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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RO Jun 24. 2019

레드벨벳과 SM의 유산

아무래도 2019년의 SM엔터테인먼트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엮는 작업에 집중할 모양이다. 지난달 발표된 NCT 127의 [NCT #127 WE ARE SUPERHUMAN]에서도 동방신기부터 샤이니, EXO까지의 음악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드벨벳은 거기서 더 나아가 레드벨벳이 지금까지 선보여온 음악을 총집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샤이니가 [The Misconceptions] 시리즈에서 시도한 예가 있기도 하다. 앞선 두 프로젝트를 하나로 결합한 [‘The ReVe Festival' Day 1]은 그 어느 프로젝트 앨범보다 가장 거대한 규모의 '페스티벌'을 예고한다.


타이틀 곡 '짐살라빔 (Zimzalabim)'의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강렬한 드럼 비트와 경쾌한 내레이션은 레드벨벳의 데뷔곡인 '행복(Happiness)'을 연상시키고 이 톤은 곡의 마지막까지 지속되기는 한다. 그러나 곡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이곳저곳을 향해 돌진한다. 인트로 직후에 나오는 벌스에서 노이지한 신시 사운드와 막 내뱉듯 터지는 랩은 '행복(Happiness)'보다도  f(x)의 'Kick'에서 쓰였던 스타일이다. "네모난 지구 위로 걱정은 모두 던져"로 시작되는 보컬 파트에서 역시 그들의 데뷔곡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경쾌한 멜로디와 레드벨벳 특유의 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겹겹이 쌓인 화음과 에너제틱한 멜로디를 들으며 소녀시대의 'I GOT A BOY'를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곡의 중간 갑자기 거칠고 키치한 사운드로 나오는 드롭 역시 소녀시대의 'Catch Me If You Can'을 연상시키고,  A파트와 B파트, C파트가 서로 불규칙적으로 오가는 구성도 'I GOT A BOY'에서 볼 수 있던 요소다. 그리고 각 곡의 요소는 클라이막스에서 "나나나"를 반복하는 파트에서 하나로 합쳐져 터린다. '짐살라빔 (Zimzalabim)'은 소녀시대와 f(x)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던, '행복(Happiness)'을 비롯한 레드벨벳 초기 음악들을 -그리고 당연하게도 소녀시대와 f(x)의 곡들을- 매우 의도적으로, 그리고 과장되게 재현하고 있다. 


이어지는 트랙인 'Sunny Side Up!'과  'Milkshake'은 레드벨벳이 그동안 선보여온 보컬 위주의 그루비한 팝 곡이면서도 곡의 사이사이 소녀시대의 후기 곡들에서 찾아볼 수 있던 비트나 사운드를 사용하고 있다. [Perfect Velvet] 앨범 수록곡 'Attaboy'의 연장선에 있는 듯 한 곡인 '친구가 아냐(Bing Bing)'은 역시  f(x)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거의 요소들이 지금의 레드벨벳 음악에 융화되며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로 완성되는 과정 혹은 결과는 매우 경이롭다. NCT 127가[NCT #127 WE ARE SUPERHUMAN]을 통해 과거 SM 보이그룹의 음악을 원형에 가깝게 재생산했다면, 레드벨벳은 SM 걸그룹들의 음악들을 키치하게 가지고 놀다가 어느 순간 그들의 것으로 집어삼켜버린다. 그들이 데뷔 초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SM의 과거를 계승하면서도 결국은 레드벨벳이 구축한 스타일로 돌아오는 곡들, 드벨벳의 이전작들에 대한 메타포로 가득 찬 뮤직비디오까지 [‘The ReVe Festival' Day 1]은 오로지 레드벨벳을 위한 음반이다. 행복을 외치는 '착한 딸'로 시작해, 공장에서 뽑혀져 나온 인형이나 상큼하고 시원한 여름의 과일, 섬뜩한 팜므파탈까지 다양한 롤을 수행해오며 독자적인 이미지와 음악을 구축한 레드벨벳의 세계는 어느 순간 SM 전체의 세계관을 포함하는 그 이상의 것이 되었다. 보편의 걸그룹이 쌓을 수 있는 커리어를 쌓아오며 거대한 서사와 분명한 정체성을 만들어낸 소녀시대나 f(x)와 맞물리면서도 다른 점은, 우리는 레드벨벳이 거듭난 영역을 딱히 무언가로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소녀시대와 f(x), 레드와 벨벳, 상쾌하고 통통 튀는 여름과 그로테스크하고 뒤틀린 호러, SM과 SM 외의 영역 사이 중간지대에 레드벨벳은 존재한다. [‘The ReVe Festival' Day 1] 양쪽 모두를 집어삼키면서 어느 순간 거대해진 이 세계관에 대한 축전이면서도 다양한 세계관을 모두 포함하는 레드벨벳의 현재이다. 이 앨범이 레드인지 벨벳인지 딱 집어 표현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 발표된  NCT 127의 [NCT #127 WE ARE SUPERHUMAN]이나 유노윤호의 [True Colors] 역시 sm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웰메이드 앨범이었다. 그럼에도 해당 앨범들에 대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SM의 유산을 재생산하는 것에 그쳐, 아티스트들이 가진 본래의 색이나 독자적인 매력을 잘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였다. 그렇지만 레드벨벳은 처음 팀이 만들어질 때부터 SM이 이전에 보여줬던 전형적인 스타일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집중해왔고, 그것에 충실했기에 오히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레드벨벳의 그 어떤 곡들보다 이전 팀들의 색이 강하게 묻어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짐살라빔 (Zimzalabim)' 속 레드벨벳이 소녀시대나 f(x)에 매몰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The ReVe Festival' Day 1]은 SM의 유산 그 자체이면서도 레드벨벳이라는 팀 자체의 유산이다. 그리고 이 축제가 끝난 후 레드벨벳이 무엇이 되어 있을지 이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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