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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Nov 10. 2017

게임, 놀이인가 예술인가?

게임과 예술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 할리우드의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말이다.

아케이드 상업게임 <퐁>이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난 뒤, 게임은 대중적인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다. 아타리, 닌텐도, 세가 등의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IT 기술의 발달,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으로 게임은 자신의 영향력을 대거 확대시켰다.

PONG의 선풍적인 인기는 전용 게임기를 낳을 정도였다. (출처: https://flic.kr/p/mjfrTT)

한국에서 게임이라는 장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해외의 유명 게임을 수입하거나 자체적으로 개발했으며, 90년대 후반에는 PC플랫폼을 중심으로 손노리, 소프트맥스, NC소프트, 넥슨 등 다양한 게임회사들이 등장해 <바람의 나라>, <창세기전>, <화이트데이>, <리니지> 등 기념비적인 게임을 개발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게임은 뭘까? 놀이일까? 스포츠일까? 아니면 예술일까?' 초기의 게임은, 이런 고민을 할 만큼 심도깊지 않았다. <퐁>은 두 사람이 공을 주고 받는 게임에 불과했으며,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우주선으로 외계인을 죽이는 것이 전부였다. 한참 후에 출시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같은 게임도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재미 면에서는 최고였을지 몰라도 말이다.

논의를 발전시키기 전에, 예술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예술이라 칭할 수 있고 무엇을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사전에서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Art is a diverse range of human activities in creating visual, auditory or performing artifacts (artworks), expressing the author's imaginative or technical skill, intended to be appreciated for their beauty or emotional power. (예술은 작가의 상상력 있거나 전문적인 기술을 표현하는 시각적, 청각적, 혹은 행위적 작품을 만드는 다양한 범위의 인간 활동이다.)
-위키피디아 영문, 옥스포드 영어사전

Art, also called (to distinguish it from other art forms) visual art, a visual object or experience consciously created through an expression of skill or imagination. (예술, 혹은 시각적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은, 시각적 대상이나 경험을 기술과 상상력의 표현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대백과


이 정의에 따르면, 예술이 아닌 것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여러분이 유치원 때 그린 그림도 예술이고, SNS에 적는 일상적인 글들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게임이 대중에게 고급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이다.  회화, 조소, 문학, 영화 등과 같이 말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 사용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은 '고급 문화'와 동치라고 생각해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과 영화를 비교한다. 시각매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런 듯 하다. 영화는 등장 이후 곧 예술로 인정받았지만, 게임은 지금까지도 그렇지 않다. 두 매체의 차이점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영화의 등장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글, 혹은 그림으로만 보던 가상의 세계를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반 많은 예술가, 작가, 철학자들이 영화라는 매체에 관심을 기울였고, 자연히 예술은 소위 세련된 장르로 세상에 등장했다. 1910~20년대부터 <국가의 탄생>, <메트로폴리스> 등 심도깊은 고찰을 담은 작품들이 등장했으며 영화의 권력이 미국으로 이양된 40년대 이후 <시민 케인>, <현기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위대한 영화들이 탄생했다.

SF 영화의 시금석, 메트로폴리스(1927)

반면 게임은, 그 시작이 놀이였다. 게임으로 철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초기 게임은 서사성이나 심미성 조차도 전무했다. 게임에 그럴 듯한  담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후반에나 되어서이며, 3D 그래픽 게임이 나온 것은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1990년대 후반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며 게임은 변화했다. 게이머들은 이제 게임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더 많은 이야기, 더 멋진 그래픽, 더 큰 세계 등등. 또 80년대에 게임을 즐긴 1세대 게이머들이 어른이 되면서, 좀 더 어른스러운 게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금, 게임은 그 어떤 매체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잣대가 총자본 규모이건, '고급스러움' 이건 말이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게임은 예술인가? 그렇다면 왜 그런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다른 매체와 차별되는 게임의 독특한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 무엇이 다른가?


1) 플레이어의 체험


게임과 다른 매체의 차별점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에 참여해 체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매우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는 점이다.


'체험', 이것은 게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영화를 보든, 소설을 보든, 만화를 보든, 단지 당신은 그것을 '보는' 것 뿐이다. 독자가 그 세계에 영향을 끼치거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독자를 작품으로 끌어들이려하는 메타 픽션의 경우에도 독자와 작품 사이의 본질적인 벽은 결코 넘을 수 없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어떤 단순한 행위이건 게임에서 주인공이 행하는 것은 모두 플레이어의 행동을 그 원인으로 한다. 마리오가 쿠파에게서 피치 공주를 구해오는 것이건, 소닉이 닥터 에그맨을 물리치는 일이건, <콜 오브 듀티>에서 적들을 한바탕 학살하는 일이건 간에 말이다. 그 참여와 체험을 바탕으로 게임의 서사에서 오는 교훈을 다른 

장르에 비해 '내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최근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관객, 혹은 감상자의 참여가 강조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가상현실화 하여 인터넷 사이트로 만든 예술가도 있으며, 영화에서는 4D 영화의 등장 등 관객의 직접적 경험이 중시된다. 극 예술 또한, <관객모독>과 같이 관객이 연극에 참여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의 예술은 감상자의 직접적 경험, 혹은 작품에의 참여를 강조한다.

