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 김재환&스텔라장, 프니엘, 선미, 엑스원, 엔쿠스 외 4팀
[Weekly Critics]는 일주일 동안 발표된 아이돌 팝 신곡들을 모아 짧은 리뷰를 남기는 시리즈입니다.
프로듀서 카제프와 함께한 '내 맘이 그래' 이후, 쭉 트렌디한 R&B 소울 기반의 싱글들을 발표해왔고, '무기력해' 역시 심플하고 재지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하는 곡이다. 보컬 외의 사운드를 최소화한 만큼 풍부한 가성과 시니컬한 저음을 오가는 음색의 결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타이틀 곡과는 대조적일 수 있도 있었을 얼터너티브 하우스 장르의'Paradise' 역시 보컬과 코러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운드를 사용하여 편안하고 시원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 맘이 그래' 이후로 발표한 싱글들 간 사운드와 컨셉에 적절한 유기성을 갖췄지만 각 싱글들의 발표 시기 텀이 너무 길어, 아티스트의 존재감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장르성과 트렌디함을 모두 갖춘 아티스트인 만큼, 이제는 좋은 피지컬 앨범을 만들 용기를 내도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부드럽고 편안한, 그리고 보편적인 스타일의 어쿠스틱 사운드의 곡에 스텔라장과 김재환의 보컬이 얹어졌다. 두 아티스트 모두 독특한 매력의 보컬리스 트인 만큼 곡 자체를 무난하게 소화해냈지만 그 이상의 매력이나 스타일은 부재하다. 뻔한 진행과 멜로디의 곡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자신들의 색을 내면서 유니크한 조화를 낼 수 있는 보컬리스트들로 곡을 꾸리는 것은 낭비에 가까운 선택 아니었을까.
미국 출신의 멤버이고, 추구해온 음악 스타일이 워낙 뚜렷했기에 그 레퍼런스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금방 알아채기 쉽다. 오히려 그 레퍼런스가 뚜렷하게 보이기에 가사와 이미지의 진부함 역시 강하게 느껴진다. 올해 유독 팀 내에서 랩을 담당했던 방용국이나 전지윤, 젤로 등의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스타일과 메세지를 강조하며 독창적인 음악관을 구축한 것에 비해, 이미 씬 내에서 관습적으로 갖추어진 이야기와 스타일에 프니엘이 추가된 것 밖에 없다는 부실한 인상을 곡 내내 지우기 어렵다. 빈지노라는 존재감 강한 아티스트와 협업을 했음에도, 곡 자체의 스타일과 방향성이 전형적이고 진부하다 보니 빈지노의 파트 역시 클리셰에 매몰되어버린다. 드레이크와 몬타나와는 달리 스타일리스트가 필요 없다는 자신만만한 가사에도 불구하고, 곡과 비디오 전체에는 드레이크와 몬타나의 그림자가 매우 진하게 드리워져있다. 프니엘이 지금까지의 활동에서 구축해온 이미지와 그가 지향하는 스타일 사이에 상당히 괴리감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치더라고 쉬이 넘기기 어려운 부분은 더 있다. 승리-버닝썬 게이트가 대중음악계 특히 아이돌 씬과 그 팬덤에 미친 영향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클럽 힙합 풍의 곡과 문화적 맥락과는 상관없이 그저 섹스어필의 수단으로 쓰인 트월킹, 클럽에서의 만남을 암시하는 가사 등 아티스트 자신이 속한 문화적 급변을 무시하고 낡은 문화에 머물러있는 모습은 'B.O.D'이후로 발전한 점이 없다. "Haters are gonna hater"이라는 가사로 비판을 무마하려 해도 아이돌 씬을 넘어 쇼 비즈니스 전체를 뒤흔든 사건과 문화적 파급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신이 속한 그룹의 데뷔 연차가 쌓여가는 만큼 변화는 계속해서 요구될 것이다.
첫 번째 월드 투어를 마치고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인 '날라리(LALALAY)'는 2017년 '가시나'로부터 시작된 선미의 첫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곡이다. 그동안 호흡을 함께 했던 프란츠의 신스 사운드와 태평소의 조합은 이전에 발표했던 곡들과 마찬가지로 키치하고, 은근히 묻어나는 라틴 팝 풍의 멜로디는 곡의 기괴한 생명력을 살린다. 선미 특유의 시니컬한 저음과 날카롭고 공격적인 몸짓 역시 곡에 더욱 그로테스크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가시나'나 'Siren'과 같은 주요 활동곡들에서 보여줬던 스타일과 에너지의 연장선에 있지만, 코러스의 바운스와 "날라리"를 발음하는 선미의 악센트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요소들은 가장 강렬하게 폭발한다. '가시나'로 시작해 '날라리'로 마무리되는 토속적이지만 낯선 표현과, 동어반복적이면서도 각기 다른 주제의 곡들을 발표하며 선미는 우리에게 새로운 스타일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선미라는 아티스트가 막을 연 레트로와 예측 불가능함, 그로테스크로 가득한 축제는 가장 강렬하고 화려한 형태로 마무리된 셈이다. 이미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이야기해야 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한 룸펜스 디렉터의 연출이다. 번데기를 깨고 나오는 모습을 의도했다는 설명에도, 슈트 케이스 안에 구겨 넣어진 여성의 이미지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해 곳곳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성 살해 사건들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비슷한 메세지를 표현한 레이디 가가는 관 혹은 인큐베이터, 알로써 이를 표현한 바 있다. 소재의 선택지는 무궁무진했을 터이다.)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비극은 기괴한 이미지의 소재로 쓰이기 위해 회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의 프로듀서들과 아티스트들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성이 크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던 2년이었지만 한국적인 것과 팝적인 것, 현대적인 것과 레트로적인 것 사이에서 여러 조합들을 실험하며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가능성을 넓힌 선미이기에 이다음에 그가 펼칠 쇼는 여전히 기대된다.
