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나이

by 카밀리언

너무 바빴는지, 윤석열 정부 때 바뀐 만 나이 제도가 헷갈렸는지 강의 중 학생들이 물어본 나이에 한동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숫자들이 둥둥 떠다녔다. 한국 나이로는? 만 나이로는? 태어난 해부터 계산해야 하나?


강의를 마치고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눈은 앞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백미러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전전두엽 어딘가에서, 지금껏 살아온 44년을 조용히 되감고 있었다.


별로였다. 아무리 내 기준에 맞춰 치장을 하려 해도 자랑할 만한 인생은 아니었다.


대학교 졸업장을 받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스물네 살의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30대에는 분명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거라고. 40대에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누군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 44살의 나는 여전히 평범했다. 특별할 것 없는 아빠로, 남편으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젊었을 때 품었던 거창한 꿈들은 현실의 무게에 눌려 비벼볼 엄두조차 잃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라고. 꽤나 멋있는 인생이었다고.


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아내조차도 연애 시절, 내가 정성껏 각색해 들려준 그 판타지 같은 내 인생 이야기가 현실과 얼마나 다른 지를 지금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사람일 테니까.


큰 기대 없이 오랜만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는 손님 머리 손질을 막 끝내고, 설탕 커피로 동네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이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우리 작은 아들이 전화 왔어요."


나한테 "여보세요!"라고 답하는 것보다, 손님한테 자랑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떻게 질문을 하나 고민이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래서 그냥 안부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 게 자랑인 건지, 전화한 아들이 자랑스러운 건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후자를 믿기로 했다.


이번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나 신호음이 채 세 번 울리기도 전에 받으셨고,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질문을 할 새도 없이, 아빠만의 인사가 시작됐다.


 “돈은 잘 버냐?”


 “그냥 똑같아요.”


 “그래서 어떡할 거냐?”


핀잔 반, 걱정 같은 핀잔 반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정정하신 걸 보니, 당분간 병원에 모시고 갈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절친이라 생각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려고 전화번호를 뒤적이던 찰나, 집에 도착해 버렸다.


오랜만에 ‘젊은 아빠 코스프레’라도 해볼까 싶어, 천장 선반에 있던 옥수수 알맹이를 꺼냈다. 저번 주, 극장에서 첫째가 둘째와 다투면서까지 탐냈던 캐러멜 팝콘이 떠올랐다.


‘설탕만 넣으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옥수수와 설탕을 한꺼번에 팬에 넣었고, 결국, 전부 태워버렸다. 탄 냄새가 온 집안을 덮을 무렵, 창문을 열다가 마침 들어온 첫째 딸과 눈이 마주쳤다. 도둑질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딸은 실망하기는커녕 “아빠가 또 사고 쳤다”며 한참을 깔깔 웃어댔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인생 평가의 얕은 의지는 딸의 웃음소리와 내 민망함에 슬그머니 묻혀버렸다.


다행히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는 전화 한 통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목소리 톤이 유난히 높은 누군가에겐 걱정스러운 존재였으며, 팝콘을 태워도 웃어주는 아이에겐 제일 웃긴 코미디언이었다.


과거와 지금을 굳이 저울에 올려보면 인생 평가는 망한 쪽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별일 없이 살고 있는 내가 그저 다행한 사람이라 여겨보기로 했다.


내일은 팝콘 대신, TV에서 봤던 라면 제조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첫째 딸에게는 실패했지만, 둘째 딸에겐 꼭 성공하고 말리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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