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넘게 한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학생 모두 내가 정교사인 줄 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내가 학교에서 일을 시작하며 좋아하는 사람과 백년가약을 맺고 또 시간이 지나 사랑의 결실로 애까지 낳으니 교사라고 하는 나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매우 안정되었다고 보일 것 같다.
그런데 난, 5년 차 기간제 교사다. 기간제 교사라는 것이 범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숨겨야 할 사실도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쉬쉬하고 내 직업 앞에 '기간제'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을 가렸다. 기간제라고 하면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거나 안타까워하고 연민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에겐 전혀 찝찝한 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찝찝하게 바라보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설이었나? 추석 같은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기 며칠 전이었다.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아버지께 전화가 와서는 나에게 나지막이 한 마디를 하셨다.
- 가족들이 다 너 시험된 줄 알아. 정교산 줄 아니까 내려와서 암시랑토 않게 조용히 허고 있어.
그렇게 난 (기간제) 교사로 가족들에게 인사했다. 가족 어르신 중 누군가 나에게 야, 너 정교사냐? 기간제냐? 물을까 조마조마해하는 불안한 명절을 보냈다.
내가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게 아버지께서는 창피하셨던 걸까. 나는 그렇게 부끄러운 아들이었나.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저 어깨 꺾이지 않고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에게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의 거짓말이 문제였을까. 임용고시를 붙지 못한 무능력한 나의 잘못일까.
사실 내가 기간제 교사라는 말을 떳떳하게 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내가 느끼던 그 무능 감이었을 때문이었다.
나의 교과 특성상 국어나 영어 같은 주지교과처럼 매해 공고가 뜨지 않는다. 3년에서 5년 정도 기다려야 한 지역에서 두, 세 자리가 뜨는 전문교과다. 1000일은 기다려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소중한 기회를 불합격이라는 결과로 너무 허무하고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그것도 3번이나.
1차에서 떨어진 적도 있고, 최종에서 떨어진 적도 있다. 씁쓸하게 몇 번의 낙방을 맞으며 나의 20대와 30대가 지나갔다. 그리고 나의 자신감, 자존감이라고 하는 감정의 에너지 통도 점점 고갈되었다.
시험에서 떨어질 때마다 느끼는 쓰디쓴 그 패배감과 왜 수험기간 동안 더 열심히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 앞으로 언제 시험이 다시 열릴지 모르는 불안감과 막막함은 나의 정신을 좀먹었다.
다 왔다는 생각에 함부로 포기하지도 못했다. 그 몹쓸 미련 때문에. 돈은 벌어야 했고, 공부도 해야 했다.
시험 붙을 동안만 용돈벌이 하면서 일이나 하자, 고 했던 기간제 교사가 어느덧 5년이 되어버렸다.
5년 간 스스로 작아졌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부끄러워했다.
알게 모르게 동료 교사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나로부터 스스로 무시당하고 차별당하고 비교당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오고 싶다. 5년간 주변 사람들로 인한 나의 직업적 신분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지금부터는 당당하고 떳떳하고 싶다. 비록 아직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정복하지 못했지만 내가 마주하고 있는 (기간제)라는 간판을 마주하고 볼 수 있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자신감이 넘치던 사람이다. 내가 겪었거나 생각한 내용을 글로 쓰고 정리하고 되돌아보며 다시 나를 찾고 싶다.
기간제도 정교사도 아닌 그저 여기 있는 나를 온전히 나로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