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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위한) 경쟁법의 내용

by 이상윤


이전 에서는, 처음 경쟁법(Competition Law)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법의 취지와 인상 등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에 관해 다뤄보았다. 그리고 경쟁법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이 법이 전제하고 있는 (또는 규범적으로 지향하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경쟁(competition)이란 단순한 다툼(rivarly)을 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선택의 상호작용임을 강조했고, 이를 지키는 법이 경쟁법이라는 내 생각을 적어보았다. '내 생각'이라곤 했지만, 경험상 다른 분들의 설명과도 취지에 있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설명이 현실 문제 해결과는 큰 상관 없겠지만, 그래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처음 경쟁법을 소개할 때는 효과적이리라.. (hopefully)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경쟁법이, 특히 경제 영역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상호작용을 지향하고* 그래서 이를 보호한다는 것은 다뤘지만, ‘어떻게’ 보호한다는 것인지는 다루지 않았었다. 이번엔 이 ‘어떻게’(how)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해본 글이다. 역시 현실 문제 해결이나 연구와는 크게 관련 없지만, 이런 글이 경쟁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소 오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경쟁법의 핵심에 대한 인상 정도는 그려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전 글에서 말했듯, 경제적 맥락에서 사업자들의 선호와 선택의 의미는, 고객이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내 선택과 제안이 고객이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좋은 조건, 예컨대 더 낮은 가격이나 더 좋은 품질 등이 제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사업자들의 노력은 사업자들뿐만 아니라 사회를 점점 풍요롭게 만든다.


일단 다소 기술적(descriptive)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설명으로 접근해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제도의 제약(institutional constraints) 하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선호를 추구한다고 했을 때(한편으로는 연구를 하거나 제도를 설계할 때 그러한 가정들(basic assumptions)이 들어간다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전제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경쟁법 역시 공식적 제도로서 의도한 바를 구현하려면 뭔가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선택에 일정한 제약을 부과하게 된다. 앞서 경쟁법에 관한 사전적 정의에서 언급된 "anticompetitive practices, restrictive trade practices, and abuses of a dominant position or market power"에 대한 금지 규정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말의 앞뒤를 잘라 적절히 이어 붙이면, 경쟁법은 위 같은 반경쟁적인(anticompetitive) 것들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상호작용인 경쟁에서 나오는 사회적 이점들(benefits)을 없앤다고 보고 이들을 제도적으로 금지, 제약을 가함으로써 경쟁을, 경쟁의 이점들을 보호하려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런 서술이 특별히 어떤 의미 있는 설명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주로 경쟁법을 처음 듣는 학생들)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경쟁법은 반경쟁적인 것들을 금지로써 구현된다'는 단편적인 서술에서 한층 더 들어가 몇 가지 핵심들을 짚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더 밝게 드러내자면, 경쟁법 하에서 원칙적으로 모든 행위는 자유라는 점이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경쟁은, 사람들이 트랙이 그려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알아서 뛰노는 것처럼, 개인의 모든 선택이 (그 선택의 의미마저도) 자유로 맡겨진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이를 비즈니스에 적용시키면, 사업자나 소비자들이 어떤 선호를 갖고 선택을 내리고 다른 거래상대방이나 소비자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는 (계약 위반이나, 부정경쟁이나 소비자보호 관련 법제를 어기는 경우는 일단 논외로 하고) 전적으로 개인의 자율로서 허용되어 있다는 뜻으로 풀어쓸 수 있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원래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에, 마치 행위의 가부를 결정하는 권리가 남에게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허용한다'는 말도 적절치는 않아 보이긴 한다.)


예컨대, 내가 어떤 음료를 팔면서도 다른 사업자와 합의해서 가격을 올리는 것도, 내가 상품을 공급하면서 거래상대방에게 내 물건만 취급하도록 요구해도, 키보드를 팔면서 내가 만든 마우스를 끼워파는 것도, 원두와 커피를 함께 만들어 팔면서 내 원두를 다른 커피 사업자에게는 팔지 않기로 하더라도, 모두 일단 원칙적으로 본인 자유다(당연히 책임도 본인이 지겠고).


