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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Oct 13. 2017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이야깃거리들

이미 관람한 사람들을 위한, 스포일러 가득한 잡담과 해석

10월 6, 7, 8일 내내 매일 한 번씩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았다. 자의 반 타의 반이기는 했지만, 몇년 간 기다려온 작품이었기에 그럴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정식 개봉도 했으니 아마 한 번 정도는 더 볼 것 같다.


리뷰는 좀 이후로 미루어 두고, 오늘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의문점들 혹은 인상깊었던 장면을 포인트 별로 짚어보려 한다. 당연히 스포일러를 가득 담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볼 예정인 사람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기 바란다.


1.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인가?

확실히,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증거가 본편에 더해 많이 나온 시퀄이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월레스의 대사다. 데커드가 만들어진 존재라면, 레이첼과 데커드의 사랑이 수학적으로 설계된 것일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이에 대해서 데커드는 '진짜가 어떤 건지는 내가 잘 안다.'라고 반박하기는 한다. 하지만 천재 과학자 월레스가 허투루 저런 말을 내뱉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주 잠시 나온 개프 역시 중요한 증거다. 개프는 전작에서 종이접기 유니콘을 데커드에게 남긴 것 처럼, k를 보고 종이접기 양을 만든다. k가 실제로 레플리컨트라는 점을 볼 때, 개프가 '데커드는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유니콘을 주었을 거라는 전작의 해석이 조금 더 힘을 받는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대사다. 개프는 k에게 '데커드는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며 그 이유를 '눈 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자막에는 '눈을 보면 알지'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 대사는 그의 눈빛이 호승심이 넘쳐 오래살지 못할 거라는 추측일 수도 있지만, 넥서스 8의 모델들이 눈에 일련번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는 암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월레스에 대한 데커드의 반박 등을 보았을 때, 감독은 데커드의 정체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 하다. 설사 그의 사랑이 설계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특히나 '블레이드 러너'란 영화 안에서는 말이다.


2. k의 정체?

일단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k는 레이첼의 딸인 애나 스텔라인 박사의 복제된 남자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는 왜 LAPD에 블레이드 러너로 근무하고 있을까? K가 월레스 본사에 방문해 한 말, '월레스 회장님께 감사하다고 해 두죠.'을 떠올려 보았을 때 그는 넥서스 9이거나, 적어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K가 애나 스텔린의 복제라면 그건 말이 안된다. 애나의 생일은 2021년 6월 10일이고, 그녀가 고아원에 보내졌을 때는 아무리 넉넉잡아도 2030년 정도일 것이다. 이 때 K가 복제되었다고 치더라도 그는 넥서스 9일 수가 없다. 넥서스 9가 처음 공개된 것은 2036년이기 때문이다.


넥서스 8이 개발된 후 블랙아웃으로 레플리컨트 개발이 금지되었고, 이후 월레스가 9를 개발할 때까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어떤 레플리컨트도 생산되지 않았다. 위 근거로 따져보았을 때 K는 넥서스 9일 수 없다. 그러면 8이라는 말인데, 이것도 의문점이 있다. K가 넥서스 8이라면 넥서스 9를 상정하고 있을 기준선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도 이상하고(물론 이는 확실치 않다. 8도 기준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무엇보다도 넥서스 8이라면 그의 눈 아래에 일련번호가 있을 텐데, K는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있다면 블레이드 러너인 자신이 제일 먼저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가능성은 이렇다. 2022년 블랙아웃 사태와 2049에 나오는 레플리컨트 반란군 등을 보았을 때, 넥서스 8 세대 이후부터 레플리컨트들은 반란군, 혹은 일종의 조직을 구성한 걸로 보인다. K는 그들이 만든 특별한 레플리컨트일 것이다. 아마도 애나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특별히 디자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편에서 전투형 레플리컨트인 로이의 지식 정도를 보았을 때, 학자용으로 만들어진 레플리컨트가 있다면 타이렐이나 월레스 못지 않게 영리한 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K를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러브, 월레스, 조시 모든 사람들은 그를 넥서스 9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물론 누구도 K를 명백히 9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정체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걸로 봐서 9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 경우 어떻게든 K가 넥서스 9 사이에 흘러들어갔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 지에 대해서는 추측하기 어렵다.


