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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Dec 05. 2019

나이브스 아웃(2019)

추리극, 혹은 정치극?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 할런 톰레이(크리스토퍼 플러머 분)이 자신의 저택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하려고 하지만 모종의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분)은 가족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저택과 가족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은 라이언 존슨이 돌아왔다. 예스러운, 아가사 크리스티적인 향기가 물씬 풍기는 현대 클래식 추리물로. 사실 감독보다도 눈에 띄는 건 엄청나게 빵빵한 출연진이다.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 <트루 라이즈>의 제이미 리 커티스, <셰이프 오브 워터> 마이클 섀넌, <유전>의 토니 콜렛,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아나 드 아르마스, 그리고 살해당한 작가 역엔 대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까지.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나이브스 아웃>은 여러모로 굉장히 잘 만든, 웰메이드 영화다. 저택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뿜어 전통 추리물의 느낌을 주며, 가족 구성원들은 개성이 충만하며 배우의 연기도 당연히 뛰어나다. 시나리오도 원작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탄탄하다. 하지만 필자는 장점만 늘어놓기보단,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을 짚어보고 싶다. <나이브스 아웃>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라는 것이다.


올해는 유독 빈부격차에 대해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왔고, 관심도 많이 받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같은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애틀랜틱스>,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자 여러모로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온 코믹스 영화 <조커>까지.


나이브스 아웃의 라이언 존슨 감독


<나이브스 아웃>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추리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열한 영화들 못지 않게 직설적이다. 백인 부유층의 위선, 과도한 자국민 중심주의 등에 대해 라이언 감독은 선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가족들은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를 아낀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녀의 국적도 기억하지 못하며(가족이 착각했던 국적만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브라질 등이다), 할런의 장례식에도 초대하지 않았고, 리차드는 불법체류자를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마르타에게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고 할 정도로 배려가 없는 인물이다. 가족 구성원 중 마르타와 친구처럼 지냈던 매그 역시 후반부에 그녀를 배신하고 만다.


그러므로 <나이브스 아웃>을 정치 영화이며, 빈부격차나 계급 갈등에 대한 영화라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가 마찬가지로 빈부에 대한 영화인 <기생충>과 닮은 점이 상당히 많다는 부분이다. 대저택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부유층과 빈민층 사이의 오묘한 관계성, 상당히 직관적인 수직적 이미지,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한 갈등의 종결 등.


하지만 <기생충>과 달리, <나이브스 아웃>은 상당히 이분법적인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기생충>에서는 선악이 모호한 반면, <나이브스 아웃>은 감독이 지정해둔 선악이 상당히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생충>은 다소 비현실적인 면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나이브스 아웃>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 결말 역시 너무 교훈적이고 올바른 엔딩인 탓에, 약간은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은, 이런 건 다 잊어도 될 정도로 재미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론 라이언 존슨 감독이 앞으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같은 블록버스터보다는 이런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영화를 계속 찍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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