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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서기 Aug 19. 2021

햄버거는 죄가 없다.

   

   

늦은 밤, 남편이 술에 잔뜩 취한 채 뭔가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말을 해서 햄버거인 줄 알았지, 감자튀김, 햄버거, 콜라가 뒤 섞여 있다 보니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딱딱해진 고기가 빵조각과 함께 나 뒹글었고, 포장지가 더덕더덕 달라붙은 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내 눈빛이 싸늘해지는 것을 보자 남편은 미안한지 겸연쩍은 듯이씩 웃었다. 그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한 바가지 쏟아내더니 툭 던지듯이 햄버거를 내밀었다. 세상에 이걸 먹으란다. 얼마나 힘을 쥐었는지 다 찌그러지고 엉망이 되었다. 햄버거가 발이라도 달렸나, 가만히 들고 와도 될 것을….     

  애들은 막 잠자리에든 상태였지만 남편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큰소리로 아이들을 불러댔다. 한참 만에야 마음 약한 막내가 눈을 비비고 와서는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지만 불편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보다 못해 방으로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자 이번에는 큰애 이름을 불렀다. 간신히 잠든 딸아이가 혹여 깰까 싶어 작은 소리로 설명을 했지만 남편에게 그런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결국 큰딸아이가 짜증을 내며 대답하자 남편이 혀가 잔뜩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아니.... 햄버 먹.... 으라고 불렀는데.... 왜 화를 내? 참.... 내 이해가 안.... 가네."     

 자기 딴에는 햄버거 사온 죄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맞는 말이다. 남편이 무슨 죄인가, 고놈의 술이 문제지.     


  남편은 대학 때 술내기에서 소주 15병을 마신 저력이 있다. 그 일로 삼일 동안 잠수를 탔었다는 말을 들었다. 쉰을 훌쩍 넘겨버린 후로는 많이 자제하지만 여전히 달갑지는 않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안 맞다 보니 알코올이 몸에 닿는 순간 봄날에 아지랑이 피듯이 정신을 못 차리고, 심장은 곧 실신할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남편과 35년을 사는 동안 어지간한 것은 잘 넘길 만큼 뻔뻔해졌지만 술만큼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는 남편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남편은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로 결근하는 법이 없다. 또한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항상 새로운 대책을 모색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남편을 위해 올해는 애교스러운 아내의 변모(變貌)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겨진 월남치마가 자연스러운 푼수 쟁이 아줌마로 변신해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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