다른 가능성은, K는 넥서스 9이고 애나의 기억이 최초의 두 아이 뿐 아니라 다른 리플리컨트들에게 퍼져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애나가 자신의 기억을 월레스 사에 넘긴 것이 되는데, 그녀가 과연 그런 불법적인 일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K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순점이 남는다.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document_srl=25182566&l=ko&mid=movietalk

이 글에 의하면, 스텔라인 박사의 대사에 일부 오역이 있는 모양이다. 자막에서 '예술가의 재능이 들어 있어요.'라고 한 게 사실은 '모든 예술가는 작품에 자신의 일부를 넣습니다.'이라는 주장이다. 댓글에서 번역가 황석희 씨도 어느 정도 수긍한 바, 오역이 맞는 듯 하다. 이 해석이 맞을 경우 k는 애나와 아무 접점이 없는 넥서스 9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워터마크처럼 납품하는 기억에 자신의 기억을 일부 넣은 모양이다.


3. 조이

조이는 여러모로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존재다. '가짜' 취급을 받는 레플리컨트보다도 훨씬 '가짜'스러운 것이 그녀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예고편 상에 약간의 암시가 있기는 했다. 조이와 K가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예고편, 그리고 미국 파이널 TV 스폿. 두 예고편 모두 K와 조이가 집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Was a day?" "It was a day." 분명 같은 장면임에도 불구하고(카메라 구도, 둘의 앉은 자세 등 모든 것이 똑같다.), 조이가 다른 옷을 입고 있다. 본 영화에서 그녀는 파이널 tv 스폿에 나온 의상을 입고 있다. 제작사에서 약간의 암시를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모두 조이의 차지였다. 엔딩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녀가 비를 맞는 모습, 그리고 다친 k가 거대한 조이의 홀로그램을 마주하는 모습. 그녀는 k에게 '특별함'의 상징이었다. k가 자신이 레이첼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안 후, 그녀는 거대한 기성품 조이의 홀로그램을 만난다. 그녀는 k를 '조'라고 부른다. 그가 사랑했던 조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k의 특별함은 산산히 깨진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지위가 아니라 행동이다.' 누군가 했을 법한 말이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말에 동감한다. k와 조이는 레플리컨트, 홀로그램이라는 신분 혹은 지위로서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들의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조이가 기성품이니 k와 조이의 사랑이 거짓일까? 만약 k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데커드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산조각 나기 직전의 조이가 k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 그녀의 특별함이었다면, k가 마지막에 한 행동은 그를 특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레이첼의 자식', '조'라는 이름 따위가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k가 눈을 맞는 엔딩 장면은 전작의 로이 베티가 빗 속에서 죽어가는 장면과 대칭되기도 하지만, 영화 초반에 조이가 비를 맞는 장면과도 대칭된다. 조이는 비를 맞으며 육체적으로 자유로워졌고, 살아났다. k는 눈을 맞으며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죽어간다.


4. 한글


이건 철저히 여담에 가깝긴 한데, 영화에 한글이 상당히 자주 나온다. k의 집이 처음 나올 때도 '안녕히 가세요.' 등 한국어 음성이 들리고, '독수리', '버블티', '행운'이라는 한글 간판도 많이 보인다. 특히 행운이라는 간판은 예고편에도 여럿 등장해 개봉 전부터 유명했다.


이렇게 블레이드 러너에 한글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블레이드 러너 세계관의 공용어인 '시티 스피크'가 여러 나라 말을 섞은 언어이기 때문인 듯 하다. 전작에도 한글이 적게나마 나왔다. 영화를 3번 봤는데 3번 다 한글을 따라 읽으시는 관객분이 계셨다. 앞으로는 안 그러셨으면 좋겠다.


5.애나 스텔라인 박사


가장 재미있는 점은, 레플리컨트의 자식인 애나 박사가 레플리컨트들의 기억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일이 레플리컨트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전편부터 이어져온 말이지만, 그럴듯한 기억은 레플리컨트의 경험을 풍족하게 하고 그들을 인간에 가깝게 한다.


하지만 애나는 그녀의 일 뿐아니라 존재 자체로도 특별하다. 프레이사의 말에 따르면 애나는 존재 자체가 레플리컨트에게 선물이오, 희망이다. 하지만 조시 국장이 말한 것처럼 분쟁의 씨앗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평온하고 선한 존재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특별함'은 지위가 아니라 행동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니안더 월레스, 조시 국장, 프레이사 모두 애나의 지위 혹은 신분을 이용하려 한다. 동기가 어떻든지 간에 말이다. 데커드와 k는 그녀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다. 열린 결말에 가깝긴 했지만 영화는 프레이사가 말한 레플리컨트와 인간의 전쟁보다는, 데커드와 애나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둔다.


6. 총평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과 너무 닮았지만 새롭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자신의 장기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인간성의 탐구'라는 원작 소설부터 내려오는 주제를 잃어버리지 않고 묵직하게 전달하는 영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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