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2019)

by lure
ad.jpg AD ASTRA(별을 향해서)

간단히 정리하면,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영화다. 가까운 미래, 우주인이자 군인인 로이 맥브라이드는 십 수년 전 해왕성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가 아직 거기에 살아있다는 말을 듣는다. 군은 지구에 나타나는 이상현상 '써지'가 클리포드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 로이를 화성의 통신소로 보내 클리포드와 연락을 취해보려 한다.


일종의 로드 무비라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특히 <지옥의 묵시록>이 떠오른다. 군인이 몇몇 부하를 데리고 미친 사람을 찾아 떠나고, 결국 동료들은 모두 죽고, 홀로 목표에 도달해 원인을 제거하고 돌아온다는 점에서.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오히려 <지옥의 묵시록>과 반대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8ievucr7OmNSvfn0gzK3xPImGMY.jpg 지옥의 묵시록

<지옥의 묵시록>이 전쟁과 사회, 인류라는 거시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라면, <애드 아스트라>는 배경이 우주로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이 맥브라이드라는 개인에 돋보기를 두고 있다. 영화는 로이의 독백으로 시작해 로이의 독백으로 끝나는 수미 상관 구조이며, 관객은 그 두 장면을 비교하며 로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체감하게 된다.


로이의 독백 나레이션을 영화에 삽입한 이유도 아마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거시적 세계보다는 로이의 심정이 더 중요한 영화니까. <애드 아스트라>에서 거시적인 것들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아주 거칠게 도식화하자면 우주=아버지=기독교(신)=우주사령부=이성이고, 그 반대가 현실(세상)=아내=인간=가족=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로이 맥브라이드

로이는 그 두 세계에 끼인 존재다. 영화 초반, 맥박을 언급하며 로이가 얼마나 자기 통제적이고 이성적인지 묘사한다. 그 때까지의 로이는 아버지를 닮으려고 하는 존재다. 하지만 극이 진행됨에 따라 로이의 심경은 점차 변한다. 아버지가 한 짓을 보며 그가 얼마나 망가져 있었는지, 그리고 곧 자신이 얼마나 망가져 있었는지 깨닫는다. 영화에서는 다시 맥박을 언급하며 그가 이성적인 인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윌레드는 커츠를 죽인다. 로이는 그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주와 외계인에 대한 광기와 집착으로 가득찬 그에게 '그렇더라도 저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리포드는 수 십년의 세월 속에서, 이미 뒤틀린 존재였다. 그는 로이의 사랑을 받아드릴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집으로의 귀환을 거부하고 자신이 동경하던 광활한 우주 속으로 스스로 뛰어든다.


233227-1568909447.jpg 클리포드 맥브라이드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 고개를 꼿꼿히 들고 저 먼 곳에 있는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이었다. 클리포드는 고개를 떨구고 주위를 둘러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아마 그 역시 영화에서의 로이처럼 삶에 대해 번뇌하고 갈등하던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주변을 둘러 보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클리포드의 죽음은 단순히 광기에 가득찬 과학자의 자살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로이와 같은 삶을 살아온 클리포드, 그리고 그 끝이 이렇게 비극적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한 자기 희생적인 경고라는 생각이 든다.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커츠의 죽음으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전쟁과 혼란은 계속되고, 윌레드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원시적인 사회는 지속된다.


하지만 클리포드의 죽음은 많은 걸 바꾼다. 써지 현상이 끝나고, 아들도 변하게 했다. 로이는 클리포드의 자살이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임을 안다. 그렇기에 그는 슬퍼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고개를 내리고 주변을, 현실을 둘러본다. 헤어졌던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다. 예전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안정이 아닌 진짜 안정을, 8.2시간을 자는 것이 아닌 충분한 잠을 자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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