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나 연구자가 아닌, 강사로서 경쟁법(Competition Law)을 대하다보면, 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경쟁법이 뭔지, 좀 더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물론 '경쟁법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실제 현장의 문제 해결이나 당면한 연구 과제에는 별(혹은 전혀) 도움이 안되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 생소한 사람들에게 강의 형식으로 경쟁법의 내용을 전달할 때는, 다소 오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런 질문에 핵심적인 몇 마디 말로 답해주는 것이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쟁법의 가장 논쟁적 질문인 법 목적과 관련해서, 학생들이 다양하게 제시되는 개념들과 가치들 앞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난 일단 이 법은 '시장 경쟁을 복원해서 해결될 문제들을 해결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바운더리를 제시해준다. 뻔한 말이지만, 이렇게 간단히 핵심을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이 경쟁법 목적에 대한 논의의 중심을 잡도록 하는 데 꽤 큰 효과가 있다.
그럼, 이렇게 강의 목적에서 쉽게 정의할 때, 경쟁법이란 게 뭔가.
Oxford Reference라는 사이트를 보니, 경쟁법을 "The branch of law concerned with the regulation of anticompetitive practices, restrictive trade practices, and abuses of a dominant position or market power."라고 정의해두었다. 맞는 설명이지만... 이런 기술적인(descriptive) 접근이 어떤 의미 있는 설명을 만들어내는 것 같진 않다. 이는 단지 현상으로서 나타난 제도의 현황을 있는 그대로 정리한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나도 이제 겨우 주니어로서 어떤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저런 메모를 남겨 보면서, 여러 이해를 시도해보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이번 글은 그런 과정에서 나온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종의 중간 보고(interim report) 정도라고 하면 좋겠다.
먼저 '경쟁(competition)'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경쟁의 개념 정의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연구를 하면서 접하는 글들, 판결문들, 그리고 사람들의 발언들에서 경쟁은 대체로, '한정된 모두가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서 둘 이상의 존재가 다투는 상황'으로 상정되는 걸 본다. 그리고, 이 선상에서, 경쟁법은 이러한 경쟁 상황이 경제적 맥락에서 더 높은 배분적 효율(allocative efficinecy)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면서 경쟁을 촉진하는 법으로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설명된다. 경쟁법이 서로 다투지 않는 협력, 예컨대 가격 인상이나 시장분할과 같은 합의를 엄격히 금지하는 건 이러한 이해가 구체화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 Moreover, compelling negotiation between competitors may facilitate the supreme evil of antitrust: collusion. ..." - Justice Scalia's opinion, which was on behalf of the US Supreme Court, in Verizon Communications Inc. v. Law Office of Curtis V. Trinko, 540 U.S. 398, 408 (2004)
"... Fighting cartels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reas of activity of any competition authority and a clear priority of the Commission. Cartels are cancers on the open market economy, which forms the very basis of our Community. ..." - Mario Monti, ‘Fighting Cartels Why and How? Why should we be concerned with cartels and collusive behaviour?’ (3rd Nordic Competition Policy Conference Stockholm, 11-12 Sep 2000
이러한 이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경쟁과 경쟁법을 이렇게만 말하고 그치는 것은 여전히 좀, 피상적인 것 같다. 난, '한 국가가 경쟁을 이상적 가치로 설정하고 이를 보호하는 경쟁법을 두고 있다', '한 국가가 시장 경쟁을 기본으로 이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경쟁법의 형태로 구속하고 있다'는 것은, 다툼(rivarly) 이상의 좀 더 넓은, 혹은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경쟁의 개념 정의에서는 왜, 어떻게, 복수의 존재가 뭔가를 두고 다투는 상황이 상정되고 있는가?
내가 이해하는 바로 그것은, 규범적으로, 각 존재, 개인들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있어야 한다고 전제되기 때문이다. 즉, 일정한 목표를 부여받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수동적 인간상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할 목표와 수단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인간상이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전제 위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한정된 무언가를 두고 상호작용하는 경쟁 상황이 상정되고 있는 것이다.
