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잃은 위기에 처한 세 소녀들이 있다. 하나, 유미, 유진. 부모님의 사이가 나빠져 이혼할 위기에 처한 하나네 가족, 그리고 부모님 사정상 집을 내놓고 이사를 가야하는 유미와 유진네 가족. 세 소녀는 정말이지 아이들 다운 방법으로 집을 지키려고 한다. 하나는 가족 여행을 가서 부모님의 사이를 좋게 만들려 하고, 유미와 유진은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더럽고 환경이 좋지 못한 집이라는 걸 어필해서 집이 팔리지 않도록 한다.
세 소녀는 상자로 집을 만든다. 유미네 집 앞 쓰레기장에 있는 상자와 하나가 집에서 가져온, 아버지의 스마트폰을 숨겨뒀던 상자로. 상자집은 아이들의 희망이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집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 하지만 소녀들의 노력도 무색하게 가족여행은 취소되고 부모님을 이혼을 결정하게 되고, 유미의 집은 팔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아버지가 없는 편모가정에서 자라온 내게 <우리집>은 공감이 가는 영화였다. 영화의 아이들과 내 상황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싸움으로 생기는 고통, '우리집'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댈 사람 없이 아이들끼리 집을 보고 있는 상황, 그 모든 것들이 내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이 영화가 애매한 위로만을 주는 영화가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집>은 아이들의 눈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해 보여준다. 마냥 희망차지만도, 혹은 마냥 절망스럽지도 않다. 아이들이 우리집을 지키는 과정,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현실, 부숴지는 상자집,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아이들의 미소.
어른이 된 사람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하는 것도,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정말 어렵다. 하지만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은 그걸 꽤 성공적으로 해냈다. 특히나 아이들의 대사가 정말 아이들 답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것이었을 듯하다. 관객들,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달라는 것. 인간은 본연이 이기적이라 항상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런 습관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한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데 하물며 아이와 어른의 관계에서는 어떻겠는가. 아이 대 어른의 관계에서 이런 실수가 더욱 위험한 이유는,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상처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생님, 부모님, 그리고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영화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무시한다. 심지어 그나마 비슷한 나이인 하나의 오빠, 찬까지도 동생에게 '아무 것도 모른다' 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건 오히려 어른들이다. 아이들의 희망, 꿈, 모두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 <우리집>은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어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