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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Jan 29. 2020

지진새(2019)

지진새

일본에서 번역일을 하는 루시(알리시아 비칸데르 분)는 친구인 릴리(라일리 키오 분)가 실종된 건으로 조사를 받는다. 그리고 루시는 경찰 앞에서 그녀와 릴리, 그리고 남자친구 테이지(코바야시 나오키 분) 사이에서 있었던 일과 기묘한 관계에 대해 진술하기 시작한다.


테이지는 루시가 '간장 스타일' 이라고 말한 것처럼, 지극히 동양적이다. 아니, 서양인이 보는 이상향적인 동양 남자라고 할까. 그는 극히 동양적인 페이스에 어딘가 모를 신비로움을 갖고 있으며,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다. 반면 루시의 친구인 릴리는 지극히 서양인이다. 신비로움에 끌려 일본에 왔지만 일본어는 거의 하지도 못해 집 구하는 것부터 루시가 도와야했다. 외모 역시 금발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서양 여자의 모습이다.


두 조연이 확실한 극단에 치우친 반면, 주인공 루시는 회색분자다. 외모부터 그렇다. 스웨덴 출신이나 피부는 라틴계라 생각될 정도로 까무잡잡하고 머리도 검으며, 의상도 역시 화려하게 입고 다니는 릴리나 예술가라는 느낌이 드는 테이지와 달리 평범하고 수수하다. 때로는 일본 전통 의상을 입어보기도 한다.

테이지와 루시

그녀는 고국에서, 자기를 보는 따가운 시선을 피해 도피적으로 일본에 왔다. 몇 년을 일본에서 지낸 지금의 그녀에게는 스웨덴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없고 외모만 제외하면 일본에 동화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녀가 친구 밥이 아닌 테이지에게 끌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일본인으로, 일본인 애인과 일본에 살기 위해.


그와 만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릴리가 루시의 삶 깊숙히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두 세계가 루시를 중심으로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준건 그가 처음이야.' 루시가 테이지를 두고 한 말이다. 사실 그녀도 테이지가, 그리고 일본이 그녀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죽음을 불러오는 아이라고 비난 받았을 고국 스웨덴(정확히 영화상에서 묘사되지는 않지만)에서 더 멀어지고 전혀 다른 세계에 동화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일 뿐이다.

릴리와 루시

이런 식으로 영화를 관찰한다면, 루시와 릴리 사이의 동성애적 묘사는 아마 그녀의 고향에 대한 잠재적 그리움을 나타낼 것이다. 루시는 잠결에, 또는 꿈에서 릴리와 키스를 하면서도 그녀를 불편해하며 밀어내려 한다. 고향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남아있는 것이다. 


루시, 릴리, 테이지 세 사람이 자주 만나면서 릴리와 테이지는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루시에게 단순히 사랑을 뺏긴다는 의미가 아닌, 두 편견적인 인물, 혹은 세계가 결합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회색분자인 그녀는 자연히 소외당해 버린다. 그렇기에 둘의 사랑은 루시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루시가 아닌 사람, 그러니까 바람이 난 당사자인 릴리와 테이지의 입장에선 사랑은 사랑이고,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둘에게 사랑은 루시에게처럼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자기 허영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랑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아니면 그저 말초적 감각을 위한 걸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잘잘못을 떠나 둘은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다.

루시

루시는 미신을 믿지 않는 척 하지만 가장 미신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진이 일어나면 지저귀는 지진새과 같이 죽음을 불러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지난 생애동안 지진새라는 틀 안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왔다. 처음엔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몰라.'가 점점 시간이 지나며 '나 때문이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신적이면서도 지극히 편견적인 인간인 것이다.


실제로 루시는 릴리와 테이지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편견을 많이 갖고 있다. 릴리를 처음 봤을 때 루시는 그녀를 두고 "난 '저런 애' 싫다"라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 테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그는 아마 이럴 걸?"이라는 식으로 지레짐작하고 그녀 자신의 생각대로 말한다. 어쩌면 영화에 묘사된 릴리와 테이지의 극단적인 외모조차도 루시의 편견적인 시점을 재현한 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지진새>가 굉장히 상징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연출 또한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루시의 심리를 잘 반영한 수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말은 상당히 아쉽다. 다른 것이 아니라, 마지막 대화를 통해 영화를 보고 떠오를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하나로 귀결시켜 버렸다는 점에서다. 결말에서 우리는 그저 그녀가 과거의 아픔을 위로받고 극복해나갈 가능성을 보았을 뿐, 그 이상 그녀가 어떻게 변화하고 세상을 달리 볼진 알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영화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으며 (평론가나 대중의 평가는 어찌되었건)현재까지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손에 꼽을 만큼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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