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이웃

가장 좋은 마주침은 평범함입니다.

by 천천희

우리가 흔히 '수용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구하며 하루하루를 반성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극히 드물다고 여겼던 그 진심이, 수용자 정열심(가명) 씨에게서는 보였다.


나와 열심씨와의 첫 대면은 그가 재판을 나가는 날이었다. 옆에서 재판 과정을 들어보니 열심씨는 가족을 통해 합의금도 내 보려고 노력했지만 피해자가 거절하고 연락을 피해 다녀 징역을 면할 수 없는 경우였다.


"(흐느끼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항소는... 하지 않겠습니다."


"피고인 정열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우연히 징벌동 순찰 중에 열심씨가 보였다. 징벌 사유는 자살 시도였다.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며칠 전 죄책감이 너무 심해서 감방에서 목을 매 볼까 생각해 봤습니다. 끈까지는 어떻게 만들었는데, 막상 목에 걸려니... 죽을 용기는 안 납디다.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근무자에게 걸렸습니다."


CCTV로 그를 지켜보던 근무자가 끈을 만들고 목에 갖다 대보는 행동을 반복하는 열심씨를 발견해 기동대를 출동시킨 것이다.






몇 달 뒤,


"치이이익~"


500인분은 거뜬히 만들어 내게 생긴 대형 밥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취사장으로 발령받아 취사장 수용자들을 계호(경계 및 보호)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평온히 다음 식사를 위한 재료 손질을 한창 하고 있던 날이었다.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아 ~ 네. 오늘도 안전 작업 합시다 열심씨.”



오늘도 맡은 바 최선을 다해 묵묵히 열일하는 수용자, 다름 아닌 정열심 씨다.

세상과 감옥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던 미결수의 기간은 가을의 외로운 낙엽 같은 *옷 이었다. 이번에 본 그는 푸르스름한 교도소의 빛을 온몸에 걸치고 있었다. 옷 색깔 때문인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우린 우연히 취사장에서 다시 만났고, 그렇게 열심씨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형기가 확정되면 수용자복 색도 바뀐다.(미결수는 갈색, 기결수는 파란색)


그는 일도 열심이었지만 수용 태도가 참 좋았고 주위 수용자들 사이에서도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형님~ 여기 밥 있는데 먹어요."


"아이고 안 먹는다니까 그러네."


"혹시 몰라서 퍼놨어요. 오늘 일 많은 날인데 좀 먹어놔요."


식사 시간에 접견 다녀온 동료 수용자가 있으면 그 사람의 밥도 따로 보온 그릇에 담아 놓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가 일을 대충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좋게 좋게 설득하고 타이를 줄도 알았다. 작업장의 분위기가 근무자가 관여하지 않게끔 잘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취사장 팔자걸음 수용자를 기억하는가? 그가 다른 수용자와 멱살 잡이 하며 싸울 때도 제일 먼저 중간에서 말리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7-8편 참고)


그러던 어느 날, 수용동에서 정해진 양보다 밥이 적게 왔다고 연락이 왔다. 추가 조달을 해야 했고 나는 열심씨와 같이 가게 되었다. 조달을 마치고 취사장으로 복귀하던 길에 나는 평소 담아뒀던 마음을 건넸다.


"열심 씨는 참 열심히 일하네요. 보기 좋습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인데요 뭐."


안타까운 마음에 물었다.

"아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모르겠습니다. 그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부장님 이웃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었겠죠 하하."


"사업하셨어요?"


"네. 그러다가 코로나로 회사가 부도 나서 빚을 못 갚았습니다."


"사기로 들어왔던데...그럼...?"


"부장님, 돈 못 갚으면 사기가 되는 겁니다."


나는 그 한 마디에 멈칫했다. 순간 내 감정은 큰 슬픔이 되었다. 그의 담담한 고백 속에서 코로나 기간 동안 교도소 수용자가 폭증했다는 뉴스가 머릿속에서 겹쳐 올랐다. 어쩌면 우리 이웃이었을 평범한 대표가, 한순간에 '사기'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아... 그럼 출소하면 사업 다시 할 수 있나요?"