연극 관객모독 (출처: https://flic.kr/p/612Bxo)

게임은 어떤 매체보다 절실히 감상자(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한다. 감상자는 작품을 감상하는 객체가 아니라 작품 속 주체가 되어 작품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제작자가 게임 구석구석 숨겨둔 요소, 심지어는 의도하지 않은 것들까지 찾아낸다.


다시 영화와 비교해보자. 영화에서는 미장센이라는 기법을 자주 활용한다. 화면에 소품과 여러 요소들을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미장센을 통해 어떤 상징을 나타내기도 하고, 줄거리를 암시하기도 한다. 게임에서는 체험과 연계해 이 미장센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영화였다면 결코 볼 수 없는, 화면의 사각에 놓인 소품의 배치를 찾아낼 수 있다. 표현의 다양성 측면에서 영화보다 더 큰 가능성을 지닌 것이다.


2) 광범위한 영역


두 번째 특징, 다양한 영역이다. <스타크래프트>처럼 여러 개체를 조종해 다른 사람과 대결하는 게임도 있고, <철권> 같은 격투게임도 있다. 한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처럼 가상의 대륙을 탐험하는 게임도 있으며, <심시티>처럼 도시를 만들어 운영하는 게임, 국가를 수천년 간 이끌어가는 <문명>, 말 그대로 신이 되는 게임인 <블랙 앤 화이트>,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 무뢰한이 되어볼 수 있는 <GTA 시리즈>, 그 외에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하스스톤>, <하프라이프>, <포탈>, <바이오쇼크>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게임들이 있다.


'게임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의 대부분은, 이 다양성을 놓치고 있다. 로저 이버트는 자신의 평론에서, '게임은 예술이었던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게임은 오히려 스포츠다.'라고 말했다. 한국을 중심으로 'E스포츠'라는 용어가 보편화되면서 대중적으로 게임이 스포츠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 종목 도입이 확정되었으며, 최근 한 IOC 위원은 E스포츠가 스포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롤드컵'이라 불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쉽 대회 (출처: https://flic.kr/p/dkngsZ)

물론 게임은 스포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닝일레븐>,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 오브 레전드> 등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게임은 충분히 스포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게임은 스포츠만이 아니다. <스탠리 패러블>과 같은 메타 게임, <투 더 문>과 같은 비주얼 노벨, 인간 본성의 변화를 탐구한 <토먼트>. 서사와 스토리를 중시한 이 게임들은 스포츠나 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에 가깝다. 한편, 바닷 속을 탐험하는 <ABZU>, 미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Journey> 등은 아름다운 시각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미술과 유사하다. <오리와 눈먼 숲>, <위쳐 시리즈>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예이다. 그 외에도 실제 도시, 혹은 국가 크기의 세계관을 탐험할 수 있는 <WOW>, <엘더스크롤 시리즈>, <GTA 시리즈> 등은 어떤 장르라고 말하기조차 어렵다. 이런 다양성은, 게임이 무엇이든지 될 수 있게 해준다.


게임은 예술이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내 답은, Yes다. 수백 년 전까지 예술은 캔버스와 대리석에만 있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아방가르드 운동을 통해 비디오가, 통조림이 예술이 되었고 심지어는 사람 자체가 예술이 되는 행위예술도 등장했다. 아이들 것이라 치부받던 만화는 이제 '그래픽 노블'이 되어 예술 혹은 문학으로 취급받는다. 전자기기 속 게임이 예술이 아닐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게임에 무관심한 많은 사람들이 아직 게임은 '저 드높은 가치'를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으로 심도 깊은 고찰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다. 나는 극단적 자유시장주의의 위험성을 <바이오쇼크>를 통해 배웠다. 그리고 공포게임 <SOMA>보다 존재론을 와닿게 설명해준 소설, 혹은 영화를 접한 적은 없다. 사회를 이끄는 기성세대가 게임에 대해 관심이 없을 뿐이다.


철학적 주제를 다룬 호러게임, SOMA (출처: https://flic.kr/p/WV6ktV)

게임의 가능성은 무궁하다. 그리고 최근 등장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기술은 게임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게임 안에 내가 들어갈 수도, 게임이 현실에 등장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게임기, 컴퓨터라는 입력매체를 거의 무너뜨리고, 이른바 게임과 현실이 접촉하는 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된다면, 더 많은 예술가들이 게임 산업에 뛰어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게임이 예술이라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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