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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RO May 24. 2019

EXID의 '우리'

지금 활동하고 있는 그룹 중 한국 대중음악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팀을 꼽자면 그것은 EXID일 것이다. 세련된 장르성을 시도했던 '낮보다는 밤'이나 90년대 레트로를 적극적으로 리바이벌한 '내일해'와 같이 특별한 곡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곡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구성을 하고 있다. 중독성 있는 가사와 한국 가요에서 익숙한 구성의 멜로디, 귀에 꽂히는 고음까지, EXID는 트로피컬 하우스와 퓨처 베이스를 수혈해 변해가고 있는 지금의 아이돌 팝 씬에서 '가요'의 매력을 지켜온 팀이었다. 그리고 작사, 작곡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한국의 비-아이돌 씬에서 쓰여왔던 요소들을 자신들의 음악에 수혈해오기도 했다. 아이돌 팝과 가요의 경계를 넘나들며 EXID는 뚜렷한 색을 가진 팀이 되었다. 하니와 정화의 계약 종료로 새로운 장을 맞이하는 지금, [WE]는 EXID와 K-POP의 근 과거를 추억하면서도 음악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EXID의 한 장을 마무리하는 앨범이니만큼, [WE]에는 EXID가 지금까지 선보여왔던 스타일과 멤버들의 손길이 담겨있다. 타이틀 곡 'ME&YOU'의 도입부와 뭄바톤 리듬을 얼핏 듣는다면,'위아래'부터 '알러뷰'까지 이어지는 EXID 특유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벌스가 진행되며 점점 치솟는 고음이나 반복되는 "Me & You"는 '위아래'의 코러스와 닮아있다. 낯선 점이 있다면 휘몰아치는 듯 한 곡 후반부의 드랍과 무거운 사운드인데, EXID의 음악에서는 낯설지만 작곡가인 신사동호랭이의 곡들을 포함해 K-POP의 최근 수년간 히트한 곡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EXID의 곡에서 이러한 것들을 찾아볼 수 다는 것은, 일련의 요소들이 아이돌 팝을 넘어 한국 가요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팀의 프로듀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엘리의 음악적 취향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감도 있을지 모르겠다.- 


멤버들이 모두 작사에 참여해 진솔한 메세지를 담은 'WE ARE...' 역시 EXID의 초기 곡들이자 엘리가 작업한 '전화벨'과 'With Out You'와 같은 곡들을 떠오르게 한다. EXID의 대표곡들에서 들을 수 있었던 솔지의 고음 파트 역시 이 곡에 있지만, 'WE ARE...'은 하니와 혜린, 정화 등 멤버들의 보컬을 담는 것에 좀 더 집중한다.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탁성이 주는 인상은 최근의 아이돌 팝보다는 태사비애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 같은 2000년대의 여성 보컬 팀들과 더 가깝다. 미니멀한 사운드의 R&B 곡인 '아끼지마'나 세련된 베이스와 신스 사운드 위로 친숙한 멜로디 라인을 쌓은 '어떻게지내' 같은 수록곡들 역시 EXID의 전작들, 특히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를 시도했던 솔로 트랙들과 이어져있다. 그리고 동시에, 2000년대와 2010년대의 비-아이돌 음악(그중에서도 엘리의 영역인 힙합과 R&B 계열의)과 맞닿아있다.

전작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멤버 개인의 목소리를 강조했던 최근작들과는 달리 '우리'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멤버 개인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EXID의 최근 활동과도 닮아있던 일련의 앨범들은 멤버들의 솔로곡이 반드시 수록되어 있었다. 대중적이고 중독성 있는 대표곡들과 멤버들 개인의 큰 존재감은 EXID라는 팀을 구성하는 큰 틀이자 이미지였다. [WE]는 EXID를 다시 하나의 팀으로 묶고 팀으로서의 목소리를 담는 것에 집중하고,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운드와 보컬을 들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WE]는 엄밀히 따지자면 [Eclipse][내일해]만큼이나 EXID의 흥행요소들과는 거리가 있는 앨범이다. 그렇지만 EXID가 확장한 이 영역은 사실 전혀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오히려 매우 익숙한 근 과거와 현재의 음악들을 포함하고 있다. 늘 새로운 사운드와 팝 트렌드의 최신을 따르는 아이돌 팝 씬에서 이렇게 '우리'에 집중하는 팀은 많지 않다. 하나의 팀으로서의 'WE'와 K-POP의 정수를 포함하는 의미에서의 'WE'는 서로 맞물려있다. 


타란티노의 <킬 빌>을 연상시키는 신부 복장이나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클럽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와 이미지 컨셉은 아쉬운 점이긴 하다. 그렇지만 '직캠'으로 주목받고 소비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들이 멤버 각자의 존재감과 역량, 그리고 서사를 만들어나가며 한 장을 마무리하는 앨범으로서 [WE]는 기념비적이다. 휴식기를 가지면서도 외국 활동을 이어가는 EXID지만 일단 하나의 긴 장은 끝났다. 이제는 짧거나 길 수 도 있을 시간 후에 EXID가 팀으로서도 음악적인 의미로서도 '우리'를 어떻게 뛰어넘게 될지를 기다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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