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인증해야 할까
인증. 참이라는 근거가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거나 확증하는 행위.
인증은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우리 피부에 더 가까이 와닿는 단어가 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본인 인증. 특정 사이트를 가입하려하면 핸드폰 문자, 아이핀 등을 통해 본인임을 확인하고 회원가입이 진행된다.
또한 주식카페를 들어가면 너도 나도 모두 수익을 인증한다고 자신의 계좌를 캡쳐하여 카페에 게시한다.
이렇게 인증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한 커뮤니티에서는 글을 쓴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논란이 되었다.
댓글로 사람들은 글쓴이에게 성별 인증을 강요하였고 글쓴이는 자신의 신체 중 성기 일부분을 자신의 닉네임과 함께 인증하여 성별을 인증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인증 문화는 왜 이렇게 활발해졌을까?
첫째, 거짓 정보가 판치는 인터넷 정보 홍수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증이 요구된다.
선사시대부터 어제까지 만들어진 데이터의 양보다 오늘 하루 만들어진 데이터의 양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18년 기준 전 세계에서 하루 생성되는 데이터양은 2.5엑사바이트(EB·1EB는 약 10억기가바이트)에 달했다. 해리포터 책 6500억권에 육박하는 양이다. 이 정보가 만들어진지 3년이 더 지났으니 하루에 만들어지는 양은 더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많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정보가 올바르고 참인지 선택하고 판단해야 한다. 정보의 출처가 확실하면 정보가 정확할 확률이 높아진다.
확실한 정보를 제공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연출된 것, 소위 주작인지 아닌지 인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 확실히 하고자함과 그 확실함을 통해 얻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인증의 본 목적이 바로 확인하고자 하는 행위다. 그리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확실하게 확인하면 그 뒤에 얻어지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 찌라시성으로 주식 종목을 추천하면 갸우뚱한다. 의심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100억 수익 인증을 하는 순간, 주식 종목에 신뢰와 믿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불신 속에서 인증을 통해 확신을 얻고자 한다.
대부분의 인증 방법은 사진이다. 사진을 통해 인증을 하거나, 영상같은 경우는 편집되지 않은 원테이크로 찍은 영상을 주고 주작없는 인증의 방법으로 통한다. 수익계좌가 자신의 계좌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하기 위해 로그인부터 수익이 보이는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촬영한다.
그러나 인증 요구의 수준과 인증 수준, 그 정도가 지나치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성별 인증을 비롯하여 남녀간 성관계 동영상 인증, 애완견 살해 인증 등 바람직하게 써야할 인증이 잔인하고 무섭게 변하고 있다.
인증 요구와 인증의 방법이 변질되어가고 있다.
3월 22일 대통령이 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많은 국민에게 보란듯이 백신을 맞는 사진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바로 '대통령 백신 바꿔치기' 뉴스가 올라왔다. 정치적인 공격일수도, 마음 속에서 비롯된 불신의 결과라 보여진다.
진짜 백신인지 아닌지,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필자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AZ'라고 쓰여진 병을 보여주고 주사기 바늘로 꽂아서 약을 쭉 뽑은 다음 피부에 주입하는 것까지 영상으로 원테이크 촬영을 통해 다 보여줬어야 믿는걸까? 그게 올바른 인증의 방법이었을까? 혹은 인증을 했음에도 믿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의 잘못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인증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인증을 요구받는 사람은 어디까지 인증을 해야할까?
우리는 어디까지 인증을 믿을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