종종 이러한 개인의 자유를 전제하지 않고, 단순한 다툼을 경쟁이라고 보는 시각이 보인다. 특히 한국 사회를 '경쟁적'이라고 할 때 이런 용례를 자주 본다. 하지만 난 그런 다툼은 경쟁이라기보다는, 경쟁의 한 일면이라 할 수도 있는, '경주(race)'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육상 경기처럼, 엄격히 정해진 룰 안에서, 공통의 목표 지점을 향해, 출발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다같이 앞만 보고 뛰어나가는 그런 경주 말이다.
물론 이것도 경쟁의 일부일 수 있지만 이런 일부, 또는 한 측면에 불과한 것을 침소봉대해서 경쟁 그 자체로 보는 시각은 곤란하다. 이 경우 경쟁의 중요한 기본적인 전제를 배제하게 되어서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내 가치관을 살짝 넣어서 말하자면, 이렇게 개인의 자유를 소거한 '경주' 개념을 '경쟁' 개념 그 자체인 것처럼 치환해버리는 경우 인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개개인이 경제발전과 같은 특정 목표를 위한 도구화가 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들, 비인간적인 모습들이, 이렇게 경주를 경쟁 그 자체로 잘못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 측면도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경쟁이 경주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경쟁에 대한 더 나은 이해는 뭘까?
계속 달리기의 비유를 이용하면, 경쟁은, 내 생각에, 일정한 트랙을 달리는 경주보다는, 출발 지점도, 트랙도 그어지지 않은 운동장 한 가운데서, 세세한 규칙 없이(물론 남의 발목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등 최소한의 기본적인 룰은 있겠지만) 그저 각자가 알아서 목표를 정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으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대체 이런 무질서 속에서 경쟁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물을 수도 있겠다. 질문자가 인식했든 못했든, 그러한 질문은 사실, 중세 이후, 교회와 신이 없어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내리는 선택과 의미에 관한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고, 타당하다. 우리의 일상과 사회의 맥락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쉬운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지금 그런 존재론적인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린 경제적 맥락에서 시장과 경쟁법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으며, 이 경우엔 비교적 단순한 대답이 가능하다. 경제적 맥락에서 경쟁의 의미는 비교적 간단하게, 나의 선택(상품, 서비스)이 시장, 고객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스마트폰,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를 생각해보자. 난 아직도 기억나는 게, 일부 한국 사람들과 기업들이 보였던 냉소적인 태도였다. 당시 이들의 반응을 요약하면, 아이폰이 한 것은 기술적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로 그리 대단한 혁신이 아니란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당시 사람들의 '경주'형 (어떻게 보면 근대적인) 사고방식, 그러니까 '휴대전화 판매시장'이라는 트랙 위에서 '더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위해' 경쟁한다는 사고에서는, 기술적으로 별 것 없는 아이폰의 혁신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들이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시장은 트랙이 (있어보이지만 사실) 고정되어 있지 않은 오히려 허허벌판 운동장에 가까운 곳이고, 그곳에서의 경쟁은, 정해진 트랙을 빨리 달리는 경주가 아니라, 결승 지점이 정해지지 않은, 그러니까 소비자들의 진짜 선호가 뭔지 알려져 있지도 않고 그게 고정되어 있지도 않은 매우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상호작용이라는 점이다. 누구도 시장이 영원히 '더 싸고 가볍고 예쁜 휴대전화를 만드는 경주'일 것이라고 약속한 적 없었지만, 그들은 정부 주도 수출 경제로 성장한 한국이란 사회 속에서 그런 시각으로 시장 경제를 보았고, 그랬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손 안의 플랫폼으로 바꿔버린 아이폰의 혁신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들의 문제는 단순히 경직된 사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더 심각하게, 이들은 과거 한국에 그만큼 시장경제의 원리, 즉, 기업으로서든 소비자로서든, 독립된 개인이 정해진 목표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며 그러한 선택들로 만들어지는 자연적 질서를 기본으로 한다는 원리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보다 더 근본적인 사고 틀의 문제였다고 해석한다.
