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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 ELECTRIC Aug 31. 2021

전기맨의 직업병 – 휴가 때도 OOO만 보인다

여름휴가단상


와이프, 딸, 나 포함 청주 토박이 셋이서 강원도 고성으로 놀러 가는 길, 창밖을 보던 와이프가 전기차를 가리키며 외쳤다. 


“오!” 

그리고 또 외쳤다. 

“저기 또 보인다!” 


우리 앞엔 디자인에서부터 감성이 물씬 풍기는 테슬라가 달리고 있었다. 고성까지 고작 세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도로 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전기차가 보였다. 테슬라뿐만 아니라 아이오닉, 코나까지 그 종류도 참 다양했다. 



고개를 들어 더 멀리 바라보니 바다가 살짝 보였다. 강원도 동해의 에메랄드처럼 푸른 바다는 서해나 남해에서는 볼 수 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해줬다. 바다만이 아니다. 고속도로에서 강원도 팻말이 보이자 도로 옆 산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고서저’라는 우리나라의 지형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거대해지고 녹색으로 변해가는 자연을 보고 있으면 천혜의 자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몇 시간 달렸을까?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기름도 보충하고 식사도 할 겸 강원도의 유명 휴게소에 들렀다. 딸이 태어나기 전엔 점심시간을 건너뛰고 여행지로 곧장 갈 때도 있었지만 딸이 생긴 이후로는 식사 시간을 건너뛸 수 없었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전기차 충전소가 또 보였다.

전기차는 충전하는 게 가장 문제야. 저걸 또 언제 기다리고 있어?


테슬라가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 걸렸을까? 그냥 멋쩍게 한마디 전기차 혹평을 해봤다. 

그 후로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바쁘게 딸아이 점심을 먹이고 와이프와 나도 뒤늦은 식사를 했다. 딸의 화장실 용무까지 끝나니 4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40분이라…… 

전기차 충전 시간은 30분만 되어도 충분하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우리가 휴게소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니 아까 전 내가 했던 혹평이 별 볼 일 없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휴게소를 떠나기 전에 다시 주유소를 들려야 하는 상황. 시간만 더 걸리게 되었다. 전기차와 달리 주유소는 내가 밥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기름을 충전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충전에 문제가 있다면 전기차보다 내연기관 차가 더 곤란해 보인다.


사람이 쉴 때 알아서 충전해주는 전기차는 사람의 실생활에 자연스럽게 겹쳐지지만, 내연기관 차는 여전히 사람의 휴식 시간과는 분리되어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해온 화석 에너지지만 인간을 빠르게 해 줄지언정, 끝까지 함께 해줄 거란 확신은 없다. 내연기관 차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운전자들에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컨슈머 역할밖에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에 전기차는 이런 충전시스템이 늘어나게 된다면 전기차를 에너지 저장장치(ESS)로 활용할 수 있는 *V2G(Vehicle to Grid) 시스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전기차의 전력을 피크시간에 역전송할 수 있는 V2G 시스템이 갖춰지게 된다면 이제 운전자는 더는 에너지 컨슈머만이 아닌, 에너지를 생산하는 프로슈머로서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달리다 보니 눈앞에 청정 그 자체인 동해가 보인다. 너무나도 새파란 바닷가. 아직 이성보단 감성에 충실한 우리 딸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바다를 향해 달려 나간다. 



신나게 놀고 있는 딸아이를 열심히 찍어주었다. 바닷가에서 놀다 보니 요즘 유행이라는 차박을 한번 해보고도 싶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 딸이 잠들면, 와이프와 같이 맥주 한 캔 곁들여 전기차와 연결된 노트북으로 넷플릭스 한편 감상하는 별 헤는 밤을 그려본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피천득이 말한 인연에 대한 명언이다. 인류가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전기차라는 인연이 좋은 타이밍에 다가왔다. 그 인연을 잘 살리는 현명한 사람이 될지, 그게 인연인 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지를 결정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다만 모든 인연은 타이밍을 놓치면 돌아오지 않고, 설령 다시 돌아오더라도 어제의 12시가 오늘의 12시가 아니듯 최적의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 고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연보랏빛 라벤더 꽃밭을 딱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기만 해도 감성이 풍부해지는 이 절경은 6월 중에서도 단 2주 동안만 볼 수 있다. 타이밍을 놓치면 다음 해나 되어서야 라벤더를 다시 볼 수 있다. 내가 이 시점에 고성으로의 가족 여행을 오지 않았으면 올해엔 절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청정 자연을 느끼며 가족들과 함께 감성과 추억을 충전하는 시간도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내가 그 타이밍을 맞춰서 라벤더를 맞이했듯이 인류도 완벽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전기차를 맞아들이길 바란다. 


그런데 휴가지에서도 전기차 생각만 했던 나, 직업병은 아니겠지?


* V2G(Vehicle to Grid) : 전기자동차를 전력망과 연결해 배터리의 남은 전력을 이용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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