경쟁법이 무언가 ‘금지’함으로써 제도적 제약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반대로 말해서 금지는 예외이며 원칙적으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점, 이건 경쟁법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역사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이 강하지 않았던 벼농사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다른 추가적인 서술이 없는데도 위와 같은 상황 또는 행위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 선택이 다른 이들의 선택(거래상대방이나 소비자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고 다른 이들의 선택이 내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게임 상황과 같은) 현실을 간과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아마도 이렇게 상호작용을 간과하는 사고는 정부나 사회에 의해 주어진 역할기대를 착실히 수행해 온 사람들(동아시아 사람들)에게서 더 강하게 발견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둘째로, 순서상 첫 번째 다음으로 올 두 번째 강조점으로는(즉, 일종의 "lexically priority"로서, 첫 번째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강조될 부분은), 위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뭔가는 경쟁법으로 금지가 된다는 점이다. 앞서 그 '뭔가'를 반경쟁적 행위들(anticompetitive practices)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논리적으로, 경쟁(competition)이 원칙상 자유로운 개인들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라면, 반경쟁(anti-competition)은 이러한 상호작용을 끊거나 잘 이뤄지지 않게 제약하는 무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선 예를 이용해서 말하자면, 시장에 있는 다른 모든 음료 사업자들과 작당해서(또 다른 새로운 사업자들도 어떻게든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시장의 음료 가격을 훌쩍 올린다든지, 내가 시장의 공급 물량을 거의 장악한 상황에서 상대 업체들에게 필요한 물량 전부를 내 물건으로 채우게끔 해서 다른 사업자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다든지, 소비자들이 내 고품질 키보드에 거의 종속되어 있는 상황을 이용해서 마우스 시장에서도 경쟁 사업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둘을 끼워판다든지, 주변을 보니 원두를 공급하는 곳은 나밖에 없음을 이용해서 다른 커피 사업자들에게는 갑자기 원두 공급을 끊어버린다든지, 하는 그런 상황들 말이다. 이전 사례들과 달라진 것은 이번 사례들에서는 거래 상대방이나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택, 다른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음료 소비자들과 다른 사업자들의 상호작용, 납품업체의 대체 거래처, 마우스 소비자들과 다른 생산자들의 상호작용, 커피 소비자들과 다른 까페들의 상호작용이 끊기거나, 크게 제약되었다는 것이다. 경쟁법이 금지하는 반경쟁이란 이같은 상황을 말한다.


물론 그런 문제 상황이 대체 어느 지경까지 이르고 심각해져야 '시장에서의 선택과 상호작용(경쟁)이 막혔다, 혹은 제한되었다'고 인정하고 금지할 수 있을지는 (시장 실패와 정부 역할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이다. 이 문제는 제쳐두자. 일단 기억할 점은, 위처럼 상호작용으로서의 경쟁이 어떻든 자유지만, 사업자들이 이를 막거나 제한하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한다면, 앞서 언급한 경쟁의 사회적 이점들(benefits), 즉,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이뤄지는 낮은 가격이나 높은 품질이 사라지거나 줄어들게 되므로, 경쟁법은 그러한 행위들(또는 상황들)은 제도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사업자들의 선택과 행동을 조정한다는 점이다. 경쟁법의 구현 방법을 이해하려면, 이렇게 금지의 이유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염두에 둘 부분은, 사전적 정의에서 금지되는 대상이 "practices"나 "conduct"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앞선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금지로써 제약이 부과되는 타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행위로서 야기될만한 상호작용으로서 경쟁이 제한되는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즉, 사업자가 경쟁 행위로서 뭘 하든(다시 강조하면, 다른 법률에 의해서 금지되는 반칙행위가 아닌 한) 원칙적으로 자유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일정 행위들이 경쟁이 제한되는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또는 그럴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금지된다는 게 포인트다. 경쟁법에서는 이를 대개 행위의 '효과(effects)'라고 표현한다. 다만 표현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금지의 초점이 행위 자체가 아니라 어떤 행위든 그로부터 이어지는 상황(consequences)에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자유로운 경쟁행위가 금지되는 반경쟁행위로 평가되는가? 이 기준은 이미 앞선 사례들에서 제시된 그대로다. 예컨대 무시할 수 없는 수 또는 영향력의 음료 사업자들이 담합을 한 경우, 내가 시장 공급 물량을 이미 장악하고 있어서 나와 같거나 나보다 뛰어난 사업자조차 현재 시장에서는 도저히 덤비기가 어려울 정도로 내 영향력이 큰 경우, 내가 키보드와 마우스 시장 전부에서 영향력이 상당하거나 키보드 시장에서 존재감이 압도적인 경우, 내 원두가 진짜 꼭 필요한 상황에서 내가 원두 공급을 거절하면 다른 까페들이 진짜 다 망하게 생긴 경우 등이다.


경쟁법학에서 자주 쓰는 말로, 영향력은 주로 관련 시장(relevant market)에서의 점유율(market share)로, '나와 같거나 나보다 뛰어난 사업자'는 동등효율경쟁자(as-efficient competitior)라고 표현되는데, 표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관련 시장은 그냥 경쟁 관계, 점유율은 그 관계에서 내가 갖는 상대적 위치, 동등효율경쟁자는 사회나 소비자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경쟁법 원리*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행위라도, 조건, 상황, 맥락에 따라 (다른 말로, 행위 양식이 아니라 행위의 효과에 따라) 반경쟁적 행위로 평가되고 금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이쯤에서 약간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하면, 동등효율경쟁자(as-efficient or equally efficient competito) 개념은 반드시 가격 관련 남용 행위에 적용되는 테스트(test)인 것만은 아니다. 좁게는 그렇게도 구현되지만, 넓게는 더 나은 가격, 품질, 서비스, 혁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경쟁의 이점, 경쟁법의 규범적 기준(standard)이 된다.


이번 글에선, 평면적으로, 경쟁법이 상호작용으로서의 경쟁 보호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법학에서 보통 실체법(susbstantitve law)이라 하는 부분일 것 같은데, 역시 표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평면적'이라고 말한 취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다룬 것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하여, 일단 '입체적'인 현실은 제쳐두고, 개념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 경쟁법이 '이래라, 저래라'하는 이유와 내용에 대해서 짚어본 걸 이해하는 게 핵심일 것 같다.


만약 좀 더 이어서 이야기하면, 경쟁법 집행에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판단 오류와 이를 반영한 행위별 다양한 판단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일단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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