아무튼, 이처럼 아이폰의 등장과 확산은, 트랙 위의 경주를 달리는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뚜렷이 대비되는, 트랙이 정해지지 않은 시장에서 선택함과 선택받음의 상호작용으로서 이뤄지는 경쟁의 진정한 모습과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정리해서, 이처럼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경쟁을 이해할 때, 경쟁법이란 뭔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경쟁법이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뤄지는 상호작용인 경쟁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할 때, 흔히 경쟁법을 (특정 부문 규제와 달리) 시장경제의 기본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잘 설명된다. 즉, '경쟁법은 이처럼 개인의 선택 자유가 있는 시장을 전제로 하므로, 그러한 선택이 제약되는 경우(예컨대, 카르텔이나 독점력의 남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어디에나 적용된다'고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누군가는 이쯤에서 '공정성(fairness)'의 문제를 들고 나올 수도 있겠다. 즉, 지금까지의 경쟁과 경쟁법에 대한 설명은 지나치게 자유에 치중한 설명으로,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들에 논의 범위를 한정하더라도, 위와 같은 이해는 한국과 일본, 대만처럼 '공정성'과 '공정 경쟁'을 강조하는 법제의 존재를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있을 수 있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의 경쟁법 안에서) 공정 경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단, 지금 자세히 살펴볼 것은 아니지만, 서구에서 나타난 현대 경쟁법에서 공정성은, 일반적으로, 비차별적 취급, 영어로는 "equality"나 "standing on an equal footing"에 가깝고, "equity"나 분배적 고려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서 짚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들어가서, 경쟁법에서 적극적 의미의 공정성이 무엇을 의미할지 생각해보자.
공정한 경쟁의 의미에 관하여, 앞선 비유를 계속 유지할 때, 난 공정 경쟁이야말로 일종의 트랙 긋기로 이뤄지는 (경주 성격의)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즉, 경쟁에서 공정성을 말하는 것은, 이전의 목표도 규칙도 정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선택이 상호작용하는 자유로운 상태를 좀 벗어나서, 어느 정도 규칙과 트랙을 만들어약간의 경주를 조장하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실 공정성의 판단이 어떤 공통된 규칙이 있고 플레이어들이 플레이 과정에서 이 규칙을 넘었는지 넘지 않았는지를 평가하는 작용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일 수밖에 없다. 아무런 절대적인 트랙도 규칙도 없다면, (상대방 다리를 걸거나 해치는 등의 불공정을 제외한다면. 이런 것은 사실 경쟁법이 아닌 부정경쟁(unfair competition)의 영역이다) 우리는 무엇이 공정하고 무엇이 불공정한지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성의 평가가 가능한 것은 정해진 트랙이 있는 경우다. '공정성'이라는 이름 하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트랙을 긋고, 시작점과 끝점을 정해두어야, 여기서 벗어나는 불공정한 행위를 정의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공정성은 아무래도 자유로운 선택과는 다른 결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자유를 양보시키는 것이든, 보완하는 것이든, 어느 쪽이든, 결국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한 상호작용의 내용이나 범위, 방식을 특정 의도를 갖고 제약하는 개념이 경쟁에서의 공정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난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 나타나는 것은, 사회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기보다는 어떤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목표를 만들고 이 목표 달성에 최적화 된 트랙을 만들어 개인들이 이 위를 경주하도록 만드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의대를 맨 앞에 둔 대학 서열화, 소수 대기업을 맨 앞에 둔 산업 구조, 서울 최상급지를 맨 앞에 둔 부동산 서열화, 그리고 이들을 갖는지 못갖는지에 따라 극단적으로 자원 배분이 결정되는 사회 구조... 