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S ELECTRIC May 31. 2021

저개발 국가 발전 속 숨은 엔지니어의 땀방울

방글라데시에서의 철도 사업 2년

사진 출처 : pxhere 


살면서 겪는 새로운 경험들은 매번 신선한 충격을 준다. 

또, 이러한 경험들은 오래도록 기억되어 남은 인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나에겐 유럽 배낭여행과 호주 어학연수가 그런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향기, 추억들은 오랜 시간 나의 가슴 한편을 뛰게 만들었고 그 두근거림은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뀌어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나의 첫 출장지, 방글라데시


위험하게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 | 사진 출처 : 이승환


나의 업무는 저개발 국가에 철도신호시스템을 설치하고 시험하는 것이었다. 여러 국가들에 출장을 다녀왔었지만 그중에서도 첫 출장지였던 방글라데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남한 면적의 1.5배인 작은 크기에 인구가 1억 6천 명이나 있는 나라,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였다. 높은 인구 밀도 탓일까? 처음 방글라데시 열차를 본 날, 깜짝 놀랐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저렇게 타도 괜찮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게 열차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에서는 선로변에 보행자나 소가 지나다니고, 선로변엔 쓰레기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철도는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방글라데시는 공포의 현장이었다.


정전 상황 속에서 근무하는 모습 | 사진 출처 : 이승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전한 철도를 만들기 위해 작업자들은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시험을 진행했다. 방글라데시와 같은 위험한 환경에서도 사고를 방지하고 안전하게 동작할 수 있도록 *안전 측(Fail-Safe)을 고려하여 모든 시스템의 설계와 설치를 했다. 정전 중에는 방글라데시 철도청 직원들과 LED 랜턴을 비추어가며 업무를 진행할 때도 있었고 밤이 되어도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해 도시락으로 때우는 일은 다반사였다. 


길고 긴 2년의 시간이 지나 해당 프로젝트는 완료되었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첫 열차를 보낼 때 모처럼 오래된 정복을 꺼내 입고 출근하던 방글라데시 역장님의 미소가 기억난다. 2년간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 했던가? 첫 사업 이후 순조롭게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에 11개 역의 철도를 완성했다. 치타공 주민들은 돌발 상황에도 안전하게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방글라데시 철도청에서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원조받던 국가에서 수출하는 국가로


1960년대 대한민국 모습 

1960년대 한국도 선진국의 원조를 받던 저개발 국가였다. 하루 한 끼가 힘들었고 겨울에 난방은 꿈도 못 꾸던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철도 시스템을 직접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압축적인 성장을 통해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저개발 국가에서의 근무는 매우 힘들다. 오랜 기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생활환경 또한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포함 동료들은 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일을 한다.  60년 전 우리가 선진국과 국제기구로부터 도움을 받았듯 우리 또한 기술력이 부족한 국가를 위해 노력한다면 60년 후 또 다른 긍정적인 연쇄작용이 있지 않을까? 


악조건 속에서도 저개발 국가 산업에 최선을 다해 기여하는 나, 나의 동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진 출처 : 이승환

※ 해당 칼럼을 공유할 경우 LS ELECTRIC 출처 표시는 필수이고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이 금지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식구 생활비20만원을지킨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