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루, 살다(1952)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by l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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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시민과 과장 와타나베는 죽음에 직면한다. 위암이라는 병으로 받아든 6개월 시한부 인생. 30년간 기계처럼 공무원으로 일해왔던 그는 이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술과 빠칭코 같은 일시적인 쾌락에 빠져보기도 하고 여자와의 데이트를 하며 죽음을 잊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는 사이 아들 미츠오와의 관계는 점점 틀어진다.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돈을 헤프게 써대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좌절에 빠진 그는 자기 부서에 있었던 젊은 여직원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다,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는다. 자기가 죽기 전에 해야만 할 일을 말이다.


<이키루>를 단순히 한 남자의 회환과 깨달음에 대한 영화만이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영화 시작부터 일본 관료제의 병폐에 대해 짚고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 정말로 감탄스러운 부분은, 한 늙은 남자의 말년과 관료제와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다른 차원의 두 메시지가 전혀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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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와타나베는 한 남자에게, 의사가 '가벼운 위 궤양이고, 수술은 필요없고 약만 드시면 된다, 식사도 굳이 가릴 거 없다.' 는 이야기를 하면 오래 잡아야 1년 정도 남은 위암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는 단순히 와타나베라는 한 남자에게 내리는 시한부 판정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 내린 시한부 판정이다.


전후 일본에는 패배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사람들은 생산적인 일을 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가 와타나베에게 말했듯, 서로 '괜찮을 거다' 라고 말하며 희망없는 희망을 주고 받고 있었다.


아키라 감독은 이런 일본에, '그것이 과연 사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위 말해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이키루(살다)는 의미에 부합하냐는 것이다.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활기에 차 여직원을 보고 와타나베는 그것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공원을 짓는 일에 착수한다. 생의 마지막에 하는 일이 생명으로 가득찬 공간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공원이 완성된 후, 와타나베는 자신이 만든 공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장례식 자리에서 그의 동료와 상관들이 그와 공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처음에는 와타나베의 공을 인정하지 않으려다가, 결국 그가 공원을 만들었다는 걸 인정하고 그에게서 배워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곧 모두들 안일한 일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야기하는 주제는 상당히 단순한 반면, 내 마음 속에 들어왔을 때는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건 아마 영화의 메시지가 현재까지도 통용되기 때문이리라.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삶'을 위한 삶인가? 우리 사회는 지금 제대로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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