, 갈치속젓을 만원어치 구입했더니 갓김치 한봉지가 서비스로 달려나온다.
"이게 뭐지"
손님에게 횡재한 기분이 들게하는 사장님이다.
젓갈 좋아하시는 아버지 생각이나 한세트 더 주문한다.
큰이모도 생각나고 직장동료, 후배들 얼굴도 떠오른다.
"자셔 보시고 맛있으면 꼭 주문해주랑께. 택배도 전국에 다 되브러"
친절한 웃음과 자극적이지 않은 영업멘트에 나도 모르게 현금을 내민다.
장사를 8년가량 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현금이더라.
꼬깃해진 지갑속에 잠들어 있던 비상금이 여수밤바다의 포말처럼 사라져버렸다.
분명 올라갈때는 빈손이었는데 내려올때는 양손이 무겁다.
오랫만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선물도 사니 기분이 참 좋다. 돈쓰는 즐거움을 느낄수록 돈을 벌어야 하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담양으로 차를 돌린다.
부모님이 좋아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밟게 된다. 뒷좌석 검은 봉투에 얌전히 담겨있는 젓갈과 갓김치에 자꾸만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영상. https://youtu.be/7aIC840h2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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