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완성도의 작업물을 발표하며 K-POP의 새로운 기준점을 아티스트가 있는가 하면, 다른 팀이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독자적인 노선을 만들어가는 아티스트가 있다. 그리고 드물게도 두 가지 성취를 모두 이루는 아티스트 역시 존재한다. 태민은 바로 이 영역에 속한다. [MOVE]에서 보여준 젠더리스적 -혹은 젠더플루이드적- 비주얼과 안무, 사운드로 주목받기 이전부터 태민은 스스로의 영역을 서서히 구축해왔다. 이 영역은 태민의 묘한 섹슈얼리티와 오리엔탈리즘적 판타지, 그리고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태민이 쌓아온 실력으로 만들어져 있다. '가장 태민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는 이 디스코그래피는 역설적으로 아이돌 팝 씬, 특히 남성 솔로를 지향하는 아이돌들에게 새로운 지향점이 되었다.
'WANT'는 명백하게 'MOVE'을 이어가고 있는 앨범이다. 가사는 더욱 유혹적이고 직접적인 표현들로 가득하고, 힘을 자유자재로 쓰는 안무 역시 눈에 띄는 요소다. 강렬한 사운드와 주술적인 가사의 반복은 태민 특유의 섹슈얼리티를 더욱 짙게 연출한다. 태민이 직접 안무 구성에 참여한 'Artistic Groove' 역시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미니멀한 사운드와 농밀한 안무, 터질 듯하면서도 금세 호흡을 가다듬는 드라마틱한 강약 조절은 퍼포머로서의 태민의 역량과 그의 젠더리스적인 섹슈얼 포인트가 잘 드러내는 장치들이다.
3번 트랙부터 분위기는 크게 환기된다. 'Shadow'와 'Truth'는 사뭇 다른 곡이지만 강렬하고 서정적인 스트링 사운드나 피아노와 함께 태민의 섬세한 음색과 폭발하는 듯 한 코러스를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Shadow'의 경우는 2010년대 초중반 보이그룹들이 자주 선보였던 스타일인 듯하면서도 'さよならひとり'나 'Flame Of Love' 같은 곡에서 보여줬던 웅장하고 비장한 에디튜드를 공유한다. 'Never Forever'과 '혼잣말'은 온전히 보컬리스트로서의 태민을 조명하는 곡인데, '혼잣말'은 [Press It] 앨범의 'Soldier'의 매력과 특징을 상당히 많이 이어가고 있다.
[WANT] 앨범은 전체적으로 태민의 디스코그래피를 역행하며 그가 선보였던 스타일들을 재해석하고 깊이 있게 리포밍하고 있는 구성으로 보인다. 지난 앨범들과 같이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앨범 전체를 풀어내는 유기성의 부재는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태민이 지금까지 발표했던 앨범들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들, 그의 섹슈얼한 면과 오리엔탈 판타지 장르의 서사를 연상하는 웅장한 사운드, 섬세하면서도 힘찬 보컬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조정하며 '가장 태민스러운 것'들로 채워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만한 앨범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태민은 '자기만의 것'에 집착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내는 많은 아이돌 멤버들은 작곡과 작사, 프로듀싱, 아트 등에 있어 최대한 자신의 손때를 묻히고 싶어 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태민은 [ACE]를 발표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신뢰할만한 스태프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황상훈 디렉터는 한 방송을 통해 "저는 (태민을) 야하게 만들고 싶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그러한 시각은 '괴도'부터 시작해 'PRESS YOUR NUMBER', 'MOVE'까지 이어져왔다. 일련의 작업물들은 태민 특유의 관능적인 섹슈얼함을 강조해왔고 이는 태민 스스로보다도 대중들이 그를 바라보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리고 태민의 강점은 이 외부로부터 기인한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자기만의 규범이나 클리셰를 만들지 않고 바깥의 기대나 판타지를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태민이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온 방식이다.
그렇기에 태민의 음악은 사실 모호하고 불분명하고 유동적이다. 에너제틱하고 거친 안무를 선보이다가도 관능적인 움직임으로 변주되고, 피아노 반주와 보컬로만 구성된 노래를 부르다가도 풍부하고 웅장한 사운드의 판타지를 펼친다. '태민스럽다'라는 형식적인 표현이 실체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요소요소들은 공통분모를 가지지 않고, 아티스트의 이미지 소모를 심화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을 갖춘 태민은 결코 모호하거나 불분명하지 않다. 태민은 각 요소들의 '느낌'을 살리거나 자기만의 것으로 편집하지 않고 요구된 그대로를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수행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12년 동안의 활동으로 쌓아 올린 태민의 실력과 스스로의 색을 규정하지 않는 개방적인 에디튜드에 있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태민은 아직 태민이라는 솔로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는 많은 것을 구축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대한 다양한 색깔과 장르를 흡수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10년이 넘는 활동 기간 동안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려는 그의 태도와 어떤 장르든 소화해낼 수 있는 실력이 함께 갖춰진 지금, 태민은 K-POP의 새로운 기준점과 태민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동시에 만들어가고 있다. 태민은 아직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 태민이라는 토양에서 피어날 수 있는 것들이 아직도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