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re Dec 22. 2019

나만의 2010년대 최고의 영화

2019년 12월, 21세기의 한 Decade가 다시 끝나간다. 그에 따라 많은 국내외 많은 매체에서 10년대 최고의 영화를 꼽아내고 있다. 필자는 딱히 그들만큼의 전문성도 저명성도 없지만 10년이 흘러가는 지금, 개인적인 기념의 의미에서라도 10년대 최고의 영화를 꼽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게 봤던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서, 혹은 공감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몇몇 영화만을 뽑아내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영화라는 게 줄을 세워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게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개인적으로 애정있는 영화 10편을 짧은 글과 함께 소개한다.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게 개봉일 순이다.


1. 시(2010)



죄와 욕망, 그리고 병과 고통 사이에서 시를 쓰고 싶어하는 할머니 미자에 대한 이야기, <시>다. 세상의 악함 사이에서 어떻게든 아름다움을 발견해 시를 쓰려하는 그녀를 보면, 절로 마음이 먹먹해진다. 언론에선 '한국적', '한국의 미' 라는 표현을 많이들 쓴다. 필자는 <시>야 말로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슬픔을 잘 표현한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 블랙 스완(2010)



배우 나탈리 포트만과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대표작인 <블랙 스완>. 한 발레리나가 심리적으로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영상과 음악을 통해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퍼펙트 블루>와의 유사점이 자주 지적되지만 느낌은 꽤나 다르다. <퍼펙트 블루>가 세기말적 감성으로 인간의 심리와 사회상을 표현했다면 <블랙 스완>은 음악과 약간은 사이코적인 연출, 그리고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빛난 작품이다.


3.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2013)



필자는 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그렇게 영화를 감상했고, 그 내용물은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단순한 하이틴 청춘물이 아닌, 인간의 고뇌와 성장을 다룬 아주 심도깊은 영화였다. 그러면서도 실제 고등학교를 재현한 듯한 생생한 각본과 연출을 보여주며, 영화가 너무 무거워지지만은 않게 훌륭하게 무게 조절을 해냈다.


4. 엑스 마키나(2015)



<엑스 마키나>는 과학적 논쟁이자 SF 장르에서 오랫동안 얘깃거리가 되어 왔던 튜링 테스트를 다룬 영화다.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픽션은 수도 없이 많으나, <엑스 마키나>는 필자에게 상당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바깥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관객에게 신비감과 두려움을 자아내며, 로봇과 소품의 디자인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유선형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가득 선사한다.


5. 빅쇼트(2015)



한국에서는 <빅쇼트>와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한국인을 주제로 한 <빅쇼트>가 개봉하려면, 너무나 많은 논란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법적으로도 여론에서도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애정이 가는 영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루면서도, 코미디 작가 출신의 감독답게 유머러스함 역시 놓치지 않는다. 대단한 네임밸류를 가진 배우들이 떼로 나와 연기를 보여주는 건 덤이다.


6. 퍼스널 쇼퍼(2016)



<퍼스널 쇼퍼>는 특이한 영화다. 영혼과의 교감, 심령이라는 약간은 컬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소위 말하는 영화의 '때깔'이 굉장히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퍼스널 쇼퍼>의 장점은 비단 그것 뿐아니다. 유명인의 그림자와 같은 퍼스널 쇼퍼 '모린', 그리고 그녀가 교감하는 오빠의 영혼. 다양한 소재를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인간의 집착, 욕망,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7.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애정하는 영화다.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를 보기 전부터 원작 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와 저자 필립 딕의 열혈팬이었기에 더더욱.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영화에서 <컨택트>, <시카리오> 등에서 보여준 느린 템포와 예술적인 컷 연출이라는 자신의 장점을 SF적 감성에 완전히 녹여내는데 성공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자신만의 장점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전작 <블레이드 러너>의 정신과 주제를 훌륭히 계승한, 그야말로 완벽한 후속작이다.


8. 팬텀 스레드(2017)



폴 토마스 앤더슨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감독이다.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그 외의 모든 작품에서 그는 완성도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정말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특히 <팬텀 스레드>는 그의 10년대 이후 필모그래피 중 최고로 뽑힐 만한 작품이다.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 거기서 말미암는 아름다움과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9. 지구 최후의 밤(2018)



중국에서의 사기 마케팅으로 유명한, 비간 감독의 <지구 최후의 밤>이다. 중국에서 2018년 12월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이 영화를 보며 키스씬에서 연인과 키스를 하면 새해 첫키스를 할 수 있다.' 라고 중국에서 홍보했고, 그 사기 마케팅 한 번으로 손익분기를 훨씬 넘는 이득을 챙긴 걸로 유명하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구 최후의 밤>은 절대 그런 달달하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템포가 아주 느리고 서사가 모호한 예술 영화에 가깝다. 굳이 비유하자면 중화권 예술 영화의 감성이 많이 들어간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비간 감독은 <지구 최후의 밤>을 통해 다양한 감독의 장점을 혼합해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10. 기생충(2019)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올해 최고 화제작 중 하나인 <기생충>이다. 칸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각종 국내외 시상식을 휩쓸었고,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뿐 아니라 감독상과 작품상 노미네이트까지 노리고 있다. 빈부격차에서 발생하는 묘한 관계성을 다룬 <기생충>은, 빈자를 선하고 부자를 악하게 묘사하는 전통적인 빈부격차의 영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현실에서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듯, <기생충>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 어딘가에 기생해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반영한 봉준호 감독의 냉소가 담긴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며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가 바로 <기생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브스 아웃(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