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나에게 꽃다
그날은
그냥, 좀 걷고 싶은 날이었다.
날씨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기분이 특별히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좋았던 건 더더욱 아니고.
그냥,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서
운동화를 꺼냈다.
끈을 묶지 않고 그대로 신었다.
그날은 느슨한 게 더 어울리는 날 같았다.
목적지는 없었다.
지도도 없이 골목으로 들어섰고,
익숙한 편의점을 지나
그다음엔 낯선 벽을 돌았다.
나는 걸었다.
걸음엔 방향도 의미도 없었지만
그게 오히려 나를 덜 복잡하게 했다.
머릿속은 아주 조금, 덜 시끄러워졌다.
그 정도면 괜찮았다.
커피가 떠올라
편의점에 들렀다.
따뜻한 캔을 들고 계산대로 갔지만
점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조용한 계산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커피를 들고 있으니
그제야 겨우 사람들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통화를 하고,
누군가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내 앞에 멈췄다.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였다.
손에는 분홍빛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숨을 조금 고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준호 씨 맞으시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죄송해요.
오늘은 그냥… 그렇게 보여서요.”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꽃다발을 가슴 쪽으로 안은 채,
조용히 돌아섰다.
나는 손에 든 커피를 내려다봤다.
갑자기, 내 이름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일.
별일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이 남았다.
걷는다는 건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잠깐 잊어도 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걸었다.
그날의 마지막 길은 조용했고,
발걸음은 전보다 가벼웠다.
집에 돌아와
물 한 잔을 마셨다.
유리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손끝에 닿은 물방울을 천천히 털어냈다.
괜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물방울이 마르기 전까진,
오늘이 끝난 것 같지 않았다.
세상은 아주 조금,
살 만해졌다.
아주 조금.
그녀는 왜 나에게 꽃다발을 들고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