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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May 30. 2019

심판(1999, 박찬욱)


한국의 어두운 사건을 다루는 뉴스들이 흘러간다. 백화점의 붕괴, 세기말의 사이비종교, 기상이변. 장의사는 신원불명 여인의 시체를 꺼내주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신원불명의 시체를 자기 자식이라고 말하는 부부가 기자, 공무원과 함께 등장한다. 아내는 시체를 보며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남편은 묵묵히 그 뒷편에 서 있다. 그런데 갑자기 장의사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기자와 카메라맨을 내보낸다.


장의사는 시신이 자신의 딸이라 주장한다. 시신은 많이 훼손되었기에 옛날 사진만으로는 누구의 딸인지 정확히 구별해낼 수 없다. 장의사가 내 딸에겐 오른 다리에 큰 점이 있다고 하였으나, 시신의 오른 다리는 이미 잘린 상태. 기자가 질문을 가장한 심리전을 던져보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시신의 신원은 미궁에 빠진다.



부부, 공무원, 장의사. 네 사람은 장의사가 가지고 있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던 중 공무원이 질문을 한다. 왜 두 측 모두 죽은 사람을 본인의 딸이라고 주장하냐고. 본인의 딸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좋지 않느냐고. 세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 때 기자가 한 여인과 함께 돌아온다. 여자는 자신이 바로 부부의 진짜 딸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은 어린 시절 병에 걸린 자신을 버렸다고 말한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지진이 일어난다. 장의사는 시신을, 부부는 딸이라 주장하던 여자를 껴안는다. 기자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책상 아래에 숨는다. 그리고 기자가 책상에서 빠져나오며 깨뜨린 전구 탓에, 장의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감전사해버리고 만다.



 90년대의 한국은 혼란스러웠다. 긴 군사독재 끝에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삼풍 백화점 성수 대교 등 대형 건물들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조선총독부 철거 및 금융실명제와 같은 많은 변혁이 일었다. 그리고 1997년엔 IMF 금융위기마저 닥쳤다.


이러한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입체적 성격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선과 악이 혼재된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심판'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감독은 명백한 악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벌을 내린다.


솔로몬의 판결


지진은 마치 솔로몬의 판결처럼 내려친다. 하지만 "그 아이를 죽이지 마시고 그냥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허나 지진은 각 부모에게 올바른 딸을 돌려준다. 이는 아이를 반으로 가르는 것에 대한 영화적 연출로 보이기도 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 십계명 중 하나다. 1999년, 세기말, 혼란한 사회. 이런 시기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범죄는 사기다. 감독은 징벌적인 영화를 통해 당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모두 심판해버림으로써 말이다. (일부 등장인물은 거짓말을 했는지 모호한 부분이 있으나, 필자는 맥락상 장의사를 제외한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고 본다.)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와 우상숭배자들을 징벌한 모세처럼.


현대에는 더 이상 솔로몬이 없다. 솔로몬의 역할을 해야하는 공무원(정부)마저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일을 진행하려 하고, 혹여나 자신에게 책임이 올까 두려워한다. 거짓말하는 창부가 솔로몬보다 더 영리한 시대다. 등장인물들의 감전사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어딘가 서글픈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신이 아니면 더 이상 솔로몬을 바랄 수 없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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