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신체를 대체하는 증강기술이 일상화된 사회, 주인공 아담 젠슨은 증강기 제조와 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사리프 산업의 보안 경비 팀장이다. 증강기술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순수주의자들의 갈등이 깊어갈 무렵, 사리프 산업에 한 무리의 테러리스트가 침입한다. 아담 젠슨은 그들을 막기 위해 분투하나 결국 큰 중상을 입고 그의 애인인 매건 리드를 비롯해 연구원들은 살해당하고 만다. 6개월 후, 각종 증강기를 달고 다시 나타난 아담 젠슨은 사리프 산업을 향한 테러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데이어스 엑스: 휴먼 레볼루션>은 2011년 발매된 SF, 잠입 FPS 게임이다. 전작으로는 <데이어스 엑스>, <데이어스 엑스: 인비지블 워>가 있고 후속작으로는 <데이어스 엑스: 맨카인드 디바이디드>가 있다. 필자는 다른 작품들은 전혀 해보지 않은 채 이 작품을 접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미션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적을 몰살시키면서 갈 수도, 잠재우거나 기절, 혹은 아예 은신해서 적에게는 손도 안 대고 지나갈 수도 있다. 길을 찾는 것도 해킹을 통해 잠긴 문을 열 수도 있고, 환기구를 타고 갈 수도 있으며 무거운 물건을 옮겨 길을 만들거나 물건을 쌓아 높은 곳에 오르는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물론 모두 죽이는 플레이를 한다고 해서 람보식 플레이가 가능한 건 절대 아니다. 기본적으로 잠입 게임을 지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의 내구력은, 비슷하게 잠입과 엄폐를 기본으로 하는 슈팅 게임인 <매스 이펙트>나 <스펙 옵스 더라인> 같은 게임보다도 훨씬 약하다. 신체 내구력을 강화하는 증강기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깡패 1 보다 아담 젠슨이 더 약한 수준이다.
SF/펑크 장르로 게임을 평가하자면, 다른 작품들 보다 약간 매력이 덜한 감이 있다. 작품의 배경 자체도 현대에 가까운 근미래이며 전반적인 게임 디자인도 미래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현대적이다. 혹은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복고적, 중세적이기도 하다(여성 캐릭터들의 의상 디자인이 특히나 그렇다). 증강기만 제외하면 말이다. 본젹적인 사이버펑크의 매력을 가진 <시스템쇼크>, 미려한 디젤/스팀펑크 디자인을 자랑하는 <바이오쇼크>에 비하면 약간 심심하긴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 흐름이 촉진될 것으로 보이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근미래나 사이버펑크를 다룬 작품이 현실화 될지도 모르는 시국에, 다양한 시대가 중첩된 듯한 게임은 묘한 느낌을 준다.
<데이어스 엑스>는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세계가 아주 넓지는 않다. 비유하자면 <어쌔신 크리드>와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스토리 진행에 따라 지역이 바뀌기도 하는 부분이 그렇다.
게임의 주요 장소, 허브 월드라 할 만한 지역은 디트로이트와 상하이 헝샤 두 군데다. 두 군데인 것이 확실히 적기는 하지만 게임 플레이 중에는 탐험거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두 지역 모두 많은 지구로 나누어져 있으며 도심 내에서도 다양한 상호작용을 목격할 수 있다.
서브 퀘스트의 경우, 팩션 퀘스트 같은 큰 줄기의 퀘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말 그대로 메인퀘스트 중 곁다리 정도의 이야기가 전부고, 볼륨도 크지 않다. 이 부분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의 떡밥이 서브 퀘스트에 그럴 듯하게 엮여 있는 것은 흥미롭다. 또한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죽이거나 살린 인물이 서브퀘스트나 유용한 정보를 주는 것 역시 플레이어의 선택에 유의미를 느끼게 한다.
메인 스토리나 엔딩 등에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반영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최근 게임들은 너무 플레이어의 행동을 스토리에 반영하려 한다. "너는 이러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맞아야해"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2회차를 강요하는 것 밖에 안 된다. 물론 직접적인 선택이 게임에 반영되는 건 상관없다. 누군가를 죽였기에 그 사람으로부터 혜택을 못 받는다던가, 내가 증강기를 많이 설치했기에 해킹에 취약해진다거나 하는 것 등.
하지만 모호한 선택이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필자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게임인 <디스아너드>가 특히 그렇다. 이런 게임은 선택의 문제라지만 사실상 불살을 강요한다. '게임의 인물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 과몰입하는 필자같은 게이머들은 꼼짝없이 불살을 할 수 밖에 없다. 현실은 모호한 인과의 연속인 것이 당연하지만, 필자는 현실에서 느끼는 그런 불쾌감을 굳이 게임에서도 느끼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데이어스 엑스>가 더욱 좋다. 이 게임은 내가 적을 다 죽이면서 진행하든, 은신해서 잠복하든 스토리에 영향은 크게 미치지 않는다. 주인공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이나 이야기가 달라질 뿐이다. 명확한 선택의 결과만 반영하는 게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 엔딩 직전에 순수주의자의 의견을 들었다면 그 의견을 반영한 엔딩을 선택할 수 있고,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스토리는 권력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물론 사이버펑크 작품 답게 인간성에 대한 고찰도 없는 건 아니나, 그건 부수적인 요소다. 과학 권력, 기술 권력, 정치 권력, 정보 권력, 무력에 의한 권력, 다양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데이어스 엑스>에는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힘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며 상당히 현실적인 의미를 남긴다.
그 중, sf 답게 과학과 기술 권력이 주요 소재다. 이 문제는 현 시점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미 사회계층의 지표는 자본에서 정보, 기술, 과학으로 옮아가고 있다. 기술 권력 독점에 대한 문제는 유발 하라리 같은 학자도 지적한 바 있다. <데이어스 엑스>는 우리에게 그런 현실에 맞서 어떤 행동을 취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런 현실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제시를 할 뿐이다. 하지만 엔딩에서의 선택과 주인공의 독백은, '이런 사회가 온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라는 물음을 픽션의 벽을 넘어 우리에게 주는 건 분명하다.
개인적인 점수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