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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Jul 14. 2019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No.1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터키 문학을 접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읽는 내내 여타 외국 소설에 비해 특히 이국적이라고 느꼈다. 심지어 이 소설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정치, 역사, 종교적 세계관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있기에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나는 아주 흥미로운 시선으로 읽어 내려갔다.


책의 도입에서부터 독자는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범인을 찾아 나서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막을 올린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제목만 가지곤 알 수 없었던 이 책은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었고, 그만큼 몰입감도 높았다. 특히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들은 이름도 생소한 ‘세밀 화가’였는데, 여기서 ‘세밀 화가’란 고대 터키의 화풍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말한다. 이 책은 추리라는 큰 틀 속에서 오스만 시대에 실존했던 세밀 화가들의 화풍에 대한 번뇌와 갈등, 사랑에 대해 다룬다.


소설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는 역시 역경 속에서 피어난 사랑이라고 했던가. 절세미인 세큐레와 잘생긴 사촌 카라의 사랑이 그들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인해 이어질 듯 말 듯 전개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계속되는 죽음에 살인자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초반에 죽음을 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세밀 화가들 중 하나인데, 여기서 우리는 이들을 둘러싼 갈등이 사건을 푸는 실마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터키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그 둘의 문화적 영향 또한 많이 받았는데 당시 세밀 화가들은 서양의 원근법, 초상화 등의 새로운 기법을 접하고 ‘개성’이란 것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종교적인 믿음에 위배되는 위험한 것이다. 금기시되는 새로운 것의 유입과 그로부터 전통 세밀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열정, 한편으론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 등이 소설 속에서 다양한 내적/외적 갈등으로 어우러진다. 신이 주신 손재주로 그것을 갈고닦으며 평생을 그림에 바쳤던 세밀화가의 삶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었고 나는 그들의 삶이 눈부시게 뜨겁다고 느꼈다.


왜 ‘빨강’일까.

이 책 속에서 빨강은 고대 터키의 전통 화풍, 끝없는 전쟁과 사랑, 그림에 대한 열정을 떠오르게 한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사투는 어느 시대건 치열하고 격정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과거 속으로 힘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위한 외로운 싸움을 의미한다. 작가는 스러져가던 당대의 찬란한 문화를 기리는 마음에서 피와 열정의 색깔인 빨강을 강조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2019.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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