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넘어갈 즈음 공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공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혹시 꽃은 안 파시나요?'라고 묻길래 파는 꽃은 없다고 했더니 실망하는 느낌이었다. 되돌아가려는 청년에게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고서는 마침 활짝 만개한 수국을 보여주며 '이거라도 드릴까요?' 했더니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실은 지난주에 여자 친구와 크게 싸웠거든요.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꽃집을 돌아다녔는데 전부 문을 닫은 뒤라 속상하던 차에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밤이 늦었지만 오늘 여자 친구와 꼭 화해를 하고 싶어서요."
알고 보니 작은 딸 또래였다. 조금 안쓰러운 마음에 아끼던 보라색 수국을 뚝 잘라서 드라이플라워와 함께 최대한 예쁘게 포장해주었다. 청년이 얼마나 감동을 하는지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포장지가 따로 없어서 한지로 예쁘게 감싼 다음 카디 페이퍼에 글씨도 써주었다. '현지야, 네 옆에 항상 가까이 있을게'
'사랑해'라는 단어를 넣어줄지 묻자, 여자 친구가 오글거리는 것을 젤로 싫어한다하길래 그건 생략했다. 그러면서 그 청년에게 꼭 싸워야 한다면 지혜롭게 잘 싸우는 비결을 알아가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청년에게 이 꽃다발에 내가 마법을 불어넣었다고 웃으며 말해줬더니 청년도 이빨을 보이며 활짝 웃어보였다. 비도 오는 주말 밤에 훈훈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