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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Jun 01. 2019

두서도 주제도 없는 기생충 리뷰 1

1. 기택은 실패했다. 치킨 사업에, 카스텔라 사업에 실패했고 지금은 직업마저 없이 집에서 지낸다. 겨우 피자 박스를 접으면서. 그마저도 유튜브를 보며 따라하다가 피자집 사장에게 불량이라는 얘기를 듣고야 만다. 가족들의 눈총은 덤이다.


그의 '무계획론'은 처절하다. 계획을 하면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마 그가 지금껏 삶에 도전하고 계획하며 얻은 결론일 것이다. 감상자에 따라 김기택 개인의 문제로 볼 수도,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2. 반면에 기우와 기정에게는 계획이 있다.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기우는 위조로 박 사장 네에 들어가 기정을 미술 교사로 데려올 계획을 세운다. 기정은 재학증명서를 위조하고 다른 가족까지 모두 박 사장 네에 취업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계획은 놀랍도록 착착 이루어진다. 어쩌면 기택이 씁쓸함을 느낄 정도로.


3. 하지만 일이 한 번 틀어지자, 아무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박 사장 네는 캠프에서 갑자기 돌아오고, 박 사장 부부는 기택 가족이 숨어있던 거실에서 잠을 청한다. 간신이 빠져나간 후, 기택은 기우에게 무계획론을 설파하지만 기정과 기우는 여전히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우는 수석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간다. 둘을 죽일 생각이었을까? 아마 그런 듯하다. 반면 기정은 그들에게 먹을 걸 챙겨주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일은 많이 틀어진 뒤였다. 문광은 죽었고, 그 남편은 복수를 위해 이를 갈고 있었다. 이미 글러먹은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려 아둥바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4. 기택도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문광의 남편에게 그렇게도 일갈을 했을 거다. "넌 계획도 없지?!" 라는 일갈. 그 자기부정이 너무나 처절하고도 슬펐다. 그 슬픔은 아마 기택 뒤에 넓게 드리워져 있는 실패의 무덤 때문이리라.


무계획,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기택은 극복할 수 없었다. 수많은 실패는 그에게서 진취성을 앗아가 버렸다. 그는 결국 반지하에서 지하실로 내려간다. 자의로, 아니면 타의로? 애매하다. 불이 켜지면 숨어야하는 바퀴벌레같은, 기택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한 삶을 살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 자신도 자신의 종착점이 이런 삶이 될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내의 바퀴벌레 같다는 말에 그렇게도 화를 낸 것이겠지.


5. 기우가 영화 내내 반복하는 말이 있다. '상징적이네.' 뭐가 그렇게 상징적이라는 걸까? 영화가 상징적이라는 말일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우는 뭐가 상징적인지 모른다. 다송이의 그림이 누굴 그린 건지도 모른다. 기정이는 미술 치료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그저 입담으로 어리숙한 연교를 사로잡았을 뿐이다. 기택이네 가족은 예술과 5억 광년은 떨어져 있다.


'저 사람들이 예술이 뭔지나 알겠어?' 기택이네는 최하층에 거주하는 문광의 남편에게까지 이런 말을 듣는다. 기우가 하는 상징적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기택이네는 가짜 문서, 거짓말, 거짓 행동으로 상류층에 편입되려 했지만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진다. 떨어지기 직전의 벼랑에서, 기우는 다혜와 키스를 나누고 창 밖의 부르주아들을 바라본다. 그 키스는 다혜와 기우를 합일시키는 게 아니라, 되려 끝없는 장벽을 체감시켜준다.


6. 기우는 웃는다. 경찰같지 않은 경찰 앞에서도, 의사같지 않은 의사 앞에서도, 죽은 것 같지 않은 동생 앞에서도. 더 이상 길이 없다는 초연의 웃음, 아니면 그것답지 않은 그것들을 향한 조소. 자신의 계획이 죄다 틀어지는 걸 본 기우 역시 기택처럼 무계획론자가 될 듯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때, 지하실에서의 SOS 신호를 받아낸다.


7. 기우에게는 계획이 생겼다. 많은 돈을 버는 것. 많은 돈을 벌어 박 사장 네 저택을 사는 것. 너무나 멀고 막연한 꿈이다. 계획을 제대로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 계획이 성공할리 없다는 것, 기우도 기택도 충숙도 알 것이다. 하지만 생(生)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누군가 우리를 죽이려 들어도, 계획이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도, 사회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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