"이미 정리 다 했습니다. 자재도 다 냉장고에서 녹아 버려서 못 씁니다."


"아 식품 쪽 사업을 하셨나 봐요."


"네. 다른 거 해야죠 뭐. 나가면 이제 절대 빚 안 냅니다... 아휴...."



열심씨는 빚을 못 갚은 회사 대표였다. 그의 말대로 돈을 못 갚으면 사기꾼이 되는 거였다. 왠지 열심씨 이미지와 사기꾼이라는 수식어는 맞지 않는 옷 같았다. 하지만 명백히 그의 죄명은 '사기'였다. 그것 말고는 그에게 씌울 마땅한 혐의가 없었다.


열심씨는 자신이 사기꾼이거나 말거나 그건 옛날 어릴 적 별명처럼 여기는 듯했다. 마치 자기의 지난 과오를 이미 다 곱씹고 현재 마음속으로는 새 발걸음을 뗄 준비를 끝마친 사람 같았다. 몸만 징역 중에 있고 나갈 준비는 진작 되어 있는 것 처럼.


그러던 어느 날, 열심씨에게도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형기의 절반이 지나 가석방 신청을 했는데 점수가 높아 한 번 만에 통과했다. 나는 기쁜 소식을 듣고 3개월 가량 빨리 나가게 된 열심씨에게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축하합니다. 열심씨. 조금 더 빨리 바깥을 볼 수 있겠네요."


"네 부장님 덕분입니다. 나가면 잘 살아보겠습니다."


출소 날이 되어 우연히 그의 복귀 주소를 보니 우리 이웃이었다.


'우리 동네로 출소를 하네...'


동네에서는 이미 출소한 사람들과 몇 명 마주치기도 했다. 조만간 우리 동네로 출소할 수용자가 더 있는 걸로 안다.

그들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저자가 생각하는 교도관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나누어 보도록 한다.


교도관은 침묵으로 지지를 한다. 출소 후에는 그의 '보호자'가 아닌, 그냥 과거를 공유하는 이웃이 되어 준다. 만약 그가 나를 알아보았지만 다가오지는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압니다'라는 작은 눈인사만 곁들이려고 한다. 그나 나나 말을 섞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실제로 많은 출소자들은 교도관들을 사회에서 마주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출소자가 있다면 "잘 지내시죠", "장 보러 나오셨네요" 등 일반적인 대화로 답하고 마무리하도록 한다. 교도관 선배들은 교도관과 출소자 사이는 '시절 인연'으로 남는 게 가장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는 시민들의 행동이 핵심이고,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침묵에 존중을 얹도록 한다. 출소자는 일반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한다. 경계는 풀고 환영해줘야 한다. 동정이나 금전적 도움은 주지 않는다. 과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선의에는 칭찬과 감사를 표현하고 그를 평범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우리 동네로 출소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동네 이웃'으로 그를 조용히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따뜻하고 현명한 반응이다.

다만 '이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신뢰'의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옆집사람도 잘 모른다. 옆집과도 포스트잇으로 수신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다. 일상 안에서 '관심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가을 어느 따사로운 햇살 아래, 교도소 정문이 열린다. 갇혔던 열심씨가 나온다. 영하 날씨에 입을 법한 두툼한 패딩 옷을 겨드랑이에 낀 채로. 대로변에 나가 택시를 잡는다.


"ㅇㅇ역 ㅁㅁ 아파트요."


교도소에서 열심씨의 태도는 좋았지만 그가 진정 착한 사람, 혹은 교화가 다 된 사람이라고도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형기를 복역하는 기간, 불량한 수용자보다 훨씬 진심을 다해 생활했던 그의 모습에 나는 믿음을 건다. 열심 씨는 이제 교도소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을, 우리가 오래도록 볼 수 있는 따뜻한 이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의 앞길을 축복하며 또다시 나는 갇힌 이웃을 만나러 열심씨가 나왔던 그 문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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