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주니어의 규현은 이문세, 윤종신, 성시경과 같은 근과거의 발라드에 기반을 두며 한국형 발라드의 계보를 계승했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태연은 한국적인 발라드부터 트렌디한 팝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과 디스코그래피를 만들었다. 이 두 아티스트의 경우가 대표하듯, SM 엔터테인먼트는 보컬리스트의 장점을 끌어낸 솔로 앨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경험치가 쌓일 대로 쌓였기 때문이었을까. 좋은 OST 트랙들을 발표한 첸의 첫 번째 미니앨범 [사월, 그리고 꽃]은 첸 본연의 매력보다는 정형화된 발라드 공식과 편곡에 치중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은 앨범이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나 발표한 [사랑하는 그대에게]에는 첫 번째 앨범의 경직된 틀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질감과 정서가 편안하게 담겨 있다.
'우리 어떻게 할까요'는 피아노 반주와 보컬만으로 채워졌지만,정교한 기술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고 한 가지의 구상에 집중한 편집으로 곡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던 '사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한국의 80년대와 90년대 발라드 곡들을 연상시키는 레트로 신스 사운드와 멜로디 라인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전작의 긴장감을 벗겨내고 그 자리에 따뜻한 자연스러움을 가져다 놓았다. EXO의 메인 보컬로서 화려한 바이브레이션과 톤과 곡마다 질감을 달리하는 스킬로 정평이 난 만큼, 긴장감과 기교를 덜어낸 곡에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고 오히려 풍성한 정서를 전달한다. 사운드와 멜로디의 부드러운 질감을 따라, 부드럽게 믹싱 된 보컬 어레인지 역시 편안하다. 이문세의 곡들을 계승하고 변주한레트로 풍의 발라드 '광화문에서(At Gwanghwamun)'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작곡가 켄지의 역량이 새삼스럽게 인상적인 트랙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레트로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앨범은 아니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모던 록 풍의 발라드 트랙 '그대에게', 어쿠스틱 기타의 내추럴한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운드 이펙트가 잔잔하게 조화를 이후는 '고운 그대는 시들지 않으리', 달콤하고 소프트한 메세지와 멜로디의 '널 안지 않을 수 있어야지' 등 수록된 트랙들은 한국에서 인기를 끌던 많은 발라드 스타일을 적절하게 변주하고 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는변진섭과 이상우부터 2000년대의 이소라, 바이브, 스탠딩 에그까지 다양한 레퍼런스들로 채워진 앨범이다. 그렇지만 앨범 전체의 에디튜드에 긴장감을 덜고 담백하게 곡들을 해석해,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레트로에 매몰되지 않고 첸이라는 보컬리스트의 음색과 가능성을 부각하고 강조한다. 힘을 빼고 융통성을 살렸으나, 오히려 하나의 구상과 스타일에 집중했던 전작보다 더 생생한 정서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EXO 활동에서 보여줬던 날카롭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의도를 암시한다. 예민할 정도로 일관된 스타일 안에서 -SM의 세련된 편곡과 스타일링으로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가요계에 종종 있어왔던스킬풀 발라더의 모습을 강조한 [사월, 그리고 꽃] 역시 기존의 첸의 정체성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첸은 그 잘 짜여진 세계관에서 또다시 벗어나 한국 발라드의 계보를 쭉 훑어내려 간다. 솔로 앨범을 발매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돌 아티스트들(특히 보이 그룹 출신)에게는 자신들이 하고 싶어 했던 구상에 과하게 집중하거나 장르의 클리셰를 리바이벌하는 것에 그쳐, 그들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많은 것들과 가능성을 잊는 일이 많다. 첸은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장르를 연구하면서도 유려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간다. 그리고 그 시도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속도도 빠르다. 이제 겨우 두 장의 미니앨범을 발표했지만,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그의 행보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