이들이 없다면, 대학 입시와 채용 시장, 청약 시장에서 그토록 공정성이 강조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아무튼, 경쟁법 이야기로 돌아와서, 예컨대, 한국 또는 일본 경쟁법인 공정거래법에 흔히 등장하는 '정상적인 거래관행' 등의 기준들은, 이렇게 공정성 판단을 위해서, 흐릿하지만 분명히 의도를 갖고 그어진 일종의 '트랙'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국의 하도급법 또는 일본의 하청법과 같이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 규율에서 파생된 특별법들의 규범적 기준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법들은 분명 경기 규칙과 트랙이 정해진 경주의 상황에서 이를 벗어나는 선수를 제재하듯이, 정부가 가격과 거래 조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특성을 매우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불공정성이 일정한 트랙과 규칙을 벗어난 상태라는 사실보다는, 공성성이든 불공정성이든 그것은 운동장 위에 없던 트랙과 규칙을 (잠정적이고 부분적이나마) 정해 놓은 상태라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즉, 무엇을 비상적적이다, 불공정하다고 비판하기에 앞서서, 그러한 비정상이나 불공정 비판을 가능하도록 만든 어떤 사회적 기준이 있다는, 혹은 있다고 여겨진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이 없다면, 공정과 불공정의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런 기준은 누가 만드는가? 또 언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다만, 어떤 식이든, 그런 기준이 유효한 제도로서 정당성(legitimacy)을 인정받고 도입되고 존속하는 것은, 그 사회가 처한 상황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그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남아프리카 경쟁법이 역사적 차별(Apartheid)과 심각한 자산 불평등 상황에 대한 반성적 고려를 법 목적에 담은 것처럼, 역사적 맥락과 상황에 따라,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의 인위적인, 특정 가치에 대한 부여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다른 한편, 한국과 일본에서는, 불공정거래행위 제재를 포함해서 하도급법, 프리랜서법 등 다양한 공정성 중심의 법제들이 도입되어 있는데, 여기에 어떤 특별한 사회적 맥락(과거 강력한 산업정책의 유산, 제도화 된 갑을 관계, 착취 등...)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이처럼 경쟁에 공정성 개념을 넣는다는 것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쟁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경직된 (때에 따라서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경주의 성격으로 바꿔놓는 일(혹은 문제)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과 경쟁법에서 (단순한 equality 이상의 개념으로서) 공정성을 말할 땐, (단순히 분배적 고려를 강조하는 것 이상으로) 이런 측면을 인식하고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가 내가 강의에서 쉽게 전달할 목적으로 생각했두었던 경쟁과 경쟁법에 대한 생각들이다.
이런 내용들을 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 경쟁법을 처음 접할 사람들에게 모두 그대로 전달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주관적인 해석도 많고, 무엇보다 지루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생략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개인의 자유와 선택,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와 사회 규범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제도들의 영향을 염두에 두고, 경쟁법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청자의 사회적 맥락이 어떻든, 비교적 보편적인 수준에서 쉽게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쟁법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뤄지는 상호작용인 경쟁을 보호하는 법'이고, 여기서 '상호작용의 내용이나 범위, 방식은 공정성이란 이름 하에 일정한 방향으로 제약될 수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다. 특히 20세기 후반 정착된 평화적 다자주의 구도와 자유주의의 확산, 그리고 세계화의 역사를 알면서, 동시에 최근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뻔하면서도 또 낡은 설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특별한 고민 없이, 곧바로 '공정거래법 제1조'의 내용부터 시작하는 전근대적 강의 방식보다는 역시 이게 낫지 않을까... 하고 위안을 삼아본다.
그런데 정말, 멀리는 유럽연합의 플랫폼 규제 논의 때부터 조금씩 느끼기는 했지만, 요즘 특별히 미국 대선 이후 더 빠르게 전개되는 것 같은 세계의 변화를 보고 있으면, '경쟁법'이란 강의 과목에 대한 이런 설명이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