퓨처 사운드와 신스 팝을 테마로 앨범 전체가 짜임새 있게 구성된 만큼 트랙 간의 유기성과 변주가 인상적이다. 더불어 멤버들 개인의 캐릭터를 강조했던 편인 워너원의 '에너제틱 (Energetic)'과는 달리 코러스와 군무를 강조해 팀을 강조한 차이 역시 흥미롭고 그 결과물 역시 준수하다. 앨범 준비 기간이 짧았던 만큼, 어느 멤버들이 소화하게 되더라도 그 질감을 유지할 수 있는 장르와 사운드를 사용하려 했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데 그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먹힌 셈이다. 퓨처 사운드뿐 아니라 청량한 신스 팝, 무난한 발라드 등 신인 보이그룹이 시도할 수 있는 스타일을 가장 깔끔한 완성도로 정리한 앨범이지만 일련의 이슈들을 극복하고 긴 시간 동안 활동을 해야 하는 불안정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다.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들과 법적 분쟁을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과감한 시도를 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총인원이 10명이 넘어가는 다인원 팀만이 낼 수 있는 에너지와 스케일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많은 목소리들을 활용한 코러스일 수도 있고, 규모가 큰 군무일 수도 있다. 'SUPER LUV' 역시 어느 정도 그러한 공식을 따라가는 곡이기는 하지만 랩핑과 드롭을 강조하는 구성으로 인해 곡이 진행되며 쌓인 에너지와 긴장감이 중도에 풀려 흐트러진다. 트랙 전체에 걸쳐 멤버들 각자를 강조하는 보컬 믹싱에 비해 빈약한 사운드 프로덕션과 볼륨 역시 에너지 부재의 원인이다. 존재감을 강조할 수 있는 요소들을 아직까지는 프로듀싱 단계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이크러쉬'로 알려졌던 중국인 에이젠더 그룹의 한국 데뷔 앨범이다. 멤버 모두가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팀이 한국에서 K-POP 팀으로 데뷔한다는 점도 독특하지만, 전원 여성 멤버임에도(한국 데뷔 과정에서 지정성별을 밝혔기에 언급한다.) 주로 보이그룹들에 의해 선보여졌던 사운드와 안무, 연출이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몹시 흥미로운 시도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역시 보이그룹의 비디오에서 주로 볼 수 있던 연출들과 미장센으로 채워져 있다. 액티브한 베이스와 무거운 드롭, 날카로운 코러스까지 K-POP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으면서도 깔끔하다. 뭄바톤과 플럭 신스의 조합이 익숙하지만 풍부한 멜로디가 강조된 'HOLLA'의 완성도도 준수하다. 전체적인 사운드에 비해 날 것에 가까운 보컬 어레인지가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의 경직된 국내 아이돌 씬이 젠더의 울타리를 넘어 좀 더 상상력을 넓혀도 그 완성도 측면에서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미니앨범.
무거운 베이스와 시니컬하고 탄력 있는 랩핑의 앨범은 흔하지만 걸그룹의 영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스웩을 강조한 타이틀 곡 'MONEY TALK'와 리드미컬하고 미니멀한 비트 위로 나른한 랩핑이 이어지는 'All you want'는 아이돌 팝의 기조보다는 장르 음악의 트렌드와 공식을 더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두 타이틀 곡 이후로 이어지는 리믹스 트랙들 역시 최근 수년간 발표되었던 블랙 뮤직의 요소들이 진하게 드러난다. 스타일리시하고 여유로운 사운드를 추구한 것에 비해 빈약하게 꾸려진 이미지 컨셉과 비디오는 아쉽지만 사운드, 장르적인 면에서 틀과 형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앨범이다. 세흔과 JK지강 두 멤버의 솔로 프로젝트와 맞물려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은 확실해 보이지만 일련의 프로젝트를 팀 전체의 이미지나 음악관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
플럭 신스 사운드와 트로피컬 하우스의 조합이 새롭지는 않지만 청량함을 뽐내기보다는 소스 간의 여러 조합에 집중한 프로덕션은 독특하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힘이 과도하게 빠져 답답한 보컬이 시종일관 발목을 잡는다. 에너지가 폭발해야 하는 곳에서는 물론이고, 감각적인 사운드로 분위기를 쌓아가던 인트로에서도 소리의 매력을 흩트려놓는다. 보컬과 코러스가 함께 곡을 이끌어가야 하는 훅에서도 무기력함이 지속되니 두 번째 벌스부터는 곡의 이후가 기대 되지를 않는다. 이렇다 보니 힘이 최고조로 폭발해야 하는 마지막은 곡이 황급히 끝나버려 마치 완성되지 않는 버전을 듣는 것 같다. 보컬 어레인지와 디렉팅은 물론이고 마스터 프로듀싱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지난달에 발표한 'Dawn'과 마찬가지로 멜랑콜리한 소울풀 R&B 곡이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만듦새가 인상적이다. 액티브한 한해의 래핑과는 대조적으로, 가성을 깔끔하면서도 풍부하게 쓰는데 곡의 사운드와 잘 어우러지며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트렌디한 장르와 사운드를 소화해내고, 또 적절한 스태프들과 함께 곡을 풀어가는 능력 또한 눈에 띈다. 팀 활동을 통해 발표했던 펑키하고 공격적인 곡들과는 달리 담백한 정서와 컨셉이 새롭다. 지코를 비롯해 박경, 피오와 같이 이미 알려진 멤버들에 비해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비슷한 정서와 장르의 곡들을 모아 앨범을 만든다면 어떨지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