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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Jul 10. 2017

옥자

돈 다발 속에서 자연을 꿈꾸다.

<옥자>의 내용은 한 줄로도 요약이 가능하다. '대기업의 횡포, 자본주의, 비인간적인 공장제 도축을 비판하는 영화.' 하지만 감독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전작들에 비해 세심하고 현실적으로 주제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과 색깔은 잃지 않은 영화, 그것이 <옥자>다


전통적인 선악 구도를 무너뜨린 점에서 감독의 세심함이 잘 드러난다. 상술한 주제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공모받는다고 해 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덕 자본가가 등장하고, 동물해방전선의 인물들이 영웅적으로 옥자를 구해내 미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이야기를 구상할 것이다. 전형적이며 비현실적이다.


동물해방전선의 리더, 제이 (출처: 네이버 영화)


옥자에서 가장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들은, 그 누구도 아닌 동물해방전선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분명 옳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들은 미자를 속였고(케이의 돌발행동 때문이었지만) 옥자를 풀어주기 위해 벌였던 난동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그나마 친대중적, 친환경적이었던 루시 미란도가 미란도 사의 CEO에서 물러나고 극단적인 자본가이자 루시의 쌍둥이 언니인 낸시 미란도가 다시 실권을 잡게 된 것이다.


결국 동물해방전선이 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잔인한 도축 장면을 담은 몰래카메라를 대중에게 공개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들의 난동은 미자와 옥자를 함께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루시를 몰아내고 낸시를 CEO에 오르게 해 옥자를 죽을 뻔 하게 만들었다.

미자 역 안서현 (출처 네이버 영화)

결국 옥자를 구해낸 것은 할아버지가 미자에게 준 '황금 돼지'였다. 미자에게서 순금으로 된 돼지를 받은 낸시는, 놀라울 정도로 쿨하게 미자와 옥자를 집으로 돌려보내준다. 미자를 첫 번째 고객이라고 까지 부르면서 말이다. 이런 결말은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감독의 씁쓸한 독백일지도 모른다.


선악은 없다. 자본주의가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옳은 의도가 언제나 옳은 결말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수 만 마리에 달하는 슈퍼돼지들은 풀려나지 못했고 옥자와 미자 만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동물해방전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다. 오히려 과정 상의 희생은 더욱 많았다. 새드한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옥자는 새끼 슈퍼돼지 한 마리를 물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영화 초반, 옥자와 미자가 물고기를 잡는 장면에서 미자는 새끼 물고기를 풀어준다. 새끼는 희망 그 자체이면서 우리가 보살펴야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후손을 통해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그 후손들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현 세대가 자원을 고갈시켜서는 안 된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을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순응할 지라도, 미래와 후손을 위해서 우리들은 자본에 침식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는 동물보호협회와 같은 환경단체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쿠키영상은 그것을 암시하는 듯 하다. 설사 실패할 지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지라도 옳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려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와 달리 옥자는 혁명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현실을 해쳐나가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 영화다. 옥자를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게 키웠냐는 미란도 사 직원의 질문에, 미자의 할아버지인 주희봉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산에다 풀어논 거여~.

할아버지 주희봉 역 변희봉 (출처 네이버 영화)


GMO로 만들어진 돼지는 자연 속에서 살 때 가장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처럼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장하고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좀 더 자연